(이직의 기술 마인드셋팅) ‘아이젠하워’와 ‘가후’ 4

(2) 경력직이라면 ‘가후’처럼 – 상

by 테서스


“어릴 때는 유비가 좋더라. 청년 때는 조조가 좋더라. 더 나이 드니까 다시 유비가 좋아지더라.”


삼국지 덕후들이 많습니다. 삼국지 3번 읽은 인간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소설은 많이 안 읽고 주로 게임과 만화로 즐겼으니 제외하셔도 됩니다^^.


만화 중심이긴 하지만, 삼국지 콘텐츠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유비→조조→유비 순서로 가는 건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신발가게 주인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비록 산골짜기 땅이긴 하지만) 결국 황제 되는 이야기. 그렇게 잠시 행복한 시절 오나 싶었는데,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끝까지 의리(으~~~리!) 지킨 의형제들이 봄날의 꿈처럼 사라져 가는 이야기.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본다면, ‘드라마틱한 전개’ 측면에서 유비를 따라갈 수가 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와중에 ‘프로이직러’라는 호칭(!)이 하나 더 붙다 보니… 조연 급 중 한 남자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세력 기준으로 4개, 사람 기준으로 6명의 주군을 섬기며 끝내 살아남아 천수(天壽)를 누리고 마지막에 태위 벼슬까지 올라간 남자, 그를 살펴보게 됩니다.


책사 가후. 그는 1800년 전 시대를 살았던 ‘프로이직러’였습니다. 아득히 먼 옛날에 ‘프로이직러란 이런 것이다!’ 라고 자기 인생으로 교범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경력직의 모범 가후. 그의 첫 인생은… ‘거대한 블랙기업’에서 시작됩니다.



1) 초대형 블랙기업 ‘주식회사 동탁’


앞서 맥아더-아이젠하워 얘기를 할 때 ‘미군’을 ‘안정된 평생직장 공기업’으로 비유했었는데요. 삼국지 시대 동탁 세력을 회사로 비유한다면… 으음, 적절한 회사를 찾을 수가 없네요.


뭐 현실 회사 중에도 싸이코패스 오너를 가진 회사들이 꽤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일본도로 닭 썰어 죽이는 웹하드 업체 오너라든가, 여비서를 매일매일 성추행하는 오너라든가, 기타등등) 어지간한 수준에서 동탁의 악행을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한 국가의 수도(首都)를 홀라당 태워먹는 굇수급 결단력(?)을 회사로 비유하기는 어렵죠.


게다가, 동탁 세력은 당대 최강이었습니다. 회사로 비유하면 확고부동한 재계순위 1등. 2등부터 50등까지 다 모여서 다구리(좋은 말로는 협동공격) 치는데도 어느 정도 버텨낼 만큼 강했습니다.


오너가 막장 of 막장인데 덩치는 재계1위인 블랙기업. 감히 비유할 회사를 찾을 수 없는 기업. ‘주식회사 동탁’.

이 기업이, 가후의 첫 직장이었습니다.



당시 가후로서는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21세기에는 굳이 악명높은 블랙기업에 들어갈 필요 없이 쪼큼 윤리적인 회사 찾을 수 있지만, 2세기 중국에서는 그런 게 안 됐어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취직하던 시대였거든요.


원소 쪽은 기주 출신들이 꽉 잡고 있고, (몇 년 뒤 크게 떠오를) 조조 쪽은 순욱이 천거한 예주 출신 인재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유비는 아직 듣보르자브 벤처기업. 유표/유언은 각각 형주/익주 토박이들 포섭하느라 정신없었고, 손견은 원술 시다바리 하고 있었으며, 원술은 어디 협객놀이 한답시고 동네 건달들 모으는 중이었습니다.


가후가 활용할 수 있는 인맥으로 취직할 수 있는 곳은 ‘주식회사 동탁’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옹주~양주 쪽 인재들을 받아 주던 유일한 세력이었으니, 악명이고 뭐고 가릴 거 없이 동탁 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악명은 높지만 매출규모가 엄청 큰 재계1위 기업’에 입사했지만… 가후가 당장 무슨 활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벤처기업 유비 정도 규모면 모를까, 동탁 급이면 신입사원이 곧바로 뭘 할 여지가 없거든요.


그리고, 가후가 뭔가 활약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주식회사 동탁’은 너무 빨리 망해버립니다. 창업주 동탁이 푹찍억 끄으윽 사망해 버렸거든요.



2) ‘주식회사 이각곽사’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가후가 그 존재감을 드러낸 건 ‘주식회사 이각곽사’ 시절입니다. 이 때는 아직 본격적인 프로이직러라고 보긴 어렵고, 최초 입사한 대기업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그나마 그 중 제일 덩치 큰 회사에 남았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천하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폭군 동탁이 양아들 여포에게 푹찍억 당해 죽고, 동탁의 특급참모 ‘이유’도 이유있게 죽었으며, 그 외 기타등등 동탁 잔당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그리고, 동탁을 죽인 ‘왕윤’이 엄격근엄진지하게 ‘동탁 잔당들을 모두 쓸어 버리겠다! 한나라를 바로잡겠다!’는 패기를 보일 때. 그러면서 선봉장으로 (성 셋 가진 종놈) 여포를 내세울 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문관 가후가 나섭니다. 그가 진언한 첫 책략은… [헛소문을 퍼뜨려 백성들을 동요시키고 그들을 징집합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가후의 이후 행적에도 계속 문제되는데, 가후의 책략은 사기/협잡/기만전술을 기본(!)으로 깔고 있습니다. 글자 흐리게 만든 편지 몇 장으로 마초-한수 사이를 이간시키고,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과부댁이랑 같이 있으면서 방심했을 때를 노려) 기습하는 것 등등. 사람 심리를 잘 알고 이를 악용하는 게 가후 스타일입니다.


이런 사기 협잡 기만전술을 적 군대에게만 쓰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도 시전합니다. 시대적으로 인권 개념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조직적인 군사력 없는 일반 민초(民草)들을 속여먹는 건 좋게 평가받기 어렵겠죠.


아무튼, 가후는 장안을 비롯한 관중 일대 백성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립니다.

[왕윤이 동탁을 죽이고 나서 동탁에게 부역한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고 날뛴다. 여기 관중 사람들은 모두 동탁에게 부역했으니, 이대로 있으면 다 죽을 것이다. 넋놓고 있다가 다 죽을 수는 없다. 모두 들고 일어나 왕윤을 죽이자!] 라는 헛소문을.


당연한 말이지만, 왕윤이 백성들까지 다 죽일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동탁 휘하 서량병들과 그들을 지휘하던 장수들을 적절히 흩어 버릴 계획은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옹주-양주 일대 백성까지 다 죽이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현실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괴벨스가 말했다는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선동은 한 줄로 충분하지만 반박은 수십 페이지를 해야 한다” 고 합니다. 가후의 선동은 제대로 먹혔고, 왕윤이 뭔가 반박하기도 전에 장안 일대에 10만 대군이 모여들어 버렸습니다.


삼성가노 여포가 아무리 잘 친다고 해도 10만 대군 다 뽀개는 건 어렵죠. 여포 빤쓰런. 왕윤은 끝났구나. 가망이 없다.


왕윤에게 Endgame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왕윤은 자살하고, 장안을 중심으로 한 천하의 일부는 이각곽사 셋트메뉴의 손에 들어갑니다.



주식회사 동탁 신입사원이었던 ‘가후’가 처음으로 그 책략을 성공시킨 사건. 세상에 ‘가후’라는 책사의 존재를 알리며 두각을 드러낸 사건.


뭐… 쪼큼 껄쩍지근 하죠? ‘살아남기 위해 모든 잔꾀를 다 짜내야 한다’는 상황이긴 하지만, 백성들에게 헛소문 퍼뜨려서 병사로 긁어모았다고 하면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죠?


가후의 첫 책략은 [생존]이었습니다. 회사의 생존이 아니라 ‘본인의 생존’. 동탁 부하로 엮여 도매급으로 학살당할 상황에서 가후 본인의 생존을 위한 책략을 냈고, 그게 결과적으로 ‘주식회사 이각곽사의 생존’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끝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이각곽사 셋트메뉴는 이전 폭군 동탁보다 훨씬 더 후졌거든요.



장안 일대만 장악한 채 대장군/대사마 놀이 하고 있는 이각곽사. 누가 대사마고 누가 대장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셋트메뉴.


그들 아래에서, 가후는 나름 조직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황제도 쪼큼 신경썼구요. 많이는 아니고 쪼큼.

가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분들은,

- 이 시기의 가후가 ‘대국적인 관점에서 조직의 미래전략을 수립할 능력이 있었다’는 걸 지적하면서

- 대전략 구상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단 한 번도 그런 대국적 전략을 보여 준 적이 없고 ‘오로지 사기/협잡 단기책략만 냈다’

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지적이 맞죠. 가후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국가 전체의 대국적 방향 같은 거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지 / 관심은 있는데 침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가후는 늙어 죽을 때까지 대국적 전략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경력직 프로이직러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너무 작으면 대국적 전략 같은 게 아예 의미없고 괜히 오너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죠. 역으로 회사가 대국(大局)을 논할 만큼 크다면 거기에는 이미 창업공신 급 인재들이 즐비할 테니 경력직이 갑툭튀로 등장해 미래전략 논의할 여지가 없을 거구요.


가후에 대한 변명(!)은 나중에 몰아서 하기로 하고. 일단 이 시기 가후는 나름 ‘주식회사 이각곽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려는 노력을 (아주 잠깐) 했었다고 합니다. 황제 처우도 개선해 주고 그 권위를 활용해 이후 조조가 하는 것처럼 주위 군벌들을 [너 역적!]으로 몰아가는 작전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각곽사가 워낙 막장이었죠. 황제를 끼고 있긴 하지만 완전 개무시했고, 백성들은 그저 ATM 인출기일 뿐. 이 세력에는 미래가 없었습니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오늘만 사는 놈이 내일 바라보면서 사는 놈들을 다 죽여버리지만… 현실에서 미래 생각 안하고 하루하루 막장테크 타고 있으면 그런 사람이 먼저 망하겠죠. 1800년 전에도 비슷했습니다.)


결국 ‘주식회사 이각곽사’는 내부분열로 망해버립니다. 중간에 황제 빤쓰런 사건이 있었고 결국 황제는 조조가 주워먹었죠. 황제 빼앗긴 이각곽사는 어디 갔는지 모르게 사라집니다.



주식회사 이각곽사까지 망한 후. 가후 입장에서는 [C발 직장생활 조낸 꼬이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혈연 학연 지연 중시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동탁 밑으로 들어갔는데 끔살당해 버렸고, 그나마 잔당 중에 제일 세력 큰 이각곽사 도와 줘서 잘 살게 해 줬는데 자기들끼리 뻘짓하다 또 망해 버렸습니다. 직장생활 지대 꼬였습니다.


현 시대로 비유하면, 악명은 높지만 나름 덩치는 큰 기업에 입사했는데 그 기업은 오너 구속 후 급격히 와해되어 버렸고 / 남은 회사 중 제일 큰 데로 가서 나름 열심히 했는데 이 곳 오너가 더 막장이라 둘 다 구속되고 회사는 파산신청 한 상황. 대략 그 정도 느낌이었을 겁니다.


제가 가후의 내면 심리까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직장생활이 꼬이면 사람이 점점 더 냉소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특히 가후처럼 ‘엄청 똑똑하면서 본인 생존의지가 투철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되겠죠.


이후 가후는 두 번 다시 ‘대국적인 전략’ 같은 걸 고민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눈 앞의 이익’, ‘당장의 생존’을 고민하고 거기에 맞는 단기책략만 내죠.


뭐, 단기책략만 낸다 해도 가후의 존재가치는 충분히 높습니다. [미쳐 날뛰는 왕윤 + 삼성가노 여포 조합을, 백성들 선동하여 징집한 군대로 처발랐다] 고 하면 당연히 인정받아야죠.


책략가로 두각을 드러낸 가후. 그는 3번째 직장을 구해 그 오너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이번 회사는 ‘벤처기업 장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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