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젠하워처럼 살았다면 좋겠지만 – 상
아이젠하워처럼 살았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됐죠. 본 글 ‘경력자 이직의 기술’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현실이 그러합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그는 우리 ‘프로이직러’와 다르게 평생 한 직장에 올인하고 그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그냥 직장이 아니라 ‘세계최강 천조국 미군 장교’였죠. 비유하자면 ‘철밥통 공기업에서 40년 직장생활 한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우리 프로이직러와 완전히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이젠하워의 인생에서 ‘경력자 마인드 셋팅에 도움 될 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직은 없었지만 직장인으로서 본받을 만한 점은 있다는 거죠.
아이젠하워 관련 썰을 풀기 전에! 우선 그의 인생에 꽤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직장상사’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아이젠하워의 직장상사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도 꽤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
[맥아더]입니다.
1) 별 중의 별 맥아더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수석졸업. 미군 역사상 최연소 장군. 미군 역사상 최연소 대장. 1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서 영국/프랑스 등 당대 최강 군사력 보유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장군.
그게 ‘맥아더’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미군 장성들 중에서도 원탑이었죠. ‘별 중의 별’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들 아시다시피) 맥아더는 우리 나라와 인연이 깊은 사람입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군 중에 5성장군 단 사람들이 많이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맥아더가 킹왕짱이죠. 거의 데미갓(Demi-god) 수준으로 띄워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이 대단하긴 했죠. 한반도 사람 입장에서는 맥아더 띄워 줄 만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아시아 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기도 했다고 하네요.
일단 본 글에서 ‘2차 대전 이후의 맥아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한국에서 데미갓이지만 미국에서는 평가가 나뉘는 ‘말년의 맥아더’는 빼고, 2차 대전 직전까지 ‘별 중의 별’이었던 맥아더만 얘기하겠습니다.
(다만, 이후 아이젠하워와 비교하면서 말년 맥아더의 행적을 잠시 언급할 수는 있습니다.)
앞에서 쓴 대로, 맥아더는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습니다. 세계최강 천조국 군대의 장교를 키워내는 곳에서 수석졸업! 떡잎부터 남다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가야 할 게 있습니다. 맥아더 졸업 당시의 미군은 세계최강이 아니었다는 것.
당대 최강은 ‘영국군’이었죠. 육군 기준으로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에 맞먹었고, 해군 기준으로는 영국군이 넘사벽 최강이었습니다. 해군력 2위에서 6위까지를 다 합쳐도 영국 해군에 밀릴 정도였다고 하네요.
2차 대전 이전의 미군은, 유럽 열강들 기준으로는 ‘촌뜨기 군대’였습니다. 심지어 해군력으로는 ‘칠레’에게도 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남북전쟁 등을 거치며 육군력은 꽤 좋았고 군인 숫자도 많았지만, 대부분 북아메리카 한정이었고 대외적으로 힘을 발휘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물론 필리핀 등 식민지 쪽에서는 다 똑같은 침략군이겠지만, 전 세계를 나눠먹으며 땅따먹기 하고 있던 유럽 열강들의 시선으로 볼 때 미군은 많이 허접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맥아더가 주목받은 건, 이런 촌뜨기 군대를 이끌고 유럽 쪽 전쟁에 참여했고 / 그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당대 전 세계를 주름잡던 유럽 열강 군대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1차 대전의 전공]이 컸죠.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당대 최강이었던 영국을 따라) 연합군으로 참전했습니다. 다만, 2차 대전처럼 전면적인 개입은 아니었고 일부 병력을 파견 보내는 수준이었죠. 참호전 벌이면서 몇백만명이 격돌하던 시대에 별 도움 안 되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국이 찔끔 보낸 병력 중에 ‘웨스트포인트 수석졸업 장교 맥아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모였지만, 나중에 장군 진급하면서 여단장으로 지휘권을 받았다고 하네요.
당시 맥아더는 독일군 화학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방독면 없이 돌아다니는 기행(!)을 선보였고, 참모 보직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최전선 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안 죽은 게 신기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용감한 지휘로 꽤 많은 전공을 올렸던 것 같습니다.
1차 대전 시작 시점의 맥아더는 그냥 소령 급 장교였으나, 1차 대전 중 준장으로 진급하고 훈장만 10개 넘게 받았으며 그 중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대 육군으로는 영국보다 더 강하다고 자부(!)하던 프랑스에서, 대서양 건너 촌뜨기 군대 사령관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을 준 거죠.
국가 자체는 엄청 커졌고 군사력도 만만치 않게 커졌지만 아직까지는 촌뜨기 취급받던 미군. 미군 입장에서 맥아더는 ‘상징성 높은 보물’이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들의 선진적인 군사작전을 직접 경험했으니, 그 경험만으로도 소중히 여겨야 할 인적자산이었습니다.
미군의 최연소 장군이 된 맥아더. 그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교장을 맡으며 선진 열강 군대의 경험을 전파했고, (당시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건너가 태평양사령관을 맡았으며, 최연소 대장이 된 후에는 미군 참모총장을 역임합니다. 최연소 타이틀을 넘어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거죠.
물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거만함’이 같이 늘었다고 합니다. 맥아더는 필리핀 쪽에서 지낼 때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본인 얘기를 하면서 ‘맥아더가 말하길~’ 이런 식으로 말했다는 건데, 이건 유럽 문화권에서 왕이 말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장군이 이 짓 하면 뭐…
아무튼 맥아더는 잘 나갔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정말로 왕 이상의 권세를 누렸던 것 같고, 이미지 관리에 신경쓰면서 나름 미국 내에서 꽤 인기있는 군인이 되었었습니다.
이렇게 맥아더가 잘 나가던 시절. 그의 전속부관 중에 딱히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이젠하워’였습니다.
2) 만년과장 아이젠하워
앞서 서술한 것처럼, 맥아더는 (당시 촌뜨기 군대였다고는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유럽열강을 뛰어넘는) 미군 내에서 ‘별 중의 별’이었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회사원으로 치면 KT나 LH 같은 공기업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몇 번이나 갈아치우고 사장 자리까지 올라간 거랑 비슷하겠죠.
이렇게 승승장구한 맥아더가 중장~대장 급으로 태평양사령관~참모총장 등 핵심보직을 역임하고 있을 때. 맥아더 밑에서 시다바리(…) 하던 전속부관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 왕이나 다름없게 행동하던 맥아더를 충실히 보좌한 시다바리.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였습니다.
맥아더가 사관학교 수석졸업생이었던 것과 달리, 아이젠하워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입학하려고 3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재수/삼수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겠지만, 젊은 날의 아이젠하워는 그리 천재로 불릴 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관학교 성적은 그렇다 치고) 현역 장교로서의 아이젠하워는 나름 능력자였던 것 같네요. 하긴 그러니까 나중에 연합사령관 맡았겠죠.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전속부관으로서 꽤 일을 잘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맥아더가 아이젠하워의 업무역량에 대해 말할 때, ‘내 사무관 중에서 최고였다.’라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행정장교로서의 역량은 매우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행정역량만 인정하고 키워 주지 않는다’는 문제.
맥아더 전속부관이었던 9년 동안, 아이젠하워의 계급은 계속 소령(Major)이었습니다. 진급을 안 시킨 거죠. 당시 미군의 계급체계가 중령(Lieutenant Colonel) 개념이 희박하고 소령에서 바로 대령(Colonel)로 올라가는 체계였던 것 같지만, 그거 감안해도 진급이 꽤 늦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급 안 시켜 주는 것 말고 또 하나 문제가 있었는데요. 부대 지휘할 기회를 안 줬습니다. 즉, 9년 내내 맥아더 옆에서 행정업무만 보게 하고 대대장 등 일선 지휘관 자리를 안 준 거죠.
대략 군대에서 행정병 하면서 장교들 생활을 보신 분들은, ‘지휘관 경력이 없다’는 게 장교들에게 상당한 약점이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결국 장교~장군은 자기 휘하 병사들을 이끌어 싸우도록 하는 게 직업인데, 대대장 지휘경험도 없으면 나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결국 맥아더의 말과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맥아더는 아이젠하워를 ‘시다바리’로만 써먹었지 크게 키워 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 위에 나오는 ‘최고의 사무관’ 드립도 그냥 나중에 아이젠하워가 잘 나가게 되니까 자기 부하였던 걸 강조하는 드립이었을 뿐, 9년 내내 그냥 부려먹기만 했고 향후 커리어 패스 같은 건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아이젠하워 입장에서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 를 외칠 만한 상황이지만 겉으로는 별 불만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일기장에 맥아더 욕을 조낸 많이 썼다고 하네요...)
뭐, 맥아더도 나름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지 참모총장 그만두고 잠시 퇴역할 때 아이젠하워를 대령 진급시켜 주려고 노력하긴 했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9년 동안 부려먹고 대대장 지휘 기회도 안 줬으면 막판에라도 진급시켜 주긴 해야죠.
아무튼, 아이젠하워는 9년 동안 진급 못한 채 맥아더 시다바리 일을 했습니다. 회사로 비유하면, 최연소 임원 자리를 거쳐 승승장구하는 사장 밑에서 비서나 다름없는 기획팀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9년 동안 진급누락된 것과 비슷한 신세라고나 할까요?
막판에 대령 진급하긴 했지만,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었습니다. 사관학교 수석졸업에 최연소 장군에 최연소 대장에 육군참모총장 역임한 별 중의 별, 대령 진급하는 것도 늦었는데 대대장 지휘 경험도 없는 사관학교 삼수생. 둘 사이의 격차는 너무 멀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격차를 뒤집을 기회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젠하워도 맥아더도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거칠고 가장 무서운 파도가 전 세계를 휩쓸려 하고 있었습니다.
99.9%의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될 파도. 그러나, 미군을 비롯한 몇몇 군인 0.1%에게는 출세하고 이름을 남길 대단한 기회가 될 파도.
변방 촌뜨기 취급받던 미군을 ‘세계최강 천조국 군대’로 올려 주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조낸 해가 빨리 지는 섬나라’로 줄여 버렸으며 당대최강 육군강국 프랑스를 캐허접으로 만들어 버린 파도.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습니다. 두둥 둥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