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저작권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본 "이직의 기술"을 쓰다가 한 회사로부터 2차 콘텐츠 제안을 받았는데... 살짝 어이없었습니다.
사실관계는 아래 메일에도 잠시 언급되어 있는데,
- 이직의 기술 관련한 2차 콘텐츠(주니어경력 이직 관련 인터뷰를 음성/영상 등으로 제작) 제안
- 제안에 응하면 '소정의 아메리카노 쿠폰' 제공
- 해당 콘텐츠 관련 요청은 별도 유튜브에서 확인 가능
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메일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좀 하면,
저는 본 브런치스토리 연재와 별도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본업은 회사원이구요. 웹소설은 취미 수준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요즘은 부업 정도로 올라왔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월백킥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매달 치킨 10마리 정도 사먹을 수준은 됩니다.
(요즘 치킨값이 오른 데다 제 최근 연재작품 실적이 매우 저조해서... 이번달에는 10마리 안되겠네요 ㅠ.ㅠ)
이렇게 웹소설을 쓴 게 4년 반 정도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 또한 처음에는 '무조건 대형 플랫폼'으로 갔었습니다. 다들 아시는 ㄴㅇㅂ에 글을 올렸었죠.
그 때는 ㄴㅇㅂ 챌린지리그 시스템이 '헬린지'로 불린다는 걸 몰랐었습니다. 다른 대체 웹소설 사이트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구요. 제 마인드 자체가 '시행착오도 무형자산이다!'라는 식이기 때문에 일단 올리고 시작했습니다.
첫 연재 후 대략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ㄴㅇㅂ 헬린지리그에 글쓰는 걸 중단했습니다.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나서 '초보들도 유료로 연재가능한 사이트'로 옮겼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시행착오를 심하게 겪었죠. 월100원 수익 올리면서 와이프한테 전기세 아깝다는 얘기도 들었었습니다.
다만, 그 때 하나는 확실했습니다. [내 창작물은 단돈 1원이라도 돈을 받고 팔아야지 절대 공짜로 넘기지 않겠다!]는 것.
그 마인드로 4년 반 가량 웹소설을 써 왔습니다. 제 나름대로 상업적 시도를 했고 또 나름대로 트렌드를 거스르는 시도도 하면서 좌충우돌했지만 적어도 웹소설의 영역에서는 "저작권자로서 본인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브런치스토리는 무료 글쓰기가 기본입니다. 여기는 그렇게 글 올려야 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이견은 없습니다. 저도 웹소설이 아닌 현실 글에 관해 1차 창작물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고 그 시스템에 맞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브런치스토리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조금 독특하긴 합니다만... 그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쓰겠습니다.)
그러나, 1차 창작물이 무료 배포이고 또 그 창작물 저작자가 무명(無名)이라고 해서 2차 창작물도 아주 저렴하게 작성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입니다. 그게 현재 대한민국의 상관행으로 존재하고 다수의 무명작가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해도 그 또한 큰 착각입니다.
저 같은 무명작가들이 목소리 낸다고 해서 크게 바뀌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일단은 한 마디 해야겠죠.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씁니다. 저 어이없는 제안에 대해 메일로 답신한 내용도 덧붙입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부터 어이없었던 기억을 활자로 바꾸어 오래오래 남기려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작가님들께서 본인의 저작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라며, 저 또한 그 자부심을 오래오래 유지하려 합니다.
각 작가님들의 저작권은 본인 사망 후 70년까지 유지됩니다. 절대 싸구려로 팔아넘기지 마십시오.
또한 지금 당장은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다른 창작물이 인기를 끌었을 때에는 지금의 무명 창작물도 함께 인정받습니다. 그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현재의 창작물들을 소중히 하십시오.
그렇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작가가 더 오래, 더 멀리, 더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당장의 조급함에 쫓기다가 자괴감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더 우직하게 글 쓸 수 있습니다.
모든 작가는 각자의 작품에 대해 신(神)의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모두 자부심을 가집시다.
* 문제의 메일은 아래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업명은 언급할 필요 없겠죠.
안녕하십니까. 브런치스토리에 "이직의 기술"을 연재하고 있는 테서스 라고 합니다.
귀사의 제안(주니어경력 이직 관련 인터뷰를 음성/영상 등으로 콘텐츠 제작)에 대해,
제목에 쓴 바와 같이 정중히 거절합니다.
일단 저는 현재 재직중인 직장이 있어 타사 콘텐츠를 제작할 입장이 아니고,
제 글의 취지가 "경력직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인데 이걸 굳이 시간을 많이 들여서 음성/영상으로 제작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사의 제안이 정당한 상거래 관행(현재 상관행이 아닌 앞으로 형성되어야 할 바람직한 상관행)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에게 2차 콘텐츠를 제작하자고 제안하고 또 그 2차 콘텐츠의 제작 시간이 원래 활자 저작물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제안을 함에 있어서 저작권에 대한 보상 논의가 전혀 없습니다.
(아메리카노 쿠폰 얘기는... 뭐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1차 저작물이 무료로 배포되었다고 해서 2차 콘텐츠도 무상 제작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회사 단위에서 저작권에 대해 좀 더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 나라의 상당수 회사들이 저작권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무명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게 더욱 더 심합니다.
무명 작가들 입장에서는 "빨리 뜨고 싶은 충동"이 있으니 소위 "저렴한 제안"에도 금방 혹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 짐작합니다.
(본 브런치스토리와는 무관합니다만, 별도 웹소설 영역에서 ㄴㅇㅂ 헬린지리그 등으로 불리는 시스템이 이렇게 "저렴한 제안"을 제도화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는 이익집단이고 사회적으로 저작권자에게 저렴한 제안을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그 분위기에 맞추는 게 당연하긴 합니다.
즉, 귀사가 무명의 저작권자들을 상대로 저렴한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어떤 불법행위나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안 자체는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걸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은 각 작품 별로 물권에 준하는 효력을 부여합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는 것은 부동산을 매수하거나/임차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귀사에서 부동산을 임차할 때 "소정의 아메리카노 쿠폰을 지급하겠습니다." 라고 하시던가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무명작가님들도 귀사로부터 비슷한 제안을 받고 있을 것 같은데,
귀사 내부적으로 프로세스를 재정비하고 저작물 취득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하시겠다면 더 할 말 없구요. 대한민국 내부적으로 작가 노조(Union. 한국 노동법상 노조와는 약간 다른 의미입니다.)가 생기길 바라는 수 밖에 없겠죠.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