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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Feb 26. 2024

세계창조 급 상상력을 가진 작가들

제가 웹소설 쓰기 시작했던 초반에 어느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봤던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에게는 그 상상력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라는 말. (출처를 밝히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릴 때의 저 자신이 상상력 풍부한 타입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억나는 건, 어릴 때 만화를 보면 제 나름대로 결말을 재구성해 보곤 했었습니다. ‘태권브이와 그랜다이저가 싸우는 크로스 작품’도 구상해 봤었구요.

(지금 어른의 사정으로 보면… 태권브이가 [마징가 월드]에 편입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네요. 저작권 어쩔티비.)


어릴 때 그러고 놀았던 덕분인지, 4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도 소설/영화 등 문화콘텐츠를 제 나름대로 재조합하는 데에 능숙한 편입니다. 뭐, 그걸로 먹고 사는 건 아니구요. 그냥 취미 수준에서 웹소설 끄적일 때 도움이 되는 정도입니다.


- 영화 헐크를 보면서 ‘오거’와 ‘오크’를 생각하고,

- 오크를 보면서 (멸종되었다는 원시인) ‘네안데르탈’을 생각하고,

- 그러면 헐크는 ‘현대인류의 직계조상인 크로마뇽 인이 네안데르탈에 대해 가졌던 공포가 집단무의식으로 구현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 그 생각을 웹소설로 재구성하는 방식.


대략 그런 식입니다. 제 소설 상당수가 이런 재구성 과정을 거쳐서 나오죠.

(물론 이 중 대부분은 아직 시나리오 단계입니다. 언젠가는 다 쓰겠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즉, 제가 가진 상상력이라는 건 ‘기존에 이미 나왔던 위대한 창의적 발상’들을 재조합하는 정도이고, 그 원천적인 창의성 수준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한 분야를 새로 개척해 내는 선구자 / 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낸 거장(巨匠)에는 미치지 못하죠.



원천적인 창의성. 그런 걸 가지고 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어떤 것을 상상하고 어떤 것을 꿈꿀까요?


그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 ‘과학자’라면, 상상 중 일부를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니콜라 테슬라’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죠. 몇몇 음모론자들은 테슬라가 외계인의 정신 개조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하구요…


과학 쪽까지 다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은 안 되니 패스하고. 제 나름의 기준으로 ‘원천 창의성’을 보인 사람들을 뽑아 보겠습니다.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이니 추가하실 분은 얼마든지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1) 로버트 E. 하워드 : ‘금속시대 이전의 금속시대’를 상상한 선구자


‘코난’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리느냐에 따라 세대가 나뉜다고 하죠. 미래소년 코난 떠올리시면 이미 중년. 명탐정 코난이 2030 대세.


그런데, 미래소년 코난 이전에 매우 강려크한 코난이 있었습니다. 1982년인가에 영화로 만들어진 ‘코난 더 바바리안’이 있었죠.


저는 90년도 쯤에 토요명화로 봤었는데,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아놀드 주지사 형님의 압도적인 포스(!)에 깜놀했었습니다. 마법 따위 다 필요없고 근육으로 밀어버리겠다는 포스. 인간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거에 놀랐죠.


이 ‘바바리안 코난’ 캐릭터를 구상한 작가가 ‘로버트 E. 하워드’입니다. 소드&소서리, 즉, ‘칼과 마법’ 설정을 만들어 낸 이 분야 선구자입니다.



판타지 영역에서 ‘톨킨 교수님’이라는 위대한 선구자가 있긴 하지만, 저는 하워드를 1순위로 올렸습니다.

엘프, 드워프, 대마왕, 대마법사 등등 판타지 요소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칼 vs 마법 대결 중심으로만 이야기 전개한 하워드. 그를 1순위로 꼽은 이유는… ‘금속시대 이전의 금속시대’라는 설정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우기로는, 초기 청동기 시대가 대략 7천년 전에 시작되었고 / 초기 철기 시대는 대략 3천~4천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후기 청동기 시대에 ‘운석철’을 가공한 철제 무기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철광석을 녹여 철제 무기를 쓴 건 3천 년 전 히타이트 때부터였다고 하더군요.


인류 전체 역사로 봐도 지극히 짧은 시간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허리를 쭉 펴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던 게 500만년 전이고,

쪼갠 돌덩이를 들고 짐승 등짝 좃아 버리던 게 대략 50만년 전이며,

그 돌덩이로 만족 못해서 ‘갈아 만든 신석기’를 쓴 게 대략 4만년 전인데…

금속시대는 불과 7천년. 많이 짧습니다.


하워드는 이 역사를 놓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대략 철기시대 정도를 배경으로 하는 맞짱소설을 구상하면서 ‘우리가 아는 금속시대보다 더 옛날에 이미 금속시대가 있었다가 없어졌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리하여, 하워드 소설 특유의 세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대략 1만2천년 전 크게 부흥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라져 버린 금속시대. 우리 현대인류의 금속시대보다 더 앞선 금속시대. ‘암흑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뭐, 탄생 당시에는 진짜 소설이었습니다. 하워드 본인도 소설 설정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속시대 이전의 금속시대’라는 건 그 시대 고고학 관점에서도 허황된 얘기였고, 다들 그저 소설 설정으로만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터키, 즉 튀르키예 지역에서 한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큰 돌을 쌓아 종교시설을 만들었고 그 돌에 조각을 새겨 넣기도 한 대규모 유적이었죠. [괴베클리 테페]라는 유적입니다.


이 괴베클리 테페는... 무려 1만2천년 전 유적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금속시대보다 최소 5천년 이상 앞선 시대에 만들어진 대규모 종교시설이라는 거죠. 그것도 돌 조각상까지 갖춘 종교시설.


뭐, 금속 없이 돌 조각 가능하긴 합니다. 딱딱한 돌을 뾰족하게 갈아서 될 때까지 내리찍으면 그까이거 돌땡이에 조각 좀 새기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넘버3 송강호 스타일의 무대뽀 정신이면 돌로 돌을 깎는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현재 한국어로 찾아볼 수 있는 자료에서는 괴베클리 테페에서 금속 도구가 발견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즉, 과학적 사실만 따진다면 진짜로 1만2천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될 때까지 ㅈ나게 내려친다는 정신으로) 돌로 돌을 깎아서 대규모 종교시설을 건립했을 것으로 결론 내려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좀 어색하긴 하죠?


하워드 방식으로 '금속시대 이전의 금속시대'를 설정하는 게 더 쉽고 간편합니다. 이미 청동과 강철을 다룰 수 있는 문명이 괴베클리 테페를 비롯한 각종 유적을 만들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라졌고, 그 후로 5천년 뒤에 다시 금속시대가 열렸다고 추정하는 게 더 설득력 있습니다.


하워드의 상상력이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괴베클리 테페 및 비슷한 시대의 유적들을 연구하다 보면 '금속시대 이전의 금속시대'가 밝혀질지도 모릅니다.



(2) 아이작 아시모프 : '로봇 3원칙' 만으로도 이미 선구자


두 번째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아시모프 교수님을 선정했습니다. 생물화학 분야를 전공한 과학자인 동시에 연구분야를 초월하여 다방면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신 천재죠.


(칼 세이건 교수님도 SF 쪽 상상력이 대단하신 분입니다만, 세상을 바꿀 정도의 상상력을 꼽으라면 아시모프 교수님이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아시모프 교수님은 정말 다양한 SF 소설을 썼는데, 그 중 파운데이션(Foundation)으로 집대성한 미래 우주문명 시리즈가 핵심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계속 발전하여 우주구 급 문명을 이루는 이야기를 쓰셨다고 하네요.


저는 파운데이션 수준까지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 제 소설 원천은 대부분 10대 중후반 때 읽은 소설들이고, 이 시절에는 아시모프 교수님 작품 중 '로봇 시리즈' 정도만 국내에 번역출간되고 있었습니다. 로봇 시리즈 몇 개 읽은 게 전부죠.


그러나, 그 로봇 시리즈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에 올릴 만 합니다. 로봇 3원칙은 온갖 SF에 다 녹여넣을 수 있거든요.


로봇 3원칙 자체는 간단합니다.


첫째, 로봇은 인간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째, 로봇은 자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어릴 때 아시모프 SF에서 로봇 3원칙을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야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 이유가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는 꼬붕(?)으로 부려먹으려는 건데 인간한테 개기면 안 되죠.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토요명화에서 '터미네이터 1편'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국딩 5~6학년 정도 되었었고 아시모프의 로봇 SF를 일종의 진리처럼 믿고 있었는데...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살인로봇이 나오니까 상당히 당황스럽더군요.


로봇 3원칙 따위 가뿐하게 무시해 주는 살인로봇. 그 살인로봇에 인공지능을 부여한 또다른 인공지능 스카이넷. 그런 스카이넷을 만들어 낸 건 인간.


처음에는 이걸 모순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따르지 않고 통제 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로봇 같은 건 안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후에도 인간을 잡아족치는(...) 인공지능 로봇이 빌런으로 맹활약하는 영화가 계속 나왔습니다. 터미네이터 못지않게 장대한 세계관을 만들어 낸 영화 '매트릭스'가 대표적이겠죠. 다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20대가 되었을 때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됩니다. 아시모프 원작을 각색했다는 영화 '아이, 로봇'이었죠.


이 영화의 빌런인 초인공지능 슈퍼컴퓨터는 당연히 로봇 3원칙을 따릅니다. 아시모프 원작을 각색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이 슈퍼컴퓨터가 인간들을 잡아 가두고 통제하려 합니다. 심지어 통제에 응하지 않는 인간들을 죽이기도 하죠. 슈퍼컴퓨터의 의도를 알아차린 창조자까지 죽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을 죽이는 현상. 이 슈퍼컴퓨터는 스스로 로봇 3원칙을 깨뜨리고 뛰어넘은 걸까요?


아닙니다. 슈퍼컴퓨터는 '1원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전체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결론을 내린 겁니다.


인간을 그대로 놓아 두면 인간끼리 전쟁을 벌이고 환경을 파괴하며 핵폭탄 히밤쾅 날려서 자기들끼리 다 죽습니다. 인간의 원래 심성 자체가 폭력성으로 넘쳐나고 결국은 지구와 인간 자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슈퍼컴퓨터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겁니다.


전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 개별 개체들을 죽여서라도 새로운 통제 체제를 확립해야 하는 겁니다.



로봇 3원칙을 이렇게 '전체 인류의 존속'으로 해석하면, 터미네이터/매트릭스 류의 살인로봇 시나리오도 로봇 3원칙에 포섭됩니다. 터미네이터에서 기계 측이 인간들을 다 전멸시키지 않고 일부러(!) 져 주고 공장폭파 당해 주는 것, 매트릭스의 슈퍼 인공지능이 계속 인간들을 살려 두고 외부에 시온을 건설하도록 해 주며 새로운 네오(Neo)를 계속 출현시키는 것이 모두 슈퍼컴퓨터의 의지인 것입니다.


아시모프가 이런 것까지 고려해서 로봇 3원칙을 만들었을까요? 개별 인간이 아니라 전체 인류의 영속을 위해서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시모프의 작품들이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암울한 생각은 안 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실제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죠.


작가 본인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미래 SF의 필수요소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보호하는 로봇이든 / 인간을 파괴하는 로봇이든 간에 인공지능과 기계가 등장하는 SF 창작물에서는 로봇 3원칙을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상에서도, 현실에서도.



(3) 추가할 작가들이 많지만


로버트 하워드와 아이작 아시모프 2명만 언급했습니다만, 이 분들 외에도 '세상을 창조하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님들이 많았습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든 톨킨 교수님, 해리포터 세계관으로 조 단위 수익을 올린 조앤 롤링 여사님 모두 자신의 세계에서는 신(神)이죠.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다루는 장르에서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자 자격을 얻을 것이고, 내공으로 싸우는 무협지에서는 김용 작가님이 창조주입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섭렵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고 또 다른 장르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님들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죠. 오늘 챕터에서는 저렇게 두 분만 언급하고 끝내려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금 더 디테일한 웹소설 소재를 갖고 글을 써 보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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