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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Mar 04. 2024

언(言)을 대체하는 의사전달 체계

제목만 보시면 좀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 언, 그걸 대체하는 의사전달 체계라니. 이게 웹소설 쓰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 자신도 이걸 웹소설의 핵심 주제로 쓸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외계문명 등 이질적인 문화를 다룰 때 추가할 만한 부가요소 정도로 생각하고 정리해 두려 합니다.


말을 대체하는 의사전달 체계는 많죠. 일단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자부터가 소릿말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시각적 기호로 청각적 말소리를 대체하는 건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감각은 시각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죠. 청각을 이용한 의사전달도 꼭 사람 말소리 외에 다른 것들이 몇 가지 더 있구요.


나름대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언(言)을 대체하는 의사전달 체계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상당수는 제가 예전에 읽은 소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 취어(臭語) : 냄새말 체계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게 '냄새'입니다. 냄새로 언어전달하는 게 쉽다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제가 냄새말 체계를 1순위로 꼽은 이유는, 이걸 등장시키는 소설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 '개미', 파트리끄 쥐스킨트 작 '향수'가 그러하죠.


소설 개미에서는 각 개미 간 의사전달 수단이 '페로몬'입니다. 페로몬으로 통칭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생화학물질을 조합한 향기를 내뿜어 그걸로 자기 감정과 기억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의 소릿말과 달리 거짓을 추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소설 향수에서는 이 냄새의 기능을 더 강화하는데, 시각적으로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고 모두 향기의 변형된 기능이라는 주장까지 나아갑니다. 즉, 예쁘고 멋진 사람을 보고 시각적으로 반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형상과 연관된 냄새작용을 연상하면서 반한다는 거죠.

(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긴 합니다만...)



동물 세계에서 간단한 취어 체계는 많습니다. 고양이과, 개과 동물들은 (전봇대 등에) 소변을 뿌리면서 영역 표시를 하죠. 하마는 응가(!)로 영역표시 한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페로몬 향수가 매혹 기능을 한다는 얘기는 꽤 유명하구요.


이 냄새를 상세히 분류하여 '의사 전달 체계'까지 승화시킬 수 있을까요? 인간의 소릿말 체계만큼 복잡한 전달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소설 개미에서는 그게 가능한 걸로 나옵니다. 거짓말 없이 각자의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일부 기능에서는 인간의 언어보다 더 뛰어난 걸로 묘사되죠.


소설 향수에서도 향기의 능력이 극한에 이르면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버리게 됩니다. 물론 주인공이 그 능력을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허무한 엔딩을 맞이합니다만... 아무튼 정신지배 가능한 걸로 묘사됩니다.



(상업적으로 망하긴 했지만) 제 소설에서도 취어 체계를 다루긴 합니다. 먼 우주를 여행하는 지구인 함대가 팬더/코알라 행성을 방문하는데, 이 팬더와 코알라들이 취어 체계를 쓰고 있어서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죠. 팬더와 코알라 측은 인간의 18세기 수준에 해당하는 문명을 이루고 있지만 인간 측에서는 이들이 방귀만 뀐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취어 체계는 지구인들이 생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기계문명과 싸우면서 지구인 함대가 개발살 나는데, 코알라 몸으로 인식체계를 다운로드 받고 취어 체계로 대화하면서 기계문명의 눈을 피하게 되죠. 그렇게 살아남은 뒤 다시 공략법을 연구해 결국 기계문명을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냄새로 대화하는 종족이 있다면 인간 입장에서는 새로운 암호 체계를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인간의 후각은 개/늑대 종류보다 떨어지니 기계로 보완해야겠지만, 잘 만들면 향수나 비누에 섞어서 암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되겠죠.



(2) 화어(畵語) : 그림글자말 체계


이건 아주 쉽습니다. 표음문자가 아닌 표의문자, 즉 '상형문자'가 대표적이죠. 시각적 표현으로 의사소통하는 건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합니다.


다만, 추상적인 그림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더 어려워지긴 합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모두 한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죠. 저도 어릴 때 한문 교육 받으면서 고통스러워했었구요;;


영화 '콘택트(2012년인가 제작된 작품)'에서는 문어다리 외계인들이 '먹물 화어'를 구사합니다. 큰 동그라미에 먹물 번지게 하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으로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연결지어 통합적 시공간을 표현하는 걸로 나옵니다. 당연히 이해 안 되죠;;


화어 체계는 길게 설명할 게 없네요. 넘어가겠습니다.



(3) 운어(韻語) : 노랫말 체계


인간의 목소리는 초성/중성/종성을 구분하여 발음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 등 혀가 발달한 동물들은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 정도로 세분화된 발음을 하지는 못합니다.


대다수 동물들은 초/중/종성을 구분하지 않는 소리를 냅니다. 늑대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사자의 포효 등은 정확히 인간의 언어로 재현하기 어렵죠.


그런데, 인간이든 동물이든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즉 나름대로 멜로디를 넣거나 강약을 조절하는 건 다 가능하죠.


그렇다면, 음감이 아주 좋은 인간이나 동물 사이에 멜로디(melody)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가 어릴 때 본 소설에 이렇게 멜로디로 대화하는 인간 종족이 나왔습니다. 아쉽게도 소설 제목은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아마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나왔던 것 같네요. 엄마와 딸 둘이서만 이 멜로디 체계로 대화 가능하고 아빠는 불가능하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보고 나서 한 40년 정도 지났고, 이제는 소설 내용도 가물가물합니다. 뭔가 멜로디 대화 종족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결론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에 TV를 보다가 '남미의 휘파람 종족'이 나오는 걸 봤습니다. 남미 산 속 깊은 곳에 휘파람으로 대화하는 종족이 있고 이 휘파람 언어가 거의 소멸되어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소설이 나름 근거 있는 내용이었나 봅니다. 어느 유럽인이 남미 산 속의 휘파람 종족을 실제로 만나보고 그 경험을 소설로 녹여낸 거겠죠.


뭐, 저처럼 음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휘파람으로 의사소통 할 수가 없습니다. 애당초 휘파람을 못 불죠... 제가 저기 태어났으면 벙어리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제 소설에 이 노랫말 체계를 반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작품소재로 정리해 두긴 합니다만 앞으로 제 소설에 등장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4) 최강무적 치트키 텔레파시


대다수 소설은 '갈등'을 다루고, 이러한 갈등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한 갈등은 전쟁(戰爭)일 겁니다. 판타지 무협 중심인 웹소설 분야에서는 전쟁 내지 그에 준하는 대전투가 자주 벌어지죠.


제가 쓰는 대부분의 소설에서도 전쟁이 등장합니다. 개인 수준의 싸움박질만 나오는 소설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전쟁으로 몰아가는 편입니다. 딱히 제가 전쟁광이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판타지 설정 들어가서 왕족 귀족 드래곤 등장하면 전쟁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이러한 전쟁 묘사를 하다보면 '정보전달체계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 측이 열세(劣勢)에 있다가 그걸 뒤집고 최강 세력을 섬멸하는 식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소수정예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일점집중/각개격파/성동격서 등의 작전을 수행해야 하고 이게 가능하려면 주인공 측 병력이 단일 정보체계로 즉각 움직인다는 설정을 추가하는 게 좋거든요.



현실 전투에서도 통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거의 실시간으로 연락하면서 싸우죠. 세계최강 천조국에서는 육해공군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면서 어마무시한 화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게 기본입니다.


지구 수준에서 전투를 한다면 우리 현실의 통신수단 정도로 충분합니다. 전파(電波)를 이용한 통신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니까 지구 반대편의 아군과 교신하면서 싸우는 경우에도 사실상 실시간 대화나 다름없습니다. 0.1초를 다툴 정도로 급박한 싸움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다수 전쟁에서는 전파통신으로 다 커버됩니다.


그런데, 이 시공간이 대폭 넓어진다면?


대략 태양계 단위까지만 가도 실시간 통신은 어렵습니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과 교신하려면 왕복 26분 걸리는 걸로 나오죠. 목성 이상 단위라면 거의 예전의 파발마 같은 느낌일 겁니다.


유명 히트작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이러한 교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광속통신'이라는 편리한 설정을 도입합니다. (당연히)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고 그냥 초광속통신이 있으니 몇백광년 거리도 전화하면 끝. 참 쉽죠?



이 '참 쉽죠 초광속통신'에 대해 제 나름대로 추가 설명을 덧붙이는 게 '차원접점을 통한 텔레파시'입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을 이어 주는 접점이 있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지성체들은 정신 에너지를 사용하여 이 접점에 연결할 수 있으며, 접점 자체를 순간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텔레파시 채널로도 활용할 수 있다. 뭐 그런 설정입니다.


(이 또한 당연히)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그냥 은영전에 나오는 초광속통신에 사족을 덧붙이는 것 뿐입니다. 작은 행성 지구의 작은 구석팅이 반도 땅의 작은 나라에 사는 평범한 사람의 상상일 뿐이죠.



별 거 아니지만 계속 상상합니다. 상상은 공짜거든요. 또 때로는 상상력으로 돈을 벌기도 하죠. 매달 치킨 몇 마리 사먹을 돈 벌면 나름 기분좋습니다^^.


잡다한 상상.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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