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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Mar 11. 2024

불멸(不滅)에 관하여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큰 꿈을~

기~나~긴 환상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故 신해철, '불멸에 관하여' 중 발췌>



이 '웹소설 소재 모음집'의 프롤로그가 '불멸의 글쓰기'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짧은 인생을 뛰어넘어 오래오래 기록되는 글자로 이야기를 만들어 남겨 두고 싶다는 욕구, 그걸 '불멸의 글쓰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7080 세대들이 X세대로 불리던 `90년대. 세기말 갬성이 충만하던 그 시절에 아직 마왕(魔王)으로 불리기 이전의 가수 신해철 씨가 불멸에 관하여 노래했었습니다. 제목과 달리 노래 가사에서는 '사라져 가야 한다면 두려움 없이 사라지겠다'고 했었죠.


이제 2020년대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세기말 갬성으로 휘청거리던 X세대는 어느새 반백살 전후가 되어 천명을 깨달을 나이가 되었고, 마왕 신해철 씨는 고인(故人)이 되었습니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이 내려 준 사명을 깨닫게 되는 나이. 이 나이 즈음에 20세기 말의 혼란을 생각하며 또한 불멸을 생각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봅니다.


글자로 남기는 제한적인 불멸이 아니라 각자의 존재 자체가 온전히 지속되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봅니다.


물론 제 상상력으로 다 커버할 수는 없겠죠. 기존 창작물에서 불멸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정리하고 제 나름의 방식을 추가해 보겠습니다.



(1) 인식체계만 넘어가면 돼 : 의식 다운로드 방식


인간이 상상하는 불멸은 결국 영생(永生)입니다. 100년 전후의 짧은 삶을 뛰어넘어 몇천년 몇만년 오조오억년 살아가길 바라는 게 인간의 꿈이죠. 진시황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꿈꿨고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런 불멸의 방식 중 하나가 '의식 다운로드'입니다. 인간의 핵심은 두뇌를 통한 인식체계와 생각하는 능력이니, 이 생각할 수 있는 인식체계를 다른 몸이나 기계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불멸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의식 다운로드 방식의 불멸을 다룬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건 [공각기동대]일 것 같네요.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 1편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은 전뇌(전자두뇌) 및 의체(사이보그 육체) 분야에서 최초+최강입니다. 뇌 빼고 모든 신체부위가 강력한 기계장치로 대체되었고, 오랫동안 의체를 사용하고 적응하면서 격투능력도 뛰어납니다. 극장판에서는 안 다뤘지만 여러 개의 의체를 옮겨 다니기도 하죠.


그런 소령이 극장판 후반부에 내린 결론은... '그냥 인터넷 공간에 녹아들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였습니다. 본인의 의식 전체를 인터넷 공간에 업로드 하고 특별히 육체를 갖지 않은 채 필요하면 그때그때 안드로이드에 다운로드 해서 움직이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에 영원히 떠도는 존재'라는 컨셉은 공각기동대 극장판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대략 `90년대 초반쯤에 나왔던 영화 '론머맨'에서 이미 인터넷을 지배하는 신적 존재가 등장했었습니다.


론머맨은 '잔디깎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지적장애 있는 남자가 이 영화 주인공인데, 싸이코 과학자를 만나 두뇌에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실험을 당하면서 초천재 캡짱맨으로 재탄생합니다. 그리고 결국 인터넷 공간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죠.

(이 영화가 `90년대 초반 작품인 걸 고려하면 매우 획기적입니다.)


(스포일러 쓰면) 싸이코 과학자는 컴퓨터에 연결된 랜선을 모두 다 뽑아버려서 초천재 론머맨을 로컬 IP에 가둬 버리려고 합니다만, 영화 끝에 전화가 울립니다. 전화선을 인터넷 연결망으로 활용하던 시대에 어울리는 결말이네요.



이러한 의식 다운로드 방식이 제대로 된 불멸이고 영생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육체 자체를 갖고 살아야 영생일 것 같은데 말이죠.


의식을 다운로드 하긴 하는데 인간의 육체를 다시 갖게 되는 설정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의식을 복제'하는 거라 중간에 단절이 일어납니다. 이게 참 애매하더군요.


항을 바꿔서 살펴보겠습니다.



(2) 인식체계가 넘어가긴 했는데 복제품이야 : 새 육체에 다운로드 받는데 단절이 일어나는 방식


저는 SF드라마+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중 드라마 2개를 꼽는다면 '스타게이트'와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선정할 겁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닥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영미권에서는 상당한 팬층을 확보한 것 같더군요.


스타게이트에서는 '고대인이 만든 행성 이동 워프게이트'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워프게이트는 [입구로 진입한 생명체가 원자 단위로 분열되고 반대편 출구에서 동시에 동일한 개체를 원자 단위로 재구성하여 기억까지 완전 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서 해당 생명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분해되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며, 그냥 순간이동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복제생명체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원본이 원자 단위로 순식간에 분열되었고 동일한 개체가 복제되었다]는 사실은 존재합니다. 즉, 원본은 죽은 것이고 복제생명체는 새로 태어난 겁니다. 원본과 복제생명체 간에 단절이 일어나는 거죠.


이렇게 (원본이 깨닫지 못하더라도) 원본이 죽고 복제생명체가 그 뜻을 이어받아 살아가는 걸 불멸(不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원본이 아픔을 못 느꼈다고 해도 사실은 죽었잖아요. 죽었는데 불멸이 되긴 어렵지 않을까요?


스타게이트 자체에서도 이 문제를 의식한 듯 '복제 재구성 오류'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스타게이트 2개가 중복 작동하는 상황에서 복제체가 2번 탄생한 거죠. 결국 주인공들과 똑같은 다른 팀이 나타나 별도로 활동하다가 주인공들과 만나게 됩니다.



스타게이트의 복제생명체는 불멸의 삶 자체에 대해 다룬 건 아니고 워프 원리를 설명하려고 추가한 설정입니다. 본격적으로 '새 육체 다운로드를 통한 불멸의 삶'을 다루는 건 배틀스타 갤럭티카 쪽입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 지구에서 가장 크고 강력했던 전투함을 '배틀쉽(Battleship)'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배틀스타(Battlestar)입니다. 물론 항성 수준으로 거대한 우주전함은 아니지만 일단 미래 배경 우주전투함 중에서는 가장 크고 강력한 전투함이죠. 작품 내에서는 퇴역해서 박물관으로 쓰려다가 긴급 복귀한 상황이라 누더기 신세입니다만...


이 작품에서 기계문명 측을 '사일론'이라고 하는데, 사일론은 메카닉/바이오닉 2가지 타입이 있고 바이오닉 사일론은 거의 인간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이 사일론들은 인식체계 다운로드를 통해 계속 생명을 이어 가며 그 시스템이 잘못되지 않는 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식체계 다운로드 시스템에 '단절'이 있습니다. 즉, 스타게이트의 워프와 유사하게 원본 육체는 죽고 / 죽는 순간 원본의 기억과 인식체계가 마더쉽(Mothership)에 업로드 된 뒤 그걸 원본과 동일한 복제 육체에 다운로드 하는 방식입니다.


원본이 죽는 순간의 기억까지 다 다운로드 하기 때문에, 새로 깨어난 복제체는 죽음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핵폭발로 0.001초 만에 증발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땅에 생매장되어 죽었거나 기계에 갈려서 잘게 다져졌거나 등등으로 죽으면... 영 좋지 않겠죠.



이렇게 인식체계 다운로드 방식으로 '복제체가 기억을 이어 나가는 것'을 영생(永生) 내지 불멸(不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저는 이걸 영생/불멸로 보지 않습니다. 어쨌든 원본은 죽잖아요. 죽었으면 영생이 아니죠.


영생/불멸이 되려면 원본이 안 죽는 게 가장 편합니다. 원본이 안 죽으려면 '파괴되어도 금방 재생된다'로 가는 게 제일 쉽겠죠.


참 쉬운 불멸. 미국 코믹스 쪽에서는 [힐링팩터]라고 부릅니다.



(3) 힐링팩터 방식 : 수많은 불사신 작품들. 울버린, 데드풀, 무한의주인, 3X3아이즈, 기타등등


"죽이는 정도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온 대사라고 합니다. 죽이는 정도로는 죽일 수 없다면 뭘 어쩌라는 건지...


이렇게 죽이는 정도로 죽일 수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매우 많습니다. 소제목에 언급한 3X3아이즈의 경우, 삼지안의 경호원이자 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한 '무(无. '우'로 읽기도 합니다.)'는 세포 단위까지 다 태워버려도 몇 달 내에 재생되죠. 좀 짱입니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무한재생 힐링팩터'가 제일 간단합니다. 일단 안 죽으니까요. 주인공을 함부로 굴리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쉬운 만큼 유사한 컨셉의 작품이 많습니다. 위 소제목에 언급한 작품들만 해도 아주 짱짱합니다. 어지간한 창작자들은 저 작품의 1/10도 따라가지 못하고 필멸자의 삶을 마감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무한재생 힐링팩터에 '조건'을 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뱀파이어 이야기가 대표적이겠죠. 물론 뱀파이어는 기존에 너무 많은 제약조건이 걸려 있어서 요즘은 제약조건을 완화시키는 추세에 있습니다만, 그래도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 있듯이) 뱀파이어 가슴에도 약점 하나쯤은 존재하는 게 국룰입니다.


힐링팩터는 길게 설명 안 해도 되겠네요. 다음 방식 살펴보겠습니다.



(4) 멀티육체-단일정신 방식 : 가이버 앱톰, 본 작가의 OMMB


인식체계 다운로드 방식은 원본육체가 소멸하기 때문에 약간 마음에 안 들고, 무한재생 힐링팩터 작품은 너무 많습니다. 뭔가 특이한 걸 원하는 창작자라면 '제3의 길'을 고민하게 되겠죠.


제가 아직 소설을 쓰기 전, 이렇게 제3의 길로 영생/불멸을 제시하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가이버'라는 작품이었는데요.


가이버의 주인공은 단순 힐링팩터 방식입니다. 머리가 박살나도 무한재생되고 그 기억도 동일하게 살아납니다. 주인공의 모든 생체정보가 가이버 통제장치에 입력되어 별도 차원의 에너지로 재구성되는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원래 악역이었다가 츤데레 동료 수준으로 격상된 존재가 한 명 나옵니다. '앱톰'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패한 실험체인데요.


앱톰은 실패한 실험체지만, 만든 사람의 관점에서 실패했다는 거고 앱톰 개인의 입장에서는 좀 다릅니다. 앱톰은 다른 존재의 세포를 침식하고 흡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 능력을 통해 '멀티육체'를 구현할 수 있거든요.


즉, 앱톰은 여러 개의 몸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습니다. 몸의 일부를 떼내어 다른 지성체에 붙이고 그 일부분이 지성체 전부를 장악하면 몸이 여러 개가 되고, 그 여러 개의 몸이 단일한 의식을 공유하면서 일부 개체가 파괴되어도 전체 의식은 잘 유지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가이버 앱톰의 멀티육체-단일정신 시스템을 제 작품에서 변형한 게 '옴브(OMMB)'입니다. One Mind Multiple Body의 머릿글자만 딴 건데요. 제가 SF장르로 소설 쓰게 되면 꽤 자주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물론 아직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 작품이 전반적으로 저조한데 그 중에서도 SF는 더더욱 저조하거든요. 많이 퍼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럴 일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제가 쓴 글 자체는 인터넷 공간에 오래오래 남을 거니까요. 제 생각의 일부분이 인류문명의 집단의식 속에 아주 작게나마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인류문명 자체가 멸망할 때까지 남아 있을 거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단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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