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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Mar 18. 2024

메탄이 강물처럼 흐르는 땅

앞부분에 잠시 썼듯이, 저는 SF로 시작한 (하꼬) 웹소설 작가입니다. 소설로 먹고 살 수준이 안 되는 와중에 그나마 좀 팔린 작품은 19금 야설이고 SF는 계속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SF가 기본이긴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 과학 관련 다큐멘터리나 기사를 보긴 합니다. 물론 문송한 수준에서 제대로 이해 못하고 보는 거지만 그래도 찾아보긴 합니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보구요.

(성인소설 쓸 때면 BBC로 말장난을 합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본 BBC 다큐멘터리에서 좋은 SF 소재 하나를 건졌습니다. 제목에 쓴 대로 '메탄이 강물처럼 흐르는 땅'인데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 아니라 매우매우 척박하고 춥고 얼어붙은 냉기지옥 같은 땅이긴 합니다만... 일단 뭔가 흐르긴 흐릅니다.


그 땅의 이름은 '타이탄(Titan)'입니다. 지구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토성의 위성이죠.


(1) 행성 급 위성 타이탄


타이탄.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세대의 신들에게 처발려서 쫓겨난 1세대 신 '티탄'을 영어식으로 읽은 이름입니다. 토성(새턴)이 원래 '크로노스'를 의미하고 크로노스는 이 티탄 신 중 하나였다는 걸 생각하면 약간 선후관계가 뒤집힌 것 같은데, 최초에 이름 지은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런 겁니다. 받아들여야죠.


이름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고. 타이탄은 토성의 위성 중에서 가장 크고, 태양계의 모든 위성 중에서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 다음으로 큰 2등 위성입니다. 행성 급인 수성보다도 더 크다고 하니 나름 등빨은 좋습니다. 자체 중력도 상당하다고 하네요.


처음 타이탄을 발견했을 때에는 짙은 대기 때문에 내부 상태는 관찰하기 어려웠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카시니-하위헌스 같은 무인 탐사선을 보내면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타이탄의 표면에 강이 흐르고 바다가 있으며, 산맥과 삼각주 지형까지 발견된다!'는 사실을요.


우리가 중~고딩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듯이, 삼각주 지형은 오랜 기간 동안 강물이 흘러 침전물이 쌓여야 합니다. 물이 증발하여 기체가 되고 다시 액체로 변해 빗방울로 떨어지고 중력에 따라 흘러내리며 침전물을 긁어 오는 작업을 몇십만년 반복해야만 삼각주가 생기는 겁니다. 즉 '액체의 순환'이 오랜 기간 꾸준히 일어나야 하는 거죠.


이 삼각주 지형이 타이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죠. 영하 -100도 이하로 내려가는 차가운 우주공간에서 액체가 순환하다니! 오 놀라워라 처음 보는 삼각주.


그리고 똑똑한 과학자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타이탄의 온도와 지형에서는 '물'이 흐를 수 없다는 것. 물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있어도 모두 다 꽁꽁 얼어붙어서 돌덩어리 철덩어리 급으로 뭉쳐 있을 거라는 것.


즉,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삼각주 지형과 바다를 만든 건 물이 아닙니다. 지구에서는 기체지만 타이탄에서는 액체인 물질 - '메탄'이었습니다(영어발음 좋아하시는 분들은 '메테인'으로 읽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의 메탄은 좀 골치아픈 물질입니다. 이산화탄소보다 몇십배 더 심하게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물질이라고 하네요. 기본적인 구성 성분은 석유 및 그 정제물과 비슷하게 탄소(C), 수소(H), 산소(O) 원자로 구성된 고분자화합물 구조라고 합니다.


메탄을 잘 모아서 태우면 연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생화학적으로 발생하는 메탄은 그렇게 모을 수가 없죠. 인간의 육식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대량으로 키우는 '소'가 메탄 방귀를 뿡뿡 뀌는 바람에 지구온난화가 더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골칫덩이고 기본적으로 기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엄청 추운 타이탄에서는 메탄의 온실효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기본 형태가 액체니까요.


대신 '물'은 암석 형태로 존재합니다. 영하 -100도 급이면 지구의 얼음처럼 파삭파삭 깨질 일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금속에 가까운 물성(物性)을 띌지도 모릅니다.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얼음칼이 타이탄에서는 당연한 형태일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타이탄의 대기에는 질소(N2)가 매우 풍부합니다. 지구의 대기도 78% 정도가 질소로 이루어져 있는데(과자에 질소를 가득 채워 주기도 하며 질소를 사면 과자가 따라오는 현상도 발생합니다), 타이탄의 대기에도 질소가 많다고 합니다.


대략 과학다큐에 나오는 내용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SF적 상상력으로 넘어가 보죠.



(2) 타이탄에는 생물에 필요한 게 다 있네?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지구 생명체 기준으로 생물(生物)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탄소(C) 기반 생명체입니다. 물론 탄소만 잔뜩 모은다고 되는 건 아니고 몇 가지 추가 원소가 필요하긴 하죠.


생물을 이루는 4대 원소는 (물 불 바람 땅이 아니라)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입니다. 이 중 질소를 제외한 나머지 3대 원소로는 탄수화물/지방을 합성해 낼 수 있고, 여기에 질소가 추가되면 '단백질'이 됩니다. 생물의 기본인 세포(cell)를 만들려면 단백질이 필수라고 하더군요.


이 4대 원소 중 수소와 산소는 '물'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질소는 공기 중에 풍부하지만 이걸 땅으로 흡수시키려면 번개를 히밤쾅 때려버리거나 / 특수한 질소분해 세균을 투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문과 수준에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지구는 1) 물을 기반으로 하여 2) 예전부터 순환해 온 탄소를 더하고 3) 번개 히밤쾅 등등으로 분해된 질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생물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미약한 단세포 남조류밖에 없었지만 38억 년 동안 생물체를 진화시키면서 이제 꽤 복잡한 지성체들이 많아졌죠.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만.



여기서 잠깐. 그런데 말입니다.


지구에서 생물을 탄생시킨 4대 원소. 이거... 타이탄에도 다 있네요?


앞에서 썼듯이 메탄에는 탄소+수소+산소 원자가 다 있습니다. 질소는 타이탄의 대기 중에도 넘쳐나죠. 물 대신 메탄이 순환하면서 구름도 생기고 번개 히밤쾅도 생길 테니, 질소 원자가 액체 메탄에 녹아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메탄의 바다 안에서 4대 원소가 서로 춤추는 일도 있을 거구요.


이러면... 생물을 탄생시킨 원시 지구의 바다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바다를 이루는 주요 구성 성분은 물이 아니라 '메탄'이지만, 어쨌든 필요한 건 다 있는 것 같은데요?



지구의 석유는 과거에 살던 생물체들의 잔해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타이탄에도 석유 비슷한 물질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타이탄에는 '플라스틱'도 있을 거라고 하네요.


물론 타이탄의 석유 비슷한 건 생물체의 잔해물이 아니고 메탄과 유사한 고분자화합물이 화학적으로 합성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만, 아무튼 생물체의 구성성분과 비슷한 게 있긴 있다는 거죠.



타이탄에는 있을 게 다 있습니다. 지구보다 훠어어얼씬 더 춥고 완전 꽁꽁 얼어붙은 땅이긴 하지만, 너무 춥다 보니 지구의 기체가 물 비슷한 액체로 순환하면서 강과 삼각주와 바다를 만들어 냈고 물은 암석~금속 수준으로 딱딱한 덩어리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지구와 비슷해 보이는 지형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체에 필요한 4대 원소도 다 있구요.


이러면 SF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딱 좋죠. '얼음 위성에서 발달한 메탄 생명체'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활동이 우리 지구생명체에 비해 매우 느릴 것입니다. 온도가 높다는 건 결국 열에너지가 많다는 뜻이고 반대로 온도가 낮으면 열에너지가 적은 건데, 영하 -100도 밑으로 내려가는 얼어붙은 땅에서 생명체가 생긴다 해도 활동할 에너지가 극히 적어서 느릿느릿 움직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에게는 '문과적 갬성'이 있습니다... 문송한 수준에서 약간의 과학 지식을 습득하면 거기에 바로 문과갬성 추가해 버리죠. 열에너지 부족 현상 같은 건 '마법적으로 작용하는 다른 차원의 힘'으로 메꾸어 버립시다. 그까이거 마법으로 극복하면 됩니다. 참 쉽죠?



(3) SF를 가장한 판타지 설정


메탄이 강물처럼 흐르는 땅 타이탄. 그 곳에는 메탄의 바다에서 태어나 몇십억 년 동안 진화한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메탄을 기반으로 형성된 육체를 가지고 있고 메탄처럼 짭쪼름한 피가 흐르며 메탄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존재들입니다.


이 메탄 생명체들은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그건 '얼음'입니다. (지구의 원시인들이 돌을 뾰족하게 쪼개 그걸로 동물 등짝 좃아 버렸던 것처럼) 타이탄의 고등생명체들은 얼음도끼를 사용해 사냥합니다. 얼음이 지구의 강철 급으로 단단한 건 보너스.


이 생명체에 빙의한 기억이 북유럽 신화의 '서리거인(Frost Giant)'와 연결됩니다. 불의 신 로키도 그 서리거인 일족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불의 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하 -100도에서 액체 메탄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들에게 '불'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에게는 지구의 평범한 온도조차도 불지옥처럼 뜨거울 겁니다. 그들이 지구의 환경을 경험하고 지구의 폭발적인 열에너지를 느꼈다면 그 자체가 '불덩이'일 겁니다.


서리거인 일족인 불의 신. 그는 지구인이었습니다.



(4) 혹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얼음나라/불나라 여행


액체 메탄을 순환매개로 사용하는 생명체가 있다면, 역으로 매우 뜨거운 온도에서 '액체 금속(대략 구리/철 정도)'을 순환매개로 사용하는 생명체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탄소 기반 생명체의 범주에서는 벗어나지만 이 또한 문과적 갬성으로 극복한다 치고.


지구인 A는 얼음나라와 불나라를 모두 여행합니다. 얼음나라는 타이탄. 불나라는 대략 수성 내부. 각각의 세상으로 넘어가면 신체 리듬과 원자구조가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바뀐다는 마법적 설정을 넣어야겠죠.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거인국이 그랬듯이, 각각의 나라는 그에 맞는 특성을 가질 겁니다. 얼음나라는 너무 느리고 불나라는 너무 성급하겠죠. 확 그냥 맞짱뜰 수 있을 거구요.



아직 이걸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만든 건 없습니다만, 언젠가는 소설 테마로 써먹으려고 합니다. 일단 정리만 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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