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11년 독일 살이 안녕, Auf wiedersehen

by janvieretmars

2018년 우리가 결혼했을 당시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그중 한 가지는 가족.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면 한국 아니면 프랑스에서 사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임신을 준비했지만 아기는 찾아오지 않았고 2019년 그 해, 내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그때, 난 아기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해, 남편에게 프랑스 파리 지사로 가서 프랑스 시장을 키우라는 미션을 받았다. 난 당연히 남편을 지지해 줘야 됐고,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15년이 넘는 독일 생활이 힘들었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했다. 나도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는 곧 세계 판데믹이라고 정의되었고, 많은 제약들이 생겨났으며 그중 하나는 이동제한이었다. 이사를 계획했으나 아기가 태어나 할 수 없었고,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2년이 지난 지금 난 파리에 살게 되었다. 2년 동안 이삿짐과 함께 살아야 했다. 당연히 이사 갈 줄 알고 2020년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열심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매 계절, 매 해 이사 갈 것만 같아서 이삿짐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백신이 계발되고 코로나와 함께라는 정책 덕분에 이사를 가게 된 날짜를 받았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이사이지만 나의 11년 독일살이를 접어야 되는 날이 왔다. 난 독일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다들 독일에 경영 석사를 왜 하러 가냐는 그때 난 미국 MBA가 아닌 독일 만하임 경영 석사를 선택했다. 영어 프로그램이라는 매력, 그리고 등록금이 없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처음에 갔을 때 독일어를 잘 못해서 공무원들에게 구박을 받았다. 이 악물고 더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다. 경영에 수학은 왜 필요한지 한국에서 경영하고 다른 부분 때문인지 한국 경영에서 잘못 배운 건지 남들 따라가느라 힘들었지만 더 열심히 했다. 그렇게 경영 석사를 하고 인턴십을 못 구하게 될 때, 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나 보다 싶었다. 그러다가 보다폰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 인생 첫 정규직이라는 걸 해보았다. 거기서도 남들과 뒤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난 모든지 할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늦게 까지 일하고 더 열심히 도와줬다. 독일인이 아니고 경력이 적은 여자라서 무시받은 적도 몇 있었지만 그때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열심히 일해서 부장이라는 것을 맡아서 일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 와중에 평생을 같이 할 남편도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힘든 일을 다독여 주고 좋은 일을 축하해줄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독일 시스템, 사회 분위기, 문화, 정치 등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이해 못 하는 부분도 많다. 나에게 독일은 제2의 고향 같았다. 이제는 독일은 나에게 내 청춘을 불태운 나라가 되었다. 독일은 나에게 최선을 다하면 기회를 창출하고 성장할 수 있는 나라였다. 독일은 나에게 삶을 살면서 강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독일은 독일인은 차갑게 보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독일이 그립다. 파리에서 사는 게 좋은 점들이 많지만 가족이 살기엔 독일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프랑스 고국에서 자리를 잡게 된 남편을 응원해 주고 싶었고, 아들이 정체적 확립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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