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모방력은 포유류 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얼마 전. 별 다를 것도 없이 평범한 회식시간. 알바하던 곳에서 열린 회식자리에서의 일이었다. 뻔하고 흔한 자리에 모인 한시적인 관계들. 나와 일적인 것 외에 무엇도 엮이지 사람들이 즐겁게 한탄을 풀어내는 곳에서 나는 거진 들어오는 질문에만 맞받아치며 연거푸 취하지도 않는 술만 들이켰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아본 건데 난 내 마음이 가닿은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아니면 그다지 취기가 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이 나에게 던지던 언어의 행렬 중 두 가지의 말이 술자리의 다음날에도 두통이 수반되지 않은 채로 똑똑히 기억났다.
"내가 XX 씨 나이였으면 두려울 게 없는데~", "놀 나이이기도 하고 더 열심히 놀아요" 이 두 가지 외엔 딱히 인상적인 말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단 두 문장이 날 잠시동안 죽인 말이었으니까.
내가 이 말을 통해 비추고자 하는 흔한 수렁을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는 확실히 하고 가야겠다.
비단 이들만이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질까? 나에게 직접 하는 건 고사하고 지금껏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눈앞의 20대 초반들을 일반화하여 이와 비슷한 성질의 말을 던지는 광경을 십 수 번이고 직접 보아왔다. 무엇보다도 거지 같은 건 당장에 나부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딱 잘라 자신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를 포함해 타인에게 이런 허례허식의 성질을 띈 자기중심적인 if 식의 말을 던지는 이들의 특징은 그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나름대로 성의껏 해주는 말 중에 꼭 섞여드는 것 중 하나가 저런 식의 듣기 좋은 말들이라는 게 포인트가 된다. 그것들이 모여 형태를 갖추고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 이윽고 속이는 자만 있는 수렁이 되는 건가 싶다.
그 말은 어쩌면 위로의 차원에서 하는 농담일 수도. 어쩌면 과거의 후회스러운 자신에게 투영하는 궤변일지도. 어쩌면 진짜 본인의 순수 '경험'을 토대로 정해놓은 정의일 수도 있겠다만.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남에게는 함부로라도 꺼낼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특수한 악의를 지닌 가스라이팅을 제외하면 그런 말들의 기초 토대는 본인 근처의 타인과 본인의 경험에 따른 말들을 그저 할 말이 없어서 주르륵 꺼내놓은 것일 뿐인 스몰토크임에도 결과적으로는 그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가 크든 작든 상대한테 자신을 투영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얼굴만큼이나 다르고 다양한 모습의 인생인데 그런 말을 꺼내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에게는 그 점들로 인해 타인을 확정 짓는 말들의 모든 종류가 농담조로 가볍게 던지면 던질수록 더욱 가증스러운 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혹여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 중에는 그런 식의 말들쯤 알아서 걸러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사람만의 특수한 강점. 모방력이란 건 언제 어디서든 상시로 작용한다는것을 느꼈으면 한다. 흔히들 부모의 거울은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말마따나 태생이라는 건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벗어날 수 없다. 자의식이라 일컫는 개념 또한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던 사람은 타고나면서부터 무언갈 보고 베끼기 때문이다. 거기서 생성되는 자의식이 과연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자의식이겠는가. 결국 눈을 뜨고부터 개조되는 나의 성분이 누군가로부터 들은 개천에서는 생선만 난다는 말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다만 여기까지의 말이 환경 탓, 주변 탓으로만 치부되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환경의 영향이 크다한들 거기서 본인의 그릇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필요에 따라 타인을 포함한 주변환경을 절제해내야만 한다. 그중에서 타인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쉬운 동시에 극도로 피곤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과는 충돌하며 그것이 지금의 내게 필요한 관계인지 아닌지 정하는 것은 온연히 미숙한 본인의 몫이다. 그 미숙함을 판단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글의 첫 단락에 써놓은 저런 식의 뭔가라도 아는 듯이 말하는 어투에 수시로 흔들리고는 하니까. 그렇기에 나의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게 가장 먼저이며 그다음 취할 스탠스로는 세 치 혀들의 언어로 하는 시간 때우기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내 상황을 모르는 이들에게, 거기에 더해 나에게 조금의 진심도 가지지 않은 이들이 내게 향해 펼치는 말을 담아낼 정도로 나의 귀와 뇌가 많지 않았음을 조금 깨달았다.
사람은 타인에 죽고 타인에 산다. 자신 이외에는 다른 모든 이들을 한시적으로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나라고 그 평범의 궤도에서 조금도 벗어났을 리가 없다. 하고 많은 것들 중에 무엇을 기준 삼아 삶을 정할지 점점 가닥이 잡히나 싶은데도 결국 종래에는 정답이라 정해놓은 것들이 끊임없이 손에서 빠져나오는 더러운 기분과 함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