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의 파도 속에서 성장하는 우리
뉴노멀과 4차 산업혁명.
코로나 바이러스. 2020년 초, 최초로 발생된 이 바이러스는 2년 가까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덕분에 내 1학년은 조그마한 추억 몇 개를 남긴채 날아가버렸고. 돌아온 2학년은 1학년때와는 다르게 꽤 행복하지만, 마스크를 여전히 써야 한다는 것과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 또 인원제한으로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수 없다는 것 등, 재앙의 잔해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의 삶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과거의 추억도 기회도 놓쳤고, 시간도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과거만 바라보며 상실감에 짓눌릴 순 없는 노릇. 우리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중 하나인 '뉴노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 4차 산업혁명인 '뉴노멀'은 디지털 세계, 언택트 시대, 직업의 종말, 종교의 미래 등등. 인류의 많은 행보를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세대로서, 다시 한 번 변화를 택해야 한다. 오늘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당겨온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뉴노멀'에 대해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
바이러스는 2년째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의 발생지인 중국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중국 혐오 곧 동양인 혐오로 이어지며, 많은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은 생각보다 더 추악했다. 일본인 유학생이 프랑스에서 기침을 하자, "넌 모두를 감염시키러 왔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례나 아시아인을 보고 "넌 프랑스에게 환영받지 못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등의 사례가 그 예로 나올 수 있다. 인종차별은 뉴노멀, 세계화,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존중 받을 수 없는 행위다. 같은 행성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종족들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찌 그리 서로를 혐오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된다. 인종차별에 대한 올바른 시선 같은 것은 없다. 모두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나는 무엇보다 언택트 시대가 생각난다. 언택트는 '접촉없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어떠한 접촉없이 물건을 구매하거나, 온라인의 기능을 이용해 수업을 하는 등의 것들을 이야기한다. 언택트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는 확진성이 강한 바이러스라 접촉성이 최대한 제한되야했고, 그 결과 언택트 시대는 예정보다 빨리 와버렸다. 언택트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서, 직업의 종말, 종교, 자율주행 자동차 등을 이야기한다.
직업의 종말은 언택트 시대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몸을 쓰는 일들 대부분이 로봇으로 대체되기로 했다. 또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회사의 일을 도와주는 직업 같은 것도 로봇으로 대체되어 언택트 시대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재택근무의 직업들이 더욱 떠오르고 있는게 현 시점이다. 직업의 종말은 인간성이 결여된 노동조차 없애버리는 현상이다. 인간이 그동안 인간으로서 살 수 있었던 건 로봇이 무언가를 대신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몸으로 노동을 했으며 그 행동 하나 하나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성을 결여했던 것이 노동의 핵심이었다. 노동의 핵심인 인간성의 결여가 사라지는 이유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유, '편리함' 때문이다. 편리함의 예는 대표적으로 하나를 들 수 있는데, 자율주행 자동차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말 그대로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다. 인간이 어떠한 노동을 할 필요도 없으며, 팔을 움직이거나 시선을 통해 갈 곳을 정하는 등. 최소한의 노동 조차 없어졌다. 이 기술이 좋은건지 안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편리함 때문에 로봇들이 모든 노동을 대체하고, 그 대표작으로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재택근무 직업의 '비상'이 나왔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우리가 이 시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자신의 희소성이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 외에는 조명받지 않는 직업들. 그 사이에서 자신이 쓸모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선 그 누구에게도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소성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살아남는 것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사회에서 돈을 벌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계발'을 해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이런 혁신이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거라는 것을 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언택트 시대와 그 사이 직업의 종말, 비대면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인 '희소성'. 이 두 개 전부를 인지하고 똑바로 마주했으면 한다.
그 다음으로는 디지털 시대다. 요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코딩을 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히, '미래를 위한 준비'인데. 이는 쉽게 말해 미래에 코딩이 핵심적인 직업성을 가질 것이라는 얘기다. 디지털 시대는 온갖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시대다. 우리는 현재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으며 서울에 가면 보이는 거대한 TV, 영화관 속의 기능들. 모든 것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런 디지털성이 강해지는 시대 속에서 프로그램을 이루는 코딩은 핵심적일 수 밖에 없다. 코딩은 미래의 시대를 이끌 능력이다. 코딩을 알게된다면 희소성을 높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코딩에 대한 능력만 높여도 희소성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희소성은 분명 '일반적인 직업들' 속에서는 필수적이지만, 코딩만 익혀놓는다면 코딩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희소성이 쉽게 올라간다. 모두 코딩의 능력에 대해 인지하고 조금은 필요성을 느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는 종교다. 종교는 모든 시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펼쳤다. 이번 시대에서도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다음 시대인 '뉴노멀'의 시대에서는 이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뉴노멀은 비대면을 추구한다. 비대면은 종교의 대면성과는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인간의 특성상 아무런 압력도 없이 신앙을 유지하기란 힘들다. 그래서 교황은 모든 신도들의 신앙을 위해 세상의 주인을 추천했다. 세상의 주인은 점점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세상의 주인인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가라는 절대적 신앙의 밑거름을 다지고 있다. 신앙은 우리가 힘들때 쉬어가는 가로등이다. 우리들중 그 누구도 스스로의 미래를 알 수는 없기에, 미래를 신에게 거는 것이다. 우리에게 종교는 이제 거대한 힘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신앙을 강요하는건 종교의 근본이 아니다. 그러나 신앙을 유지하는건 교회를 다니는 신도의 앞가림에 가깝다. 언택트 시대 속에서도 신앙을 유지하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 인터넷, 직업의 종말, 언택트 시대 등등.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누구는 변화라고 하며, 누구는 발전이라고 하는 요즘. 나는 그 무엇도 받아들이기가 싫다. 4차 산업혁명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발전에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과연 발전이 옳은가?'. 모든 발전은 항상 인간을 궁지까지 몰고갔다. 혁신적인 방아쇠라는 인터넷 또한 장점과 단점을 거하게 내포하고, 몇몇의 사건을 통해 그 진실을 보여주며 혁신과 발전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4차 산업혁명은 한 사람이 세계를 뒤흔들 영향력을 갖고있는 시대다. 전 세계에 퍼진 SNS기능은 온갖 사건을 일으켰으며, 사소한 논란까지도 30분 쯤 뒤면 전 세계에 퍼지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한 사람이 시대를 좌우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손에 거대한 총을 준 것과 같다. 이제 세계는 온갖 변수로 가득찬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의 할 일이 있다. 시대는 끝없이 변화하고 인간도 시대에 맞추어 변화한다. 하지만 시대에 너무 휩쓸리지 않게 하는 것도 우리 나름대로의 할 일이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는 앞으로도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새로운 변화가 찾아와 시대를 뒤바꿀 것이며, 어쩌면 그 변화 속에서도 재앙의 흔적은 씻겨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왔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모두 더 나은 삶을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