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08

변화의 불빛 아래서

by 만보

변화의 불빛 아래서


08 게르의 변화.jpg


편리함 속의 낯섦


초원에서 마주하는 게르는 시간의 두께를 품은 집이다. 지난 두 번의 여행에서 전통 유목민의 게르에서 머물며 난롯불을 지피고, 조악한 외부 화장실을 이용하며, 며칠 동안 씻지 못한 머리를 큰 물통으로 만든 샤워기로 헹구거나, 생수병 하나로 양치와 세수를 해결해야 했다.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 불과 물, 바람과 땅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원형을 체험했었다. 그때의 게르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 유목의 정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다시 찾은 게르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첫날 머문 게르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부속실로 딸려 있었고,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처음 몽골 여행을 경험하는 덕종씨는 나에게 들뜬 목소리로,

‘형님, 화장실에 샤워기도 있고 비데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믿지 못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덕종씨와 영우씨에게 했던 말들이 모두 의미 없는 거품이 되는 순간이 되어버렸다. 몽골 여행 경험이 많은 기후씨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도시 근교도 아닌 오프로드에서 묵는 숙소도, 이제는 현대 문명 속으로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08 게르 전기 라지에이타.jpg


난로 불꽃의 기억과 그리움의 질문


불침번을 서며 새벽에 장작을 넣던 난로는 연통도 없는 장식용으로 남았고, 그 자리를 전기 라지에타와 전기 패널이 대신하고 있었다. 전기의 따스함은 분명 편리하고 안정적이었으나, 불꽃이 타오르며 따닥거리는 소리, 장작 타는 고소한 냄새, 손끝과 얼굴 볼에 스치는 불빛 온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멈칫했고, 동시에 미묘함과 서늘한 감정이 들었다. 10년도 채 되지 않는 세월에 게르의 변화는 초원을 덮는 강풍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고 있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관광객들의 수요를 맞추려는 주인장이 적응하려는 변화일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과거보다 나은 발전이란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 속도는 우리를 종종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멈칫하게 한다. 불편했던 전통 게르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내 몸 세포 곳곳에 오래 남아 있음을 기억하게 했다. 그것은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내 안에 깊이 스며든 ‘사람 사는 냄새의 감각’이었다.


어릴 적, 유리창에 핀 겨울꽃 위로 숨결을 불어 넣고, 그 위에 장난스레 발자국 그림을 그리던 추억. 아랫목 장판이 검게 그을린 방, 솜이불 속에서 온몸을 녹이며 잠들던 기억. 그 모든 것들은 그때는 불편이었으나, 지금은 차마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두리뭉실하게 떠오른다. 도시라는 문명 속에서 곱게 길들여진 나의 감정이 따분함 때문인지, 혹은 진정한 인간적 체험을 향한 내면의 갈망인지, 나는 쉽게 구분할 수 없었다.


변화와 편리함은 과연 좋은 것인가?


게르는 몽골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집의 미래’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동행 가이드 불가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게르는 전통과 불편함이 깃든 상징일 뿐, 실제 삶의 터전으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신 그들은 아파트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시사철 안정된 온도, 언제든 수도꼭지를 틀면 쏟아지는 따뜻한 물, 사생활이 보장되는 두꺼운 벽과 이중으로 된 창. 편리함은 본능적으로 감각을 유혹하고, 그 유혹은 전통이라는 감성보다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게르는 마치 우리네 초가집이나 한옥처럼 ‘지나간 역사의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초원의 게르는 전통과 변화, 불편함과 편리함, 그리움과 안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음이다. 그 흔들림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증거이기도 하다. 난롯불 대신 전기 패널이 자리 잡았을지라도, 난롯불 위에 끊는 주전자보다 커피포트가 편할지라도, 게르라는 원형의 집은 여전히 초원 위에 서 있다. 그것은 단지 집이 아니라, 몽골이 누구였는가를 증명하는 기억의 형식이며, 그 기억은 젊은 세대가 아파트에서 살아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르는 몽골인 그들에게 정체성의 기호로서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게르 속에서 문명과 전통의 긴장 관계를 조심스럽게 느낀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게르는 나에게 조용히 던지고 있음을. 불편함 속의 따스함을 잊을 것인가? 아니면 편리함 속에서도 그 불꽃의 기억을 되새길 것인가?.

초원의 바람은 늘 그렇듯 대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그 대답은 난롯불처럼 여전히 내 안에서 타오르고 있다.


- 게르 LED 전등 아래서 이 글을 쓰다.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몽골 오프로드 여행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