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13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처럼

by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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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곡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하늘에서 담은 강줄기는 마치 인체의 혈관처럼 살아 있는 선이었다. 125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본 강은 직선으로 뻗어나가기보다, 굽이굽이 휘돌며 흘러가고 있었다.


영우씨가 작은 모니터에 비친 곡선의 흐름을 보며 던진 물음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왜 강물이 S자로 흘러가는지 아세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저 그런 대답을 하기에는 여운이 남아.

“글쎄요…”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답은 어색했다. 지형의 고저차 때문이라든가, 또는 유속과 퇴적 작용 때문이라는 과학적인 이야기는 너무도 평이했다. 머뭇거리는 나의 대답을 대신하듯, 영우씨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강물 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는 건, 벽처럼 꽉 막힌 사람을 피해 가듯이, 막혀 있는 곳을 피해 가기 때문입니다.”


영우씨의 대답은 과학적 설명을 넘어선 철학적 은유였다. 강물은 직선으로 돌진하기보다,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정면으로 부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럽게 돌아가며 물길을 만들어낸다. 물은 유연함으로써 단단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으로써 길을 개척한다. 이 한 장의 드론 사진은 영우씨 말처럼 단순한 풍경 기록을 넘어 삶의 은유가 되었다.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


‘왜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 던진 시간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 어떻게, 무엇을, 왜를 생각하면서 찍으려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고, 이제는 노력하는 편이다.


드론의 높이와 촬영 각도, 태양의 위치와 빛의 방향까지 계산하면서 적정 구도를 잡으려 한다. 그리고 역광이 줄 수 있는 극적인 효과, 그림자가 빚는 입체감까지도 고려한다. 버튼을 누르면서도 ‘이야기를 담았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담은 한 장의 사진은 누군가에게 그저 ‘풀 한 포기에 수분을 공급하는 젖줄 같은 강물’로 보일 수도 있다. 또는 ‘대지의 혈관’이란 비유처럼 생명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읽힐 수도 있다. 그리고 ‘멋지다.’, ‘달력 같다.’라는 감탄 소리도 나올 수도 있다. 결국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 속 비유처럼, 자신이 본 세계를 한 장의 프레임 속에 응축시키려고 애쓰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영우씨의 ‘벽을 피해 가듯’이란 말은 이 한 장의 사진에 전혀 다른 차원의 해석을 덧입혔다. 사진 속에 그려진 강물을 ‘벽을 피해 흘러가는 생명선’으로 읽었다. 이 해석은 나를 다시금 큰 울림을 주었다. 사진은 촬영한 작가의 의도를 담지만, 보는 이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늘 생각해 온 “이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감응을 준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작은 신념이 다시 한번 내 앞에 다가왔다.


‘벽’이라는 존재와 나의 기억


‘벽’, 그 한마디가 잠자고 있던 많은 기억을 건드렸다. 정년퇴직 후 귀밑머리 하얗게 된 나이가 되어 뒤돌아보니, 나 역시 많은 벽을 만났었다.


장가계 단체여행 한번 다녀와서 중국 전부를 알았다고 떠벌리던 이, 국내 구석구석도 다 가보지 못했으면서 해외를 왜 나가느냐던 사람, 대학원 과정을 밟던 나에게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공부하느냐고 묻던 선배, 동료들에게 노골적으로 일을 회피하던 이, 아직도 퇴직한 직장을 궁금해하는 선배,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던 이, 윗자리 바뀔 때마다 취미가 수시로 바꾸던 이, 원칙보다 꼼수로 일을 하려던 이, 아마추어 실력으로 프로페셔널 흉내를 내던 이, 남의 성과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을 조장하던 무리,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세상을 꿈꾸다 허무하게 무너진 이들….


그들은 분명 벽처럼 느꼈었다. 앞으로 가려던 발길을 막아서고 뒤에서 허리를 잡는 듯했다. 때로는 그 벽을 부수려고 큰소리도 냈었다. 하지만 결국 가슴 한구석에 작은 돌멩이가 되어 남아 있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그 벽을 정면으로 부수지 않고, 강물처럼 돌아가려고 노력한 흔적들도 있었다. 때로는 우회하기도 하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기도 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길이 늦어지고 더딜지라도, 나만의 흐름 속에서 길을 이어갔기 때문에, 공학도에서 늦깎이로 문학이란 길이 새롭게 열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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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곡선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


강물은 직선의 고집을 버리고, 곡선의 지혜를 택한다. 곡선의 흐름에는 인문학적 교훈이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는 벽, 사회 속에서 맞닥뜨리는 제약,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좌절들…. 우리는 종종 그것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모든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때로는 유연하게 돌아가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은 결코 추상적 비유가 아니다. 물은 다투지 않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막힘이 있으면 돌아가고, 때로는 시간이 흘러 결국 바위를 뚫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직선만 고집하다가 꺾여 부러지기보다, 곡선으로 돌아서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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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삶, 그리고 의미


초원 위로 구불구불 흐르는 강을 담아낸 사진은, 이제 단지 풍경 이미지가 아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삶의 은유이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되었다. 벽 같은 사람들 기억과 그 벽을 피해 흘러가며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과정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사진은 피사체를 기록하지만, 동시에 찍는 자와 보는 자의 사유를 기록한다. 드론이 담아낸 한 줄기의 강물은, 영우씨의 질문과 답을 통해, 내 마음속 오래된 기억과 성찰로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로 확장되었음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감응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사람의 삶과 만나며,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몽골의 드넓은 초원 위에서 강물이 곡선으로 흐르는 모습을 담아내며, 또 한 번의 배움을 얻는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벽은 막힘이 아니라 돌아가라는 신호다. 사진은 기억을 넘어 의미를 창조하는 또 하나의 강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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