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09

은하수를 기다리다, 만난 보름달

by 만보

은하수를 기다리다, 만난 보름달


09 달뜨던 날 01_축소.jpg


은하수를 기다리다 달을 만나다.


게르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어둑해지자 새로 산 미러리스 카메라와 삼각대, 16mm 광각렌즈, 어안렌즈를 챙겨 들었다. 오늘 밤의 계획은 분명했다. 은하수를 촬영하는 것이다. 게르 뒤편 바위산을 배경으로 초원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담아내고 싶었다. 몽골에 다시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뭉개버렸다. 은하수 대신 동쪽 하늘에서 커다란 보름달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이다.


“형님, 보름달인데요.”

동행한 기후씨의 짧은 말에 나는 말문을 잃고, 달을 바라보았다. 순간 맨붕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은하수 사진을 찍으러 이 먼 곳까지 와서, 그 찬란한 별빛을 보지 못한다니. 그리고 별사진 촬영에 적합하다는 신형 풀프레임 카메라까지 구입해서 갖고 왔는데.


스마트폰을 꺼내 음력 날짜를 확인해 보니 어제가 음력 15일이었다. 앞으로 9일간 여정 동안에는 밤하늘에 별들이 모습을 감추리라는 사실을 깨닫자, 실망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여행 전 달력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내 부주의가 원망스러웠다. 두 번의 몽골 오프로드 여행에서 은하수를 당연하게 보았기 때문인가.


덕종씨와 영우씨에게 몽골 초원의 은하수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흥분하며 이야기했던 내 자신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이 말을 꺼냈던 시간이 떠올라 괜시리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은하수가 마치 내 손을 벗어나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듯한 허망함이었다. 달은 이미 떠올라 있었고, 무력하게 게르로 돌아와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추고 눈을 감았다. 혹시 새벽에 달은 지고 은하수가 강물처럼 밤하늘을 수놓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으며.


느림과 멈춤의 메시지


알람 소리에 눈을 뜬 새벽, 게르 안은 싸늘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조심스레 카메라를 챙기고 밖으로 나서려 했을 때, 덕종씨의 반쯤 깬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

“형님, 날이 추운데 든든하게 입고 나가세요.”

그 짧은 말은 따뜻한 위로와 안타까움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여행길에서도, 동행의 존재가 마음을 토닥여주는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게르 문을 열자 차갑고 투명한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밝은 달은 서쪽 밤하늘을 향해 민달팽이 기어가듯 가고 있었다. 새벽의 달빛은 낮보다도 더 강렬하게 초원을 비추고 있었다. 별은 있었으나, 은하수는 없었다. 허탈감이 다시 밀려왔다.


그러나 달빛을 바라보며 내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 풀려나가는 감정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은하수는 아니어도, 달빛 또한 길을 비추는 것이구나.”

이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만 했다. 꼭 내가 원하는 것만이 나를 위로하는 것은 아니다. 달빛은 은하수의 부재를 채우듯, 나에게 또 다른 빛을 선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는 도로에서 보았던 장면,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자동차를 밀던 두 사람의 모습. 고장 났기에 두 사람은 천천히 나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멈춤 속에 오히려 서로의 힘을 모았을 것이다. 내게도 지금의 보름달이 그런 것이 아닐까. 은하수를 찍으려는 목적이 잠시 멈추었을 뿐, 이 멈춤은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하고, 여정을 천천히 음미하게 만드는 메시지일지도.


09 첫날 달_새벽달_수정_축소.jpg


달빛이 비추는 또 다른 길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스마트폰으로 환한 달을 찍었다. 구름에 살짝 걸친 달무리 있는 달은 선명한 달보다 왠지 따뜻해 보였다. 은하수는 없었지만, 달은 초원 위에서 홀로 빛나며 나의 길을 안내하는 듯. 멀리서 늑대인지, 들개인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도 밤의 일부였고, 초원의 숨결이었다.

은하수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달빛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감응을 얻었다. 인생 또한 그렇다. 내가 바라는 별빛만이 아니라, 뜻밖에 떠오른 달빛 또한 길이 되어준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천천히 걷고 더 깊이 바라보라는 또 하나의 초대다. 은하수를 보지 못했어도, 달빛을 통해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음을. 그 길이야말로 나의 여행이자, 인생의 또 다른 풍경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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