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15

초원의 풍속화 한 장면을 꺼내 보다.

by 만보
15 몽골 말타기와 씨름_RGB_축소.jpg


초원의 풍속화 한 장면을 꺼내 보다.


오프로드 여행 중에,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불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던 덕종씨는 가이드 불가에게,

“아이들이 말을 잘 타네요. 근데 언제부터 말을 타기 시작해요”

가이드 몰가는 당연한 듯이,

“저도 다섯 살때부터 말을 탔던 것 같아요”

이런 대화를 듣다 보니, 2017년 여행 중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초원에서 만난 살아있는 풍속화


어느 게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다. 스마트폰으로 담아낸 순간의 이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한 여행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어린아이, 그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의 시선, 한쪽에서 씨름하는 아이들, 구경하며 흐뭇한 눈길을 보내는 또 다른 아이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조금 멀리에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이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조선 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떠올렸다. 김홍도의 ‘씨름’은 당시 민중의 삶과 놀이를 해학과 생동감 있게 담아낸 명작이다. 사진 속 아이들이 서로 어깨를 디밀고 씨름하고, 앞발을 들고 말을 타는 아이의 모습, 또 서로를 바라보는 그 장면은 200여 년 전 조선의 농촌 마을에서 펼쳐졌을 풍경과도 묘하게 겹친 모습이다. 다른 시대, 다른 민족, 다른 땅이지만 인간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본질적인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다. 그것은 ‘삶의 즐거움’이자, ‘세대의 연결’처럼 보였다.


사진 속에서 말을 타고 있는 어린아이는 아직 어린 체구였지만, 말 위에서 온몸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은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 아니면 삼촌일 것이다. 그 어른의 표정 속에는 염려와 기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은 ‘조심해라, 그러나 잘 해내기를 바란다.’ 단지 말을 타는 행위를 넘어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옆에서 앉아 있던 아이는 형제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지만, 흡사 형이 동생을 바라보듯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한 아이의 도전이 또 다른 아이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 오르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둘 다 같은 삶의 한 장면을 공유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멀리 보이는 두 아이의 씨름은 그 풍경을 더욱 완성 시켜 주는 모습이다. 서로 허리를 굽히고 옷자락을 붙잡은 아이들은 경쟁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저 땅 위에서 몸을 부딪치고 뒹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으로 보였다. 한쪽 구석에는 묶여 있는 말들이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고 있다. 자연스럽게 어울린 이 장면은 마치 한 폭의 목가적인 풍속화로 다가왔다.


다시 오지 않을 선물 같은 순간


우연히 만난 이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해왔다. 세 번째 몽골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다시금 이런 장면을 볼 수 있기를 속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초원 위에 다시 섰을 때, 이러한 풍경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쉬움이 스쳤고, 조심스럽게 다독여야 했다. 아마도 한 번이면 족한 선물 같은 순간이라 여겨야만 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멋진 풍경은 언제나 준비된 답안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우연의 산물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내게 몽골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드넓은 초원과 거친 바람의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아이들의 웃음이 깃든 따뜻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이나마 달리하게 했다.


15 저녁노을 구겨아는 사람들 01_축소.jpg


한 장의 사진이 내게 남긴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순간의 우연이 모여 만들어낸 풍속화와 같다는 인식이다. 저녁노을의 아름다움, 그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문득 마주쳤을 때 마음 깊이 새길 수는 있다. 그날의 아이들, 그날의 말, 그날의 초원, 그날의 별, 그날의 바람, 그날의 둥근달, 그날의 저녁노을, 모든 풍경이 그러했다. 그 모든 순간은 내게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그림처럼 남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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