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강노르 호수에 뜨는 달이 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게르 안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프로드에서 온몸으로 느낀 피로가 잔잔하게 풀려나갔다. 산들바람이 호수 물결을 스치듯 지나갈 때. 화장실 다녀오던 덕종씨가,
“호수에 달이 뜨고 있어요. 와! 멋진데요.”
고개를 돌려 게르 밖 너머를 바라보았다. 달이 제법 크게 떠오르고 있었다. 호수 위로 은빛 물결이 길게 반사된 달빛은 어둠을 밀어내며 유혹하듯이 밝히고 있었다. 마치 호수 전체가 달을 맞이하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고요하면서도 장중했다. 은하수가 하늘에 흐르지 않은 서운함도, 이 달빛 하나로 충분했다. 그보다, 오히려 은하수보다 더 밝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달빛이 마음을 채워주고도 남았다.
게르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말없이 달과 호수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 신비로운 광경에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강릉 경포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해요. 밤하늘에 뜬 달, 호수에 비친 달, 바다 위에 뜨는 달, 술잔 속에 담긴 달, 그리고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
영우씨는 나를 바라보더니,
“멋진 한 편의 시처럼 들리네요.”
그리고 건배를 제의했다. 술잔에 비친 작은 달빛이 호수에 뜬 달과 겹치면서, 묘한 울림이 시나브로 다가왔다. 여기 서 있는 자리는 분명 낯선 땅이지만, 달빛이 내려앉은 풍경만큼은 어쩐지 익숙하고 따뜻했다.
달빛을 온몸으로 받고 싶어, 게르 밖으로 나갔다. 스마트폰으로 달을 찍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앵글로 같은 달을 담아내며 추억을 남기려는 모습이 정겨웠다. 눈높이에서 담을 수 없는 또 다른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하늘에서 달빛이 드리운 호수가 보고 싶어서 드론을 띄웠다. 술 한 잔의 과감함이 나를 충동시켰다. 독수리도 갈매기도 까마귀도 올빼미도 이상하리만치 두렵지 않았다. 달빛이 하얀 게르 지붕 위로 호수를 가르며 뻗어나갔다. 화면 속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얀 게르들이 마치 작은 달들이 위성처럼 모여 있는 듯 보였고, 그 위로 달이 호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옆에 있던 가이드 불가가 달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는 사진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달빛에 감탄하는 제스처였을까. 손끝이 달을 가리키는 모습은 어쩐지 순수했다.
‘이 또한 진정한 몽골의 모습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는 듯한 손짓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언젠가 이 순간을 떠올릴 때,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낼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불가에게,
“이곳에서 본 달은 몽골 여행에서 최고 중 하나로 될 것 같네요. 아마 오늘 밤이 바로 그 순간일 겁니다.”
기후씨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미사여구도 의미 없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달은 어느새 서서히 높이 떠올랐다. 호수 위에 드리운 빛의 길도 점점 길고 깊어졌다. 그 빛은 마치 어디론가 인도하려는 듯, 멀리 이어지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우리는 여행자도, 이방인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순간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언어가 달라도, 나이와 국적이 달라도, 달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바위산에서 잠깐 눈인사했던 외국인 부부가 호수에 뜬 달 감상을 마치고 게르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Good night’ 인사하며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몽골의 밤, 차강노르 호수에 뜬 달은 내게 오래 남을 풍경이 되었다. 카메라에 담은 수많은 사진도 소중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속에 각인된 그 순간의 감정이 더 깊이 남는다. 언젠가 이 자리에 다시 오더라도, 오늘 본 달과 똑같은 달은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 밤이 더욱 빛나고 소중하다.
그렇게 호수에 뜬 달은 기막히게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