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만난 무지개
초원을 달리다 보면 멀리서 구름 사이로 빗줄기가 내리는 모습이 보일 때가 많다. 처음 경험하는 영우씨와 덕종씨에게 이러한 자연현상을 보고 연신 스마트폰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두 번의 경험자라고 나름대로 약간의 설명을 해 주는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
처음 오프로드 여행에서 신기한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던, 내가 그러했듯이, 둘은 구름 빗줄기 모습에 연신 스마트폰으로 담기에 바쁜 모습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덕종씨가
“몽골 오길 잘했네요.”
앞자리에 앉은 가이드 불가는 조용히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멋진 풍경이 더 많을 겁니다.”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먼 곳, 거대한 빗줄기가 잿빛으로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두 번째 오프로드 여행지 고비사막의 끝없이 펼쳐진 모래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한 특별한 광경이 떠올랐다.
모래 위로 차바퀴 자국만이 이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광활한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먼 하늘 저편의 구름은 무겁게 드리워져 구름 아래로는 강한 빗줄기가 세차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내가 선 곳은 여전히 건조하고 메마른 땅이었지만,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무지개가 떠올라 하늘과 대지를 잇는 다리처럼 걸려 있었다.
이 광경 앞에서 쉽게 걸음을 돌릴 수 없어, 잠시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구름과 빗줄기 그리고 무지개,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드는 상징처럼 보였다. 사막은 언제나 메마르고 거칠지만, 모래 속에는 씨앗들이 잠들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들은 오랜 세월 잠을 자다가, 단 한 차례의 단비가 내릴 때, 생명의 신호를 받아 깨어난다. 빗속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의 몸부림, 땅을 뚫고 나오기 위해 쏟아붓는 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기어코 싹을 틔우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마치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 고통과 침묵 속에 묻혀 있다가도, 단 한 번의 기회, 한 줄기 희망, 한 마디의 위로를 들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무지개는 마치 은총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비가 내린 뒤 햇살이 비스듬히 비추면서 나타난 일곱 빛깔, 물과 빛이 만들어낸 자연의 협연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상학적 현상을 넘어서는 어떤 기호가 존재한다. 무지개는 오래전부터 문학과 신화, 종교에서 희망과 약속, 혹은 인간과 신을 잇는 다리의 상징적인 기호처럼 되어 왔다.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지개는 파괴 이후에 주어진 새로운 약속을 의미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무지개는 신들의 전령인 ‘이리스’의 길로 묘사된다. 무지개는 ‘시련 뒤에 오는 새로운 길.’이라는 암시를 건넨다.
그날 본 무지개는, 사막이라는 고독한 무대 위에서 어느 연기자의 모습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막은 고통과 인내의 공간이다. 물도, 나무도, 그늘도 없는 공간은 나약하게 만들게 하는 위력을 지닌다. 하지만, 사막은 내면을 조용히 응시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음이 차단된 그 적막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삶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이러한 사막에서 만난 무지개는 ‘네가 걸어온 길은 헛되지 않았으며, 앞으로의 길에는 여전히 빛날 가능성이 있다.’라며 나에게 위로처럼 말해주는 듯했다.
자동차 바퀴 자국이 이어진 거친 길은 걸어온 흔적이다. 지평선 끝 무지개와 빗줄기는 먼 훗날의 축복이다. 이 풍경을 보면서 노고와 은총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장면처럼 보였다. 우리는 길을 내며 나아가지만, 그 길이 언제나 순탄하지는 않다. 때로는 모래폭풍에 길을 잃고, 때로는 메마른 대지 위에서 지쳐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우연히, 혹은 때맞추어, 단비와 무지개로, 다시 길을 걸어가는 힘을 준다.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순간이 많을 때가 있지만, 씨앗처럼 꿈을 품고 있다. 단 한 번의 만남, 한순간의 깨달음이 그 씨앗을 깨우고 새싹을 틔운다. 무지개는 길 위에 드리운 희망의 징표이며 미래의 가능성이다. 삶의 여정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그 길 위에는 여전히 단비와 무지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무지개가 건네는 말 없는 약속을 믿으며, 아직 땅속에 잠든 씨앗들이 언젠가 싹을 틔우리라는 희망을. 사막이 내게 가르쳐 준 삶의 인문학적 성찰의 한 페이지였음을.
“비록 지금은 메마른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저 너머에는 무지개가 기다리고 있다.”
- 저녁노을과 빗줄기
- 먹구름과 빗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