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에서 길을 잃다.
몽골의 초원과 사막은 도시민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언제나 낯설고도 신비로운 공간이다. 이번 홉스골까지 이어지는 오프로드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몸 구석구석에 잠자는 세포가 깨어나듯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덕종씨가 불가에게.
“운전기사들은 이정표도 네비게이션도 없는데,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불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운전기사들은 그냥 알아요, 그리고 눈이 좋아서 그래요. 멀리 볼 수 있어요”
이번 홉스골로 향하는 여행에서 초원을 달리다 보면 차 바퀴 자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으나, 가야 할 길이 의심스러우면 가끔 보이는 게르 주인에게 길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다 보면 여전히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길을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다.
덕종씨와 가이드 불가의 대화를 옆자리에 앉아 들으면서, 고비사막 오프로드 여행이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들, 달리다 보면 거기가 거기 같고, 어디를 봐도 방향을 짐작하기 어려운 사막 풍경들. 그곳은 정말 ‘길 없음’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고 여정이었다. 하지만, 현지 운전기사들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갔다. 내가 보기엔 마치 신비한 세계의 탐험가처럼, 지도에도 없는 곳을 찾아가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처럼 보였다. 길도, 이정표도, 네비게이션도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가는지, 어떻게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게르촌을 정확히 찾아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러낼 수 없었던 그 두려움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사막에서 밤길을 달리던 중, 우리의 차량은 길을 잃었다. 모든 차량이 멈춰 서고, 운전기사들은 모여 앉아, 땅에 막대기로 무언가를 그리며, 밤하늘도 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무엇으로 길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내 눈은 이내 밤하늘로 향했다. 사막의 밤하늘은 압도적이었고 황홀할 정도였다. 은하수가 강물처럼 흘렀고, 북두칠성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북극성을 찾아 눈을 고정해 보았다.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찾아라.’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끝없는 사막에서는 북극성조차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길을 잃은 도시민의 막연한 시도였을 뿐이다.
잠시 후, 운전기사 한 명이 차량을 몰고 앞서 나갔다. 나머지 우리는 차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가 다시 돌아왔고, 다른 차들은 그의 차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동녘이 푸르게 밝아오고 있었다. 여명이 차오를 때, 멀리서 하얀 점으로 보이는 게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모두 박수 치며 환호했다.
게르 주인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는 걱정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느라 수고 했다.’라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이런 길 잃음은 그들의 삶 속에서는 일상적인 일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두렵고 낯선 경험이었다. 그때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을 뿐이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아마 그들의 몸에는 선조들로부터 세대를 이어온, 어떤 ‘길 찾는 DNA’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 기억은 지금도 깊이 남아 있다. 도시의 삶은 늘 계획된 도로와 신호, 건널목, 표지판, 네비게이션, 스마트폰 지도에 의존한다.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움으로만 여기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안전망을 찾고 또 찾는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은 광활한 대지 위에서, 길을 잃는 것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길을 잃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길을 찾게 된다는 믿음의 DNA, 그리고 그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과 지혜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본 그들의 모습은 운전기사라는 직업,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길이 보이지 않아도 길이 있음을 아는 믿음이다. 길 잃음은 나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그 차이를 바라보면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 앞에서 맞이한 푸른 여명은, 단순히 도착의 안도감을 가진 시간이었지만, 길을 잃는 경험조차 삶의 풍경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 시간이기도 했다.
몽골 초원과 사막은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기에, 나에게는 또 다른 ‘길 찾기’ 기준이 되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