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수 저녁노을과 낭만적 여정

by 만보

경포호수 저녁노을과 낭만적 여정


04 강릉 경포호 텐덤자전거_RGB_축소.jpg


변화를 향한 낭만적 충동


우리의 삶은 종종 질서와 규칙이라는 틀 속에 갇히기 쉽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정해진 시간표,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옳다고 여기는 사고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 동해안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이나 푸른 바다와 모래 해변을 기대한다. 그것은 익숙하고, 대중적이며, 어찌 보면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익숙함에 잠시나마 반기를 들고 싶었다. 동해안 사진의 소재를 일출에서 일몰로, 바다에서 호수로 바꾸려는 '변화를 향한 충동‘, 이것이야말로 내면의 낭만주의적 자아가 발현된 순간이었다.


18세기 말, 낭만주의자들이 계몽주의의 차가운 이성과 보편적 질서에 염증을 느끼고 개인의 감성과 주관적인 경험을 추구했듯이,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규범에서 벗어나 나만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간 곳이 경포호수였다. 해안의 웅장함 대신 잔잔함과 고요함이 감도는 물가, 그리고 뒤로는 장엄한 대관령 산맥이 실루엣으로 드리워진 곳. 이곳은 내가 추구하는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감성이 공존하는, 일종의 낭만적 안식처였다.


순간의 포착, 우연에서 발견한 포근함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하고, 삼각대 뒤에서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며, 저녁노을의 색채 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관령 너머로 지는 해가 경포호수 수면 위에 붉은색과 보라색 물감을 풀어놓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그 색채의 강렬함은 자연의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하는 숭고미, 그 자체였다. 이성은 분석할 수 없는, 오직 감성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바로 그때, 프레임 안으로 2인용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빠르지도 않게 그저 느릿느릿하게,


이것은 완벽한 우연이었다. 계산된 구도가 아닌, 삶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주어진 선물과도 같았다. 내 마음속에 밀려든 감정은 노을의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포근함, 따뜻함,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자전거에 탄 사람은 부부였는지, 아니면 연인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낭만주의 철학자들은 영감으로 진실을 본다고 했다. 그 말처럼, 내 프레임 안에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진실이 스며들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미약할 수 있으나, 두 영혼이 하나 되어 동행하는 모습은, 그 모든 장엄함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감싸안은 풍경이었다.


자전거의 실루엣은 그들의 표정이나 신원을 감추어버렸다. 덕분에 그들은 구체적인 '누구'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원형이 되었다. 그들은 고독한 현대사회 속에서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만한 행복을 이루어내는,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던 영혼의 연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노을 속의 낭만적인 여정


두 사람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나아가는 모습은 '낭만적 여정'의 상징이 되었다. 낭만주의 문학에서 여정은 항상 미지의 세계, 혹은 내면의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이들이 향하는 길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다. 세상이 점차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지만, 그들의 주변은 가장 따뜻하고 강렬한 빛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삶의 고난이나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라는 가치를 통해 개인의 이상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낭만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


또한, 이 사진은 유기체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낭만주의자들은 세상을 기계적인 원리로 움직이는 시계, 즉 계몽주의적 관점로 보지 않고,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 보였다.


대관령, 경포호, 노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감정을 발산하는 거대한 생명체 같다. 그 안의 두 사람은 이 거대한 유기체와 분리되지 않고, 그 붉은 물결 속으로 조화롭게 녹아들고 있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통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이는 개개인이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더 큰 전체의 일부로 조화롭게 작동하는, 이상적인 사회 모델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붉은 호수 위로 그들이 남긴 자전거의 궤적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향하던, 또 하나의 노을빛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섬이 된 아파트, 고립의 신호를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