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과 나의 계절

by 만보

잊혀진 계절과 나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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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시월


늦은 아침, 아파트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식탁 위 샐러드와 감귤주스 잔을 비추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내일이면 시월의 마지막 날이건만, PD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아직 10월 30일인데도 말이다.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내 안의 시계가 1982년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재수하던 시절이었다. 조금 더 나은 대학을 가지 않은 아쉬움과 미래를 향한 막연한 열정이 공존하던 해였다.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던 때, 잊혀진 계절이 발표되어 세상에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세월이 흘러 그 노래가 어느덧 43년이란 시간을 넘어, 내 삶의 한 조각 배경음이 되었다. 음악이 끝나고 DJ 목소리가 들리자, 집사람이 웃으며,

“김용빈 가수님도 40년이 흘러도 나오는 노래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은 왠지 마음 한편을 가로질렀다. 가수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대표곡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래는 잠깐 빛나다가 대중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간다. 그리고 사람의 삶 또한 세월 속에 서서히 잊혀진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노래들이 있다.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서 벚꽃앤딩, 동백아가씨, 돌아와요 부산항에, 영영… 처럼, 세대와 세월을 넘어 지금도 노래방에서 불리고, 방송에서 내보내고 있는 노래들이다. 이러한 노래들이 특별한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시간을 품은 정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은 시간을 녹음한다. 그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머물렀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잊혀진 계절’은 사실 ‘잊을 수 없는 계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노래 가사 속 화자는 지난 사랑을 그리워했지만,

“내 젊은 날의 무엇을 그리워했나?”

‘과연 나는 꿈을 이루었을까?’

그 질문은 어느새 예순이 넘은 내 일상의 문장처럼 되었다.


다른 이름의 계절


공학도로 시작해 30여 년을 숫자와 공식, 도면 위에서 보냈다. 퇴직 후에는 문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드론으로 하늘을 담고, 여행으로 땅을 느끼며, 딸들이 각자 자립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무엇보다 집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성취다.


요즘 일상은 조용하다. 집사람과 덕질 여행 스케줄이 제일 바쁠 뿐이다. 그리고 집 앞의 작은 도서관에 간다. 이곳이 나의 아지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특유의 책 냄새가 좋다. 이제 청소하시는 분도 가볍게 인사할 정도다. 캔커피 한 잔에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이 된다. 창밖으로는 느리게 떨어지는 낙엽이 보이고, 책 넘기는 소리, 노트북 키보드 소리만 희미하게 들린다. 이렇게 하루의 오전을 보내다 보면, 마치 내 안의 시계도 잔잔히 숨을 고르는 것 같다.


젊은 날엔 늘 속도가 중요했다. 빨리 합격해야 했고, 빨리 승진하려고 관련 법률에 밑줄 긋기도 했고, 빨리 남들보다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느림’이 내 삶의 건널목 안내표지판처럼 되었다. 인문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삶의 전환기’라 부른다. 욕망의 방향이 ‘획득’에서 ‘성찰’로 옮겨가는 시점이다. 니체는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제 나는 내 젊은 날의 속도를 기억하기보다, 다르게 해석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으면, 햇살이 묻은 먼지 입자들이 천천히 부유하는 것이 보인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게 꼭 시간의 알갱이처럼 느껴진다. 서두를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다만 흘러가는 존재의 미학. 그것이 지금의 내 계절이다.


나의 계절을 기억하는 법


집사람과 커피잔을 앞에 놓고서,

‘앞으로 더 많은 꿈은 욕심일까?’

집사람은 웃으며,

‘꿈이 욕심이면 세상에 욕심 아닌 게 어디 있어요.’

그 말이 고맙다. 아직도 함께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인지, 예순이란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내 인생의 ‘잊혀진 계절’은 없다. 그 모든 계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1982년의 나는 잠시 불안했지만 뜨거웠고,

2025년의 나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그때의 나는 ‘미래’를 향해 달렸고,

지금의 나는 ‘현재’를 바라본다.


내일이면 10월이 마무리된다. 또 한 계절이 저물겠지만,

이제 ‘잊혀진 계절’을 미련 두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누군가 내 노래를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의 계절을 기억하는 한, 그것으로 충분하다.

잊혀진 계절은 없다. 모든 계절이 나를 지나, 지금의 나로 피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내 기억도 흩날리지만, 결국 또 다른 계절을 피운다.


- 2025년 10월 30일 오전, 작은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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