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바다를 지나, 여백의 하늘로

by 만보

‘좋아요’ 바다를 지나, 여백의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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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욕망


내가 카메라를 손에 쥔 것은, 기록의 욕망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시품 디지털카메라를 사 온 후, 신세계의 기술에 빠졌다. 필름 아날로그에서 벗어나, 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사진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매력에 끌렸다. 그 이전엔 필름 카메라로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담고 사진관에서 인화했다. 하지만, 디지털은 달랐다. 우선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었다. 즉시 확인과 메모리 카드만 있으면 무한정 찍을 수 있었다. 그 무한함이 주는 자유와 보이지 않는 책임처럼 느껴지는 내적 부담이 함께 왔다.


사진은 취미, 거기까지였다. 길거리 달력에 담은 풍경처럼 그럴싸한 사진을 찍게 되었을 때, 어떤 이가 물었다.

“왜 사진을 찍으세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대답은 평이했다.

“그냥, 취미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왜 찍는가?’

라는 물음은 수렁처럼 깊었다.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은, 나 스스로 물음이기도 했다.


‘좋아요’를 버리다.


시간이 흐르고, 공모전과 SNS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대가 왔다. 페이스북 ‘좋아요’의 숫자가 사진의 가치를 대변하였다. 나는 누군가의 사진에 의미 없이 ‘좋아요’를 누르면서, 내 사진이 받은 ‘좋아요’ 수를 세며 뿌듯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진에 나의 무심한 클릭, 내 사진에 누군가의 무심한 클릭이, 나의 정성과 노력을 평가하는 척하는 사회, 그 틀 안에서 ‘좋아요’라는 잣대에 나를 맞추며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퇴직을 얼마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한 장의 ‘수묵화’ 사진이 나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되었다. 사진 아래 달린 유명 사진작가의 짧은 댓글 한 줄.

“수고로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멋진 작품입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그 한 줄이 내게는 수백, 수천의 ‘좋아요’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 한 문장이, 내가 걸어온 길의 수고와 작품의 결과를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좋아요’를 버렸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렸던 모든 사진을 삭제했다. 그건 단순한 삭제가 아니라, 타인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이었고 의례였다.


사유와 여백이 머무는 삶


그때부터 ‘나만의 사진’을 찾기에 몰두했다. 꽃 한 송이를 찍기 위해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내가 자연 앞에서 작아질 수 있음을 배웠다. 어미 개가 젖을 물리는 장면에서 돌봄의 공정과 정의를 보았다. 그리고 여백의 수묵화 같은 사진 속에서는 말보다 깊은 침묵의 언어를 배웠다. 사진은 이제 기록이 아니라, 사유의 매체가 되었다. 셔터를 누른다는 것은,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몸짓이 되기 시작했다.


퇴직 후,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1.7미터의 눈높이 시선에서 벗어나, 드론으로 최고 145미터 하늘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본 세상은 달랐다. 갯벌의 물길은 혈관처럼 보였고, 추수를 앞둔 들녘에서 패턴을 보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시선은 겸손하게 했다. 땅에서 본 풍경이 ‘대상’이었다면, 위에서 본 풍경은 ‘관계’였고, 질서와 흐름을 읽는 것이었다.


사진은 이제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려는 태도’가 되도록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좋아요’의 개수로 평가받던 시대를 지나, 여백의 미학으로 말하고 싶다. 그 여백은 공허가 아니라, 사유가 머무는 자리다. 사진의 여백은 곧 삶의 여백이다. 무릎을 꿇는 낮은 시선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높은 시선이 결국 만나는 지점, 그곳에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이제 담고자 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포즈를 취한다. 그것이 내가,

‘왜 찍는가?’

에 대한 지금의 대답이다.


사진은 내 안의 철학을 시각화하는 매체다.

‘좋아요’ 숫자에서,

의미의 깊이로,

기록에서 사유로,

땅의 시선에서 하늘의 시선으로,

나의 사진은 그렇게 변해왔다.

이제 나는 한 장의 사진에 한 편의 이야기,

한 줄의 철학, 한 조각의 나를 담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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