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늘 ‘끝’의 색을 띠고 있다. 낮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오기 전, 붉은 기운이 잠시 머물다 가는 그 짧은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해가 저문다는 사실이 서운하면서도, 그 서운함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기에 위로가 된다.
10여 년 전,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서 영월 봉래산 정상에 올랐다. 구름은 거의 없고, 서쪽 하늘은 불길처럼 붉었다. 렌즈 초점을 맞추고 노을의 경계를 가늠하고 있을 때, 어떤 젊은 한 사람이 내 프레임 속으로 우연히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석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두 무릎 위에 손을 포개고 있었다. 처음엔 사진 구도에 방해가 될까 싶었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그가 있음으로써 노을이 완성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동시에 ‘사람’ 그 자체였다. 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얼굴은 역광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실루엣 속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어느 갈림길에서 잠시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일을 위한 꿈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녁노을 앞에 선 사람은 누구든 닮아 있다. 노을은 각자의 사정을 다르게 물들이지만, 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구조는 비슷하다. 낮이 사라져 가는 순간, 사람은 ‘멈춤’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나는 어릴 적, 인천 호구포에서 자랐다. 그곳은 서해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수평선 끝자락에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나가는지, 커다란 배들이 아득하게 보이는 포구였다. 수인선이 지나가는 바닷가 둑 위에 서서 해가 바다로 잠겨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특히 해당화 열매가 열리는 계절에는 더 황홀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장면은 이상하게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태양이 바다를 만나며 만들어내는 붉은 빛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예순이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건 나의 기억을 되찾는 의식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태어남으로써 시작하지만, 기억함으로써 계속된다.’라고 말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 때마다 ‘기억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노을은 오늘의 풍경에서 내 유년의 바다와 연결된 시간의 끈이다. 노을은 그렇게 나를 회상으로 이끌고, 회상은 다시 나를 현재로 돌려놓는다.
그런 점에서 홀연히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그 낯선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젊은 날의 나, 혹은 미래의 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은 종종 ‘나의 또 다른 얼굴’로 해석된다.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인간의 존재는 ‘너’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타인이라면, 노을 속의 그 남자는 내면의 또 다른 ‘나’였다. 그는 내 안의 고요와 나약함,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대신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은 하루의 끝이지만, 또 다른 시작을 품고 있다.’
태양이 지는 순간은 어둠이 오는 시간이지만, 그 어둠이 없다면 별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저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속에는 다음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어쩌면 노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끝은 다른 시작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
봉래산에서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노을은 하루의 이별을 말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인생의 저녁녘에 다다를수록 나는 더 자주 노을을 찾는다. 그것은 내가 늙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산책하듯이 걷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다시 온다.”
후기; 2025년 10월 마지막 날, 다시 영월 봉래산 정상에 오르려고 드론을 가지고 갔다. 하지만, 중간지점에서 출입 통제 팻말이 있었다.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통제 시설물이 있어 발걸음을 되돌려야만 했다. 내려오는 자동차 안에서 잠시 생각했다. 그때 사진 속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