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목욕탕에서

by 만보

주말 오후, 목욕탕에서


20 목욕탕에서.JPG


찬바람이

옷깃을 움켜쥐는 날,

칫솔 하나 들고서

동네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삐걱거린 문을 열면

세상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옷과 함께

이름과 명함도 사물함에 넣어 둔다.


진한 쑥 향

천천히 숨을 데운다.

기억 속 겨울들이

등 뒤에서 김을 올린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참아왔던 미련들이

하나씩 풀린다.

괜찮다고,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물은 말한다.


냉탕은 짧고,

차가움은 정직하다.

숨이 돌아오고

살아 있음이

잠시나마 또렷해진다.


땀은

말 대신 흘러내리고

사우나 안의 침묵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여기서는

버텨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저울 녹색 숫자 75,

칡즙 한 잔,

이것으로

오늘은 완성된다.


주말 오후,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몸으로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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