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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렌 Dec 29. 2020

내 꿈은 요리왕

2020 정리 세 번째

0. BEFORE 요리

1. 그래서 왜 시작했는데?

2. 왜 이렇게 요리가 좋을까.

3. 어떻게 요리를 하고 있는가.

4. 요리 다짐 (?)




0. BEFORE 요리

내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있다. 그중에 몇 개는 막연히 안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 하지 않을 것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결혼, 출산.

그리고 나머지는 음 내 성격이 이런데 나랑 안 맞는 듯. 음 이건 이러이러한 이유로 안 할 것 같지? 

후자의 것들에 요리가 속했다.


나는 자취 경력만 10년이다.

라기엔 사실 그중 3년 반은 하숙이었으니 온전한 자취라 보긴 어렵고 (식사가 제공됐고, 화장실 청소 등의 군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1년은 엄마 친구와 지냈으니 자취가 아니고. 다른 1년은 고시텔 생활이다 보니, 자취라기보단 잠시 어디서 잠을 잔 셈이다. 내 손으로 벌어 나를 온전히 먹여 살린 건 2015년부터. 그때부터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도 부정할 수 없는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이 시점에야 궁금해서 찾아보니 자취란 뜻이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함."

이더라고. 그럼 또 올해부터인가? 했지만 요즘 시대에 누가 매 끼니를 챙겨 먹겠어. 그것도 나 같은 일인가구가.라고 생각하면... 나는 자취를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는 생활.' 정도로 재해석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래도 나와 산 게 10년. 자취한지도 4년인데. 작년까지 내가 할 줄 알았던 요리라곤 라면이 전부였다. 계란 프라이, 시판 소스에 비벼먹는 볶음밥이나 파스타도 요리라고 해준다면 거기까지. 그도 그럴게 요리란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나 같은 일인가구에겐.

재료를 사는데 1분이라 해도. (사실 요즘 느끼는 건데 재료 사는데 젤 오래 걸린다. 품절 해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주에 뭘 먹을 건지. 그래서 같은 재료를 어디까지 활용할 건지. 무튼 이건 나중에) 하는데 최소 30분, 치우는데 10-20분. 그런데 먹는 건 10분 이내. 너무 불공정하지 않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리를 권하는 사람은 많았다. 당연하게도 엄마부터 직장 사람들까지. 요리를 취미로 삼게 된 지인도 그랬다. 그때마다 난 저 소릴 앵무새처럼 해댔다. 먹는데 10분인데 부가적 시간이 1시간이잖아.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런데 지금은? 요리를 1시간 해도 하고서야 1시간인 걸 깨닫는다. 장 보는데도 1시간씩 걸린다. 뒷정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식세기를 샀다^^) 근데도 이 비효율적인 일을 매주. 휴무엔 매일 하는 사람이 됐다. 어쩌다?


1. 그래서 왜 시작했는데?

다행히 이번 글은 본론인 1번이 길어질 수 있게 됐다.

나도 정확히 계기를 찾을 수는 없다. 그래도 추측해 보자면 나에게 있어서 요리의 의의 + 쉬운 요리의 경험을 찾은 덕이 아닐까 싶다.


쉬운 요리의 경험은 밀키트이다. 나는 CJ의 쿡킷으로 시작했다. 다 잘라져 나오는 재료, 필요한 양만큼 담겨오는 소스. 내가 할 건 불에 올리고 굽거나 끓이기만 하는 것. + 플레이팅. 아마 여기서 난 요리의 기쁨을 찾았던 것 같다. 밀키트는 특히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게 크다고 생각한다. 보장된 맛과 그림대로만 하면 되는 플레이팅.

지금은 쿡킷에 없는 것 같은데, 밀푀유 나베가 내 첫 경험이었다. 예쁘게 사진대로 포개어 자르고 올리면 정말 들인 노력에 비해 대단한 요리가 나온다. 정말 난 자르고, 넣고 있는 소스를 끓였을 뿐인데 홈파티에 (2019년의 홈파티이다...) 완벽한 요리가 됐다. 그렇게 밀키트를 두 어 번 시도하며 나는 그래도 이제 '요리하는 사람'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생각을 했다.

어쨌든 이러고도 좀 시간이 가고 나는 '로스트포크'라는 음식을 보게 됐다. 트위터에서 찾은 레시피인데 (@you_2cook)님이 작성한 것을 참고로 했다. 난생처음으로 굉장한 품이 드는 음식이었다.

 

- 감자를 찌고 (이것부터 난 한 두 번쯤 실패했다;)

- 양송이와 양파를 잘게 썰고

- 감자+양송이+양파 묶음을 만든 다음에

- 베이컨으로 돌돌 말고

- 오븐에 구운 다음

- 만든 소스를 끓여

- 오븐에 구운 베이컨+감자 묶음에 소스를 붓는 방식이었다.


제대로 된 요리 첫 도전 치고는 과한; 요리였다. 첫 도전은 맛은 성공이었다. 근데 뭔가 불만족스러웠다. 그제야 알게된 게, 밀키트에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얻은.... '나의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예쁜 플레이팅"이란 것이었다. 원하는 로스트포크의 비주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맛있는 베이컨 감자 구이도 만족스럽지 않은 셈이었다.

여기서 난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 감자와 양송이와 양파가 어우러지게 섞이지 않은 점 -> 아마 감자가 수분을 다 잃을 때까지 찐 탓도 있고, 양송이와 양파가 입자가 너무 커 감자 안에 꼭 엮이지 않은 탓도 있다. 감자를 적당히 찌고 양송이와 양파를 아주 잘게 썰면 될 것

- 베이컨이 예쁘게 감기지 않고 끝이 붕 말려 올라왔다. -> 베이컨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감자에 걸치지 말고 감자의 아래에 꼭 깔아버리자. 그리고 베이컨이 너무 과하게 구워지지 않도록 오븐을 살펴보자.


이 원인을 분석한 뒤 로스트포크 2회 차를 시도했다.

이게 그 결과물이다. 이때는 적절한 테이블도, 플레이팅도 따로 연구하지 않아 지금만큼은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처음 시도한 요리 종목치고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 이러고 나니 뭔가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나는, 맛있고 예쁘게 먹고 싶었다!


2. 왜 이렇게 요리가 좋을까?


그렇게 요리를 시작한 지 이제 거의 1년쯤 된 것 같다. 그다음으론 라구 소스도 만들어 보고, 투움바 신라면 파스타도 만들어봤다. 이것들은 어렵지 않은 작업이다. 자르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한창 트위터에 유행하던 연두를 사용한 들기름 막국수나 청경채 볶음밥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베이킹에 맛을 들이기도 했으나... 내가 유명한 (가족 사이에서) 밥순이란 걸 깨닫곤 제빵은 금방 그만뒀다. 32개가 나오는데 난 1개만 먹으면 되기 때문에... 

그러다 6월에 목돈이 생겨 하얀 테이블을 사게 됐다. 플레이팅의 치트키라고도 하는 하얗고 둥근 테이블이었다. 1번에서 말했지만 나는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좋았기 때문에 이 하얀 테이블이 생기고 더 가열찬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뭘 찍어도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하얀 테이블은 부탄가스 불도 예쁘다.


좋아하는 유튜버들도 생기고, 유튜버를 따라 파스타 소스도 1시간 내내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이제 한 요리에 1시간 걸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됐다. 자르고, 볶고 또 끓이고. 굽고. 모든 걸 동시에 하는 요리도 이젠 그냥 할 수 있게 됐다.

요리에 좀 미치다 못해 과하다 싶다고 느낀 건 내 기상 시간이 1시간 일러졌단 점에서 였다. 아침에 뭐라도 먹고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에; 7시에 기상하거나 8시에 기상해 8~9시에 출근하던 내 몸이...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요리해 먹고 8시까지 출근하게 됐다. 나도 이 미친 짓에 대해 몇 번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역시 나는 맛있고 예쁘게 먹고 싶은 게 다인 것 같다. 그래서 요리가 좋고 집착까지 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하나 더 더하자면 로스트포크의 이야기를 끌고 오고 싶다. 로스트포크와 초반에 잠시 하던 제빵에서 느낀 건데. 요리는 다시 하면 더 잘하게 된다. 반죽이 좀 질었다든가, 감자가 야채를 다 품기에 야채가 너무 컸다든가. 하는 반성할 점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걸 고칠 수만 있다면 다음엔 반드시 잘하게 된다. 그게 좋다. 내가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어떤 결과물. 내가 남의 걸 보고 연구하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는 결과물. 내가 부어 넣은 인풋만큼 나오는 아웃풋.


3. 어떻게 요리를 하고 있는가.

매주 나는 뭘 먹을지 월요일 오전부터 고민을 한다. 유튜브를 싹 훑고 먹고 싶은 요리 후보를 10가지 정도 선정한다. 그리고 이 중에 어떤 요리를 금요일 밤 안주로, 토요일 낮 메인으로 먹을지를 고르게 된다. 되도록이면 금밤/토낮의 재료가 겹치면 좋다. 그래야 일인가구의 극 단점인 재료를 남겨 썩히게 되는 걸... 지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새로운 달력도 설치했다. 그리고 매주 화~목 아침에 뭘 먹을지, 금밤/토낮/일낮에 뭘 먹을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둔다. 그러면 내가 재료를 구매하는 날짜에 잊지 않고 맞는 재료를 살 수도 있고 한 달이 지나 이런 걸 먹었구나 하고 추억팔이(?)도 할 수 있다.


겨울엔 해가 1시~3시에 든다. 우리 집이 좀 더 높았다면 하루 종일 해가 들었겠지만 애매하게도 22층 중 10 초반대 층의 집이기 때문에 해가 드는 시간은 주변 단지에 가리지 않는 시간뿐이다. (다행히도 봄/여름/가을은 하루 종일 해가 드니...) 그래서 난 1시에 밥을 차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미리 요리에 드는 시간도 계산해둔다. 30분짜리 음식이면 12시 30분부터. 1시간짜리 음식이면 12시부터 시작한다. 쌀을 불리거나, 재워둬야 할 재료가 있다면 그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두는 편이다. 그래야 정확히 해가 드는 1시에 음식을 늘어놓고 사진을 10분이나 찍어도 여유롭게 식지 않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게 바로... 철저한 시간 계산 하에 만들어진 햇빛 하 음식 사진 작품들이다...

무슨 그릇에 음식을 담을지도 미리 고민하는 편이다. 실수로 어울리지 않는 그릇에 담았다 옮기게 되면 설거지할 식기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니까.

어쨌든, 어떻게 요리를 하고 있느냐. 물으면 나는 계획하에 음식을 한다고 하겠다...


4. 요리 다짐


나는 식세기를 샀다. 1년간 요리를 해온 나에 대한 보상이자 2021년의 나를 위한 선물이다. 

사실 나는 요리 도중에 설거지를 하는 편이다. 나중에 설거지가 산같이 쌓인 게 너무 싫어서... 미리미리 해두고 밥 먹고도 5분 쉬고 바로 설거지하는 편이다. 근데 이게 너무 싫은 거. 밥 먹고 나는 놀고 싶은데 설거지 때문에 20분을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게... 그래서 식세기를 샀다. 식세기를 써도 일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초벌도 해야 하고. 근데 난 초벌에 세제를 쓰지 않아서 수세미로 물에 문지르는 정도만 한다. 이 정도는 요리하면서 할 수 있더라. 그러고 나니 끓이는 동안 초벌한 그릇을 식세기에 넣어두고 다 먹은 그릇만 가볍게 문질러 식세기에 넣으면, 식사를 다 한 나는 동작만 누르면 됐다. 최고.. 식세기 문명 최고의 이기... 나는 SK의 '트리플케어'를 사용한다. 나도 빌트인으로 살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빌트인 자리가 나지 않는다. ㄱ자 주방인데 그냥 잡기가 너무 많아 어떤 서랍을 비울 수가 없다; 그래서 상판에 올려둘 제품을 택했고, 그중에 난 요리가 잦으니 냄비나 프라이팬이 들어가는 6인용을 고르게 됐다. 그중에서도 예쁜 거. 그래서 아주 아주 아주 비싼 트리플케어를 사게 됐다. 어쨌든 대 만족. 난 가습기 청소도, 후드 청소도 식기세척기로 한다^^

다짐이라고 쓰고 식세기 자랑만 했네.


2021년 요리 다짐이라고 하면 한식을 배우고 싶다. 된찌는 해봤는데 김치찌개나 순두부찌개나. 그런 찌개류를 해 먹고 싶다. 아무래도 찌개는 며칠 안에 다 해치워야 하니 주말+하루는 쉬는 날에 먹도록 계획해야겠지만...

코스요리도 해보고 싶다. 내가 위가 워낙 작아서 한 끼에 많이 먹지도 못하지만. 적게 적게 만들어 코스처럼 만들어 먹고 싶다. 근데 내가 해서 내가 먹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오브되브르를 먹으며 두 번째 끼를 오븐에 넣으면 가능할지도... 디저트는 전날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는 쪽으로 만든다면...

끝내주는 플레이팅을 하고 싶다. 홈파티를 하게 돼서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끝내주는 플레이팅을 하고 싶다. 


나는... 맛있고 예쁘게 먹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2021년엔 그릇 좀 그만 사야지. 일인 가구에 그릇 50개가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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