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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27. 2024

삶에 인지적 부담을 활용하는 요령, 자이가르닉 효과


머릿속 용량을 아끼고 메모리를 절약하기 위한 방향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그건 애초에 평소 머릿속에 굴러가고 있거나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게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할 일이 떠오르면 최대한 빨리 메모장에 적어둔다. 폰 메모장을 거의 제2의 뇌처럼 쓰고 있는 요즘, 메모장에 기록하는 건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더 비워놓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등 집중하고 있을 때 무언가 딴생각이나 걱정거리가 떠오르면 '이따 생각할 것들'의 목록에 바로 적어둔 다음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라는 팁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이치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행동의 원인, 즉 머릿속에 무언가를 담아놓고 사는 성향이 피로하긴 해도 은근히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조만간 A를 해야겠노라며 며칠 동안 생각 한구석에 A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A에 착수하기 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준비를 하게 된다. 정확한 예시는 아니지만, 머리스타일을 바꾸어야겠노라고 마음을 먹으면 그 시점부터 행인들의 머리스타일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깨달았던 이 현상의 이름을 몇 달 전에 알게 됐다.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1043&docId=2166894&categoryId=51043

개념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네이버 지식백과만큼 편한 출처는 많지 않다. 사실 저 링크의 글을 읽으면 내가 하려는 말이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혹 읽어보려거든 내 글을 다 읽고 나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우선 자이가르닉 효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은 완결되지 않은 문제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뇐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개념을 접하기 전에 일상에서 쉽게 느끼고 활용했던 자이가르닉 효과에는 이런 게 있었다. 학창시절 시험 문제를 풀 때 헷갈리거나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절대 그 문제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문제 번호에 표시를 해 놓고 넘어가서 다음 문제를 푼다. 예를 들어 3번에 별표를 해 놓고 4번부터 20번까지 전부 푼 다음, 다시 3번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4~20번을 푸는 사이에 내 뇌의 다른 구석이 3번을 곱씹기 때문에 문제가 풀릴 확률이 조금은 올라간다.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우선 나머지 문제들을 다 풀었으므로 비교적 마음 편히 3번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이건 내가 본능적으로 행해 왔던 습관인데, 어느 날 공부법 관련 도서를 읽다 보니 이 원리를 이야기하며(자이가르닉 효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렇게 하라는 조언을 발견했고, 내가 맞게 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중고등학생 때 수행평가 같은 숙제를 하면서, 혹은 대학 시절 리포트나 프로젝트 같은 과제를 하면서도 이 자이가르닉 효과를 나름대로 톡톡히 활용해 왔다. 숙제나 과제 공지가 나오면 우선 그 요건과 사례, 참고 자료 등을 살펴본다. 그런 다음 며칠 동안 과제에 손을 대지 않고 그냥 일상 생활을 한다. 그 며칠 동안 머리 한구석에는 그 과제가 들어 있어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그걸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혹은 일상에서 과제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보낸 후 제대로 과제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 집중하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다 뭉쳐진 아이디어 덩어리나 글뭉치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이런 방식을 자주 활용하곤 했는데, 이 또한 일종의 자이가르닉 효과라 할 만했다.


이런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해하면 양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첫째, 완결된 과업은 우리의 머릿속을 쉽게 떠나는 반면 미완결 상태의 과업은 우리에게 남아 있곤 하므로, 인지적 부하를 줄이고 마음 편히 살고 싶다면 멀티태스킹은 최소화하고 과업을 하나씩 해치워 떠나보내는 게 좋다. 쉽게 말해서 미루면서 찝찝해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할 일을 빨리 쳐내버리라는 거다. 둘째,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반대로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 내가 그랬듯 그 문제를 자주 상기하거나 무의식 너머에서 굴려볼(?) 수도 있다. 인지적 부담은 있겠지만,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본인과 상성만 맞는다면 은근히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개념을 만난 이후로, 한번쯤 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아무튼 심리학 개념들은 참 재미있고 흥미롭다. 나는 절대 심리학을 업으로 삼을 정도의 흥미와 관심을 가진 건 아니지만, (대학 시절 심리학 수업에 얼마나 과학과 뇌 이야기가 많은지 알고 깜짝 놀랐던 데다, 심리학 책을 연달아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모든 개념이 섞이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심리학에 내 삶을 온전히 바칠 순 없겠구나 싶었다) 삶에서 얄팍한 재미 본위의 심리학 개념을 알아가는 건 늘 흥미롭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네이버에 '자이가르닉 효과'를 검색해 보는데 공부나 마케팅과 이 개념을 연관짓는 글들이 보여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생각은 끝이 없고 쓸 이야기와 할 말도 역시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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