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해당 외국어로 쓰인 문학 작품을 다시금 눈여겨보게 된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 인구가 적은 그리스어를 이 시대에 다시 소환한 것은 20세기 최고의 작가이며, 가장 자유로운 작가인 카잔자키스(Καζαντζακης)의 '그리스인 조르바(Βίoς και Πoλιτεία τoν Αλέζη Ζoρμπά)'라는 작품이다.
사용 인구가 천만 명도 되지 않는 언어의 작가가 세계적 문호가 된 경우는 카잔자키스밖에 없다고 한다. 1957년 사망할 때까지 매해 노벨상 후보에 추천되었지만 아쉽게도 끝내 상을 받지는 못했다.
카잔자키스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 크노소스 궁전 벽에 그려진 '황소의 등을 타고 재주를 넘는 젊은이'의 그림에서 크레타적 의미의 구원의 메시지를 이끌어내었다. 황소의 등을 타고 넘는 크노소스 궁전의 용감한 젊은이처럼 그의 눈은 겁 없이 공포를 응시했고,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이면서도 영원한 존재처럼 살기를 바랐다. 그의 이런 정신적 자유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는 유언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을 부탁했고, 그가 원한대로 그는 크레타섬 이라클리오(Ηραkλειo- 지도에는 헤라클리온, 이라클리온 등으로 혼재되어 있음.)에서 잠들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리스 원어로 읽을 일은 없을 것이므로 대부분 여러 번역본(이윤기 역 조르바가 최초임.)으로 작품과 만났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은 2018년까지 번역된 것은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판에서 중역되어 오류가 심하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처음에 프랑스어 번역본이 먼저 나오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이 되는 3단계를 거쳤다는 것인데, 마침내 2018년 5월 한국외대 그리스, 불가리아학과 유재원 교수가 그리스 직역본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출판하였다. 유재원 교수는 번역본 말미에 자신이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에 유리한 점을 따로 밝히기도 했다.
유재원 교수도 그랬듯이 카잔자키스의 풍부한 어휘는 놀라운 정도라고 한다. 크레타 방언은 물론이고 투르키예 동북부 흑해 지방의 폰토스 방언까지 넘나들어 40년 이상 언어학, 인류학, 민속학을 연구한 역자에게도 카잔자키스가 구사하는 끊임없는 단어들은 그 자체로 역자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나는 삶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고뇌를 아름답고도 현란하게 묘사한 언어적 세밀함과 날카로움에 감탄하였다. 조르바를 통해 제도나 지식에 사로잡힌 인간의 본성을 찾아 나서는 자유인의 여정을 옆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조르바의 자유로움은 먼 옛날 그리스인들이 느꼈을 자유로움과 세상에 대한 고뇌를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반추된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비그리스인으로 볼 때 조르바가 가진 그리스 중심의 문화와 애국심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인접한 이슬람 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드러내는 부분 정도이다.
우리나라 한강 작가의 작품이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외국인들의 한국어 공부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에 포함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어왔으며, 그 범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 역시 자국의 문화와 민족얼을 알리는 선두는 그 나라의 언어라는 사실을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실감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