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학교

by 마라곤

2002. 3. 19


날씨는 전에 없이 화사하고 바람도 산들산들 불고 창밖의 따스한 햇살이 교실로 들어오니, 점심 먹고 난 5교시 수업에 아이들의 조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는 거 보니 어느새 봄이고 3월 인가 보다. 새로 맡은 담임 반 아이들도 이제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몇몇은 이름이 머릿속에 저장되었는지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니 나도 모르게 흐뭇하여, 새 책과 새 노트 준비하고 초롱초롱 눈빛을 발사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수업에 임한다.


교실 정비도 해야 하고 아이들 신상도 파악해야 하고 담임은 정말 할 일이 많다. 각 부서별로 여기저기서 제출해 달라는 각종 서류나 간단한 서식도 내 이름의 명예를 걸고 나름 반듯하게 하려면 사전에 조사할 것도 있고, 먼저 했던 샘들에게 물어도 봐야 하고, 또 아이들에게서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서류도 챙겨야 하고, 늦게 내는 아이들에게 독촉도 해야 하고, 학급 조직을 하려면 우선 반장, 부반장 선거를 해야 하는데, 아직 서로를 몰라서 탐색 기간도 줘야 하고, 예전의 경력을 뒤져봐서 할만한 애가 있으면 미리 파악도 해야 하고, 추천할 만하면 성적도 찾아봐야 하고, 또 한편으로 가정 사정을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학비감면 신청받으려고 찾아오는 아이들의 여린 심성 건드릴까 조심해서 상담도 할 것 같다.


이런저런 학년초 부서모임, 담임모임, 부장모임에 학년회의, 교직원회의, 교과회의로 오늘도 짐을 싸들고 집으로 가져가서 학교서 못한 일거리 찾아서 마무리하다가, 또 집에서는 집에 아이도 챙겨 보고, 아이 숙제 도와주랴, 그러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면 언제 잤는지 모르게 다음날 아침은 여지없이 새 해가 뜨니... 3월은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3월에 1년 일을 다 하는 느낌이고, 바쁘다가도 숨 돌릴 때가 되면 담임 아닌 샘들이 새삼스럽게 부러워서 내년에는 절대 담임 안 해야지 하는데도 또 내년이 되면 담임을 빠질 합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늘 바쁘고 정신없는 3월을 맞이하나 보다.

올해는 교과서의 교사용 도서에 포함되어 있는, 삼박해 보이는 교과서의 CD자료가 궁금하여 TV에서 보는 멋진 수업자료가 CD 플레이어로 화려하게 나타날 것 같아 잠시 설레며 교실에 들어갔지만 막상 교실에서는 컴퓨터가 먹통으로 뻗어서 CD자료가 돌아가다가 멈춰서 난감했다. 아이들도 볼멘소리를 내며 그동안에 수업 시간 잡아먹고 지체되어 어쩔 수 없이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서 예전에 쓴 카세트와 테이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영어 소리 들려주고 따라 읽히다가 다시 전통적인 수업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수업이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니, 식당에 가는데 허기가 지기는 하지만 입맛이 없다. 4교시 마치고 가면 그나마 인기 있는 반찬은 얼마 남지 않았고, 1식 4찬의 음식을 입에 넣는데 밥을 씹는지, 돌을 씹는지,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불러서 짜증이 난다. 식후에 10분 산책이 좋다고 하지만 한창 담임을 찾을 일이 많은 3월은 어디 가서 쉬기에도 맘이 불편하여 자리로 돌아가면 아니나 다를까 몇몇 아이들이 외출 나간다며 외출증 끊어달라고 하고, 담임 찾는 학부모 전화가 와서 답변하고, 한숨 돌리니 이번에는 재학증명서 발급해 달라, 자리 바꿔달라 하며 몇몇이 담임을 찾으니 금방 점심시간도 사라졌다.


3월은 왜 이렇게 바빠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약간의 경중은 있지만 3월이 아니어도 담임은 거의 매일 바쁜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바쁘게 만든다고 하는데 - 그래서 군대도 정신없이 바쁘게 한다. 할 일이 없고 게으름을 피워야 창의적인 생각이 난다는데,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은 몸을 먼저 일으키니까 아쉬를 게 없지만) 게으른 사람들은 손 안 대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과정에서 기발한 발명을 한다는데... 교사도 여유롭고 생각이 자유로워야 아이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되고 사고 활동이 자유로워야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문득 공허한 생각만 하다가 현실이 따라가지 않아 학급 아이들에게 뜬금없는 화풀이를 한다.

'원래 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할래', '어쩔 수 없지 않겠나?', 그러다 '정말 말 안 들을래?' '맞을래' 하며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마구 쏟아진다.


누가 교사하고 싶다면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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