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4. 4
흔히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교사로서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한편 학생들의 다양해진 요구를 따라잡지 못하는 학교를 두고 하는 말이라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문제는 어디까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할지, 어디까지 우리의 권위를 지킬지 경계가 애매하여 나의 결정에 일관성이 없다고 스스로 느껴지는 때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의 요구는 대체로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므로 철없는 아이들의 무책임한 요구일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 가만 생각해 보면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알아주지 않는 권위에 매달릴 것인가, 권위는 학생이 인정해 주고 따라줘야 생기는 것이지, 나 혼자만 세운다고 해서 생겨지지 않는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는 것 말이다.
학교는 현재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0-20년 전에 통했던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옛날의 권위주의라는 쉬운 길에 종종 빠진다.
“ 학교에서 그렇게 정해지면 따라야지.”
" 너 혼자 겪는 것도 아니고 모두 다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데 네가 유별나다고 생각 안 하니?
“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지.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 꼭 말이 많거든."
" 담임이 무슨 힘이 있니? 교장선생님한테 가서 이야기해 봐.”
아이들의 어떤 말들은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들킨 것 같은 느낌으로 순간 속이 상하기도 한다.
" 학생들 차별하지 마세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좋아하는 거 아세요?"
" 왜 제 말은 안 들어주세요?"
" 샘은 잔소리가 너무 많아요. "
...
교육경력이 늘어갈수록 그런 논리에 쉽게 굴복하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너무도 싫어진다. 예전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행해졌던 많은 일들이 교실에서 조금씩 거부의 느낌을 받는다. 이미 너무 많은 권위에 젖은 우리에게 그들의 말대꾸가 우리들 화나게 하고 그들의 우리와 다른 정서에 놀란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를 모면하기 위해 윽박지르고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을까?
교실은 정지된 것 같아도 아이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들은 나름의 정확한 핵심을 짚어가며 0교시 폐지, 체벌에 대한 거부, 보충수업 거부, 급식에 대한 불만, 가르침에 대한 거부, 시장논리로 따지는 아이들의 생각들, 무작정의 권위에 대한 도전 ... 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런 현상들이 미디어를 통하여 기사화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어리다고, 아이들의 말이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며, 아이들 나름대로 시국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국가적인 이슈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때론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전에 맹목적으로 가졌던 교사에 대한 존경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아이들과의 신경전으로 하루를 마치면 느끼는 답답함. 아쉬움,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만족감과 행복감으로 변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또 인정하면서 교육희망을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