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7. 5
어느새 7월이 되었다.
방학계획도 세우고 방학 중 보충수업 이야기가 나오는 거 보면 방학이 가까워 온 것 같다. 참 빠른 세월 속에서 지난 한 학기 정말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인간의 욕심이 끝이 있으랴.
다가오는 방학 때는 또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맞기 위한 비장의 계획이 있었으면 하지만 막상 방학이 되고 나면 늘어지는 몸에 방학 중에 불려 와서 수업 몇 시간 하고, 책 좀 보다가, 피서라는 것도 통과의례로 한차례 부산을 떨고 나면 어느새 방학이 다 가는 것을 한 두해 겪은 것도 아닐 텐데, 방학이 되면 내 시간이 많아질 즐거움에 여하튼 기다려진다.
시험 때면 아이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도 시험을 많이 본 경험이 있지만 시험 전에는 왜 그렇게 지식이 절박할까? 짧은 머리에 시간은 없고 눈으로 보면 다 알 것 같은데 눈에서 멀어지면 내 것이 아닌 지식들, 그 지식을 잡기 위해 이해라는 그물을 치고 그림(지식과 관련 있는 삽화로 이해를 돕는 그림)으로 바람 잡아서 어떻게든 지식의 끄트머리라도 잡아서 실타래를 만들어 내가 가진 기존의 지식에 묶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하지만 손에서 떠나버리면 마치 숲에 날아다니는 새처럼 보이긴 해도 잡히진 않는다. 그런 지식을 눈에서 떼지 않으려고 고개를 처박고 아침을 맞는 시간에도 담임의 얼굴도 외면하는 아이들 앞에서 무엇보다 안쓰러움을 느낀다.
시험 때는 내가 가진 홈페이지에 방명록을 남기기는 고사하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급격히 떨어지고, 시험 외의 것에는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는 그 냉혹한 생존의 몸부림을 절감한다. 내일 치르는 교과목에는 질문이 쏟아지지만 시험이 끝나면 헌신 버리듯 다음 과목을 찾아가는 아이들, 그들을 탓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여유가 없는 듯하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각종 성인병도 많고 암도 많고 빨리 늙는 모양이다. 세계학업능력평가에서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행복지수는 지극히 낮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좀 행복하게 살아야 할 텐데 늘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세속적인 이익을 따라가다 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만 바라보다가 정작 중요한 것 -지금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는가, 지금 하는 일이 옳은가-을 놓치게 되는 것은 참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보잘것없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신봉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서 뒤늦게 후회하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게 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믿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어찌 보면 잔인한 악순환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에 받은 점수가 그때에는 세상을 움직일 만큼의 무게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세상을 살고 보면 그저 여러 가지 경험을 갖게 되는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우리 사회는 그 한 번의 기회마저도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지나친 절박함을 당연시하고, 실수를 실패로 단정해버리는 고약한 버릇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시험기간이라도 얼굴 들고 하늘도 보고 친구와 대화도 하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회로 삼는 학교이면 좋겠다. 경주를 하다가 쉬어가고 같이 갈 수 있는 경쟁이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더욱더 실감 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