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공주?

by 마라곤

2003년

여자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전근해서 온 첫 해라서 학교도 처음이고 아이들도 처음이다. 아이들은 비슷비슷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르다. 그 해 담임반 아이들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새 학교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이 있어 방과 후에도 가끔씩 집 주변에서 눈이 마주치는 그런 일이 많았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니 조금씩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데 3월이 다 가고 거의 다 외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면 이름과 얼굴이 매칭이 되지 않아 엉뚱한 이름을 불러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난 애써 멋쩍은 듯 미안해하고 했다. 아이들은 이름을 외우는 담임의 고초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보다도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지 못한 담임에 대한 서운함이 더 큰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이름표가 박힌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낄 정도였다.(체육복에 이름이 박힌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5월이 되니, 아이들의 관계망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구랑 더 친하고 누구랑은 질색이고, 누구랑은 말도 걸어보지 못한 여러 가지 다양한 관계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크게 드러나는 경우의 몇 가지만 그렇지 말하지 않은 다양한 애증의 관계가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나는 여학생들은 다들 누구랑 친하면 누구랑과도 친하지 않을까 또는 크게 꺼려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가 생각보다는 심각했다.


학급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지각이 많고,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흐리게 하거나, 아이들을 왕따 시키는 소위 좀 논다고 하는 칠공주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듯, 모든 일에 함께 하며 학급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크게 문제 될 만큼은 아니라서 그냥 그렇거니 하며, 반장을 다독거리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당시 점심은 교실에서 급식이 이루어졌고, 4교시가 마치면 급식 도우미 2명 외에 나머지 아이들은 먼저 뛰어가서 줄을 서는 순서대로 급식을 하였는데 칠공주 아이들이 항상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들만의 집단적 우위로 다른 순한 아이들은 체념하며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요일별로 급식 순서를 정해서 그들의 전횡을 막고자 했는데, 담임이 있을 때는 잘 지키는 척하다 곧 예전으로 돌아갔다.


뒤늦게 칠공주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칠공주 아이들은 자기들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괴롭히며, 특히 담임에게 총애를 받는 반장 중심의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소외시키며, 시험기간 중에는 아이들의 학습노트를 몰래 숨겨놓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고, 어느 날 현장에서 그 상황을 알게 된 나는 학급회 시간에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그들과 논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칠공주의 우두머리 학생은 나와 심한 말싸움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담임은 특정 아이들만을 편애한다는 주장과 칠공주의 비행을 고발하는 주장을 서로 소리 내면서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말았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공개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인 내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논쟁을 끝냈다.


그 후 나는 공개적으로 특정 아이들을 나무랐던 일에 대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과를 했고, 칠공주도 외형적으로는 사과를 표명하며 일단락되었다. 그 전과 같은 칠공주의 비행(?)은 없어졌지만, 내내 그들과의 사이가 한동안 냉랭했었다. 그때는 그 칠공주들이 왜 그렇게 밉고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감정 표출에 심한 실망감으로 다시는 여학생 담임을 맡지 않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나에게도 그들에 대한 이유 없는 악감정이 있었고, 그들의 예민한 심성과 그들의 거친 행동 뒤에 숨은 여린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칠공주는 3학년이 되면서 서로 다른 반으로 흩어지고 예전만큼의 결속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일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회자되고, 칠공주가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졸업하고 각자의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듣고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에 대한 감상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경험으로 남아있을 테지만 나에게도 여러 가지 의미로 기억에 남아 있음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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