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최근 불황으로 교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종에 비해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감원과 구조조정과 실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사 한 사람 그만두게 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는 냉소적인 말도 들리고, 사실 내 주위를 봐도 부부 교사는 신흥재벌이라는 할 정도로 생활에 여유를 가지고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내 또래의 동료 교사들은 외벌이가 많은데 후배들은 확실히 부부 교사가 많다.)
사실 그동안 선배 교사들의 개혁 요구와 희생으로 정권이 교사 달래기 차원에서 월급을 많이 올린 것도 사실이다. 담임 수당이 한 달에 3천 원(매일 하는 조종례 수고비를 조례 50원, 종례 50원이라고 말하곤 했다.)이었던 수십 년간의 웃음거리에서 벗어나 3만 원으로 현실화(?)하고, 기본급도 대기업까지는 아니라도 중견 기업의 중간 이상으로 조정한 것 같다. 나이가 들고 호봉이 올라갈수록 기본급도 올라서, 50대가 넘는 교사들은 약간 어깨를 펼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부부 교사는 더 풍족하지 않을까 부럽기도 하다.
주위의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교사는 참 좋겠다고, 방학도 있고, 아이들도 잘 따르고, 출퇴근 시간도 좋고... 한다. 내가 요새 아이들이 예전과는 다르다며 나름의 애환을 얘기했더니,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리 힘들지 않아 보인다고 앓는 소리 말라고 한다. 사실 수입이 최상위인 의사도 늘 찡그린 환자나 썩어가는 입안을 들여다보아야 하니 뭐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닐 것 같기는 하다.
생생한 인간을 만나는 일은 기계를 만나는 일보다 재밌다. 많이 달라지기 했어도 대다수 아이들은 선생님을 자신의 삶의 모델로 생각하고 때론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며, 서로 말이 통하는 아이들과 얘기하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가끔씩 하는 날카로운 질문에 괜히 기분이 들떠서 열심히 설명해 주려는 마음도 생기고,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매를 보면서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이 나기도 한다.
내가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는 수업도 많고, 내내 각종 업무와 상담으로 바쁘지만, 그래도 하루 한 시간 정도는 짬을 내어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다른 직종에 비해 퇴근도 빠른 편이어서, (야간 자습 지도를 하는 날이 아니라면) 오후 시간을 자기 계발이나 운동을 하면서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고3 담임의 경우는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날이 한 달 중에 2/3 이상이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
무릇 모든 직업은 그 나름의 애환이 있기도 하고, 같은 직종이라도 어떤 환경의 직장인지에 따라,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에 따라... 등등으로 변수가 많은 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성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직업에 대한 행복은 그 직업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닐 수 있으니 일반화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위험하지는 않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한국의 교사로서 힘든 일이 있다면 공무원이라는 굴레이다. 교육은 공공재이므로 공적인 임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묶여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교사들이 무슨 단체행동을 한다고 단체행동권이 없기도 하지만,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학생의 권리나 교사의 권리, 민주시민 교육을 강조하면, 이를 좌파로 규정짓고 무조건 정부 정책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행정적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안락만 추구하고, 정치적 금치산자가 되어야 하는 처지가 아이들 앞에서 한없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