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을 가장 힘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손편지인 것 같다. 아래한글이나 MS Word 같은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일상화되었고, 전자메일도 흔해졌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손 편지는 사람이 묻어나고, 편지 쓴 이의 마음이 온전히 묻어난다.
아이들에게서 손 편지받는 일이 요새는 드물어졌다. 예전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편지까지는 아니어도 쪽지에 몇 자 적어서 선생님 책상 위에 몰래 두는 일이 너무 흔했다. 띄엄띄엄 가끔씩 쪽지를 남기는 아이도 있지만, 장문의 편지를 시리즈로 보고서 제출하듯 정기적으로 남기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부모님 외에는 학교 선생님뿐이기도 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글솜씨가 있어 수시로 자신의 삶의 고민과 갈등을 좋아 보이는(?) 선생님에게 마음껏 발산하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너무 심각한 고민을 남기기도 하여 따로 불러서 상담을 한 기억이 있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스스로 글로 표현하는 행위는 매우 고귀하고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로서 손 편지를 받는 날은 공식적으로는 스승의 날이다. 편지 쓰는데 정해진 날이 있다는 것이 뭔가 안 맞지만, 편지 쓰게 하는 것도 교육이라고 스승의 날에 단체로 감사하고픈 사람에게 쓰게 하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스승의 날에 받는 손 편지는 사실 안 읽어봐도 90%는 무슨 내용인지 안다. 담임에게 썼다면(내가 받는 손 편지는 당연히 담임에게 썼을 것이다.) 나에 대한 첫인상과 그동안 감사했고, 좋은 담임으로 계속 남아 달라는 거 또는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그런 고정된 글귀가 대부분이다. 아마 쓸 대상이 생각이 안 났거나, 쓰고 싶지 않은데 쓰라고 해서 의례적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이라도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다.
보통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해야 하는데 스승의 날 편지는 답장을 다음에 만나면서 한마디 해 주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어 좋다. 담임은 아이들을 늘 보니까 만나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은 표현할 기회가 잘 없으니 그런 기회에 솔직한 고백(?)을 할 수도 있으니 그건 만으로도 가치는 있을 것 같다.
그
어느 날 아이들의 스승의 날 편지를 읽고 아이들에게 보낸 답장이 남아있어 그때의 감상을 돌이켜보게 된다. 어떤 경로로 아이들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전달은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혼자만 보고 남기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2003. 5. 16 스승의 날 편지를 읽고
너희들의 솔직한 사연들로 가득한 스승의 날 편지 잘 읽었다.
더러 형식적으로 억지로 쓴 것도 있지만 그 솔직한 마음도 나에게는 소중하게 느껴졌단다. 많은 아이들이 평소에 하지 못한 담임에 대한 느낌, 건의사항, 인상, 바람. 소망 등을 솔직하게 적어 주었는데, 너무 인사치레로 좋은 말만 적어주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몇 개는 가슴 뭉클한 사연과 정말 진심으로 하는 글도 있었음을 기억한단다.
많이 미안해하고 앞으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비장한(?) 다짐도 나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하구나. 솔직하고 투정 부리는 투의 글도 다시금 읽어보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지만 너희들의 뜻과 의견을 다 받아줄 수 없음을 나의 부족한 역량이라 생각한단다. 부족한 담임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쓴 만큼 우리 반이 더 좋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담임을 이해해 주고 함께 노력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또 너희들의 진심 어린 축하 잘 받았다. 스승의 날이 불편한 날이 되어 가고 있지만, 이 날이 아직 좋은 뜻이 있다면 서로를 생각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좋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고 같이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모두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구나. 항상 밝고 활발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20000
(20000은 이만... 의 뜻으로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써먹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