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연구년제

학습연구년제

by 마라곤

2019년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와 경험을 얻게 해 준 해이다. 2019년 3월부터 1년 동안 학습연구년을 갖게 되었다. 학습연구년은 말 그대로 학습연구를 위해 교육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회이다. 관례적으로 대학교수에게만 부여되었던 기회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초중등 교사에게도 부여된 것은 당시를 기준으로 5년 정도 정착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함께 매일 출근해야 하는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유급휴가로 경제적 지원도 놓치지 않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었다.


인생을 통해서 보면 어떤 기회라도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으로,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좋은 기회는 금방 오지 않으며, 특히 교직 사회에서 찾아오는 여러 가지 기회는 때를 놓치면 그런 제도나 정책이 몇 년 뒤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교육감의 노선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좋은 기회를 여러 번 잡기도 했지만 학교생활에 매몰되어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의 경우도 퇴직을 정확하게 5년을 남겨두고 마지막 막차를 탄 경우라서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교육과 학습 노하우를 정리해서 하나의 테마로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으며, 학습지도분야(생활지도분야, 교육혁신분야 등이 있음)에서 '영어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중심으로 한 과정중심 평가 실태와 현장 적용 방안'이라는 연구과제를 주제로 설정하게 되었다.




학습연구년제를 맞기 전 거의 10년 전부터 부산 시내 초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영어선생님과의 모임에 참여하였는데, 그 모임은 영어소설 읽기 및 독후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인 모임이었다. 모임을 이어오면서 늘 가슴 한 곳에 남아 있는 생각은 학생들에게 영어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갖게 하는 것이었는데, 입시에 쪼들리는 학생들에게 영어소설 읽기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감히 시도할 생각이 없었지만, 학습연구년제의 목표가 생기자 이를 교실에 적용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읽은 영어소설 중에서 학생들에게 읽기에 적합한 도서를 선정하는 것이다. 소설의 소재와 난이도와 흥미도를 고려하고,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영어 읽기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 해당 영어도서를 교실 수업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현재의 고등학교 현실에 적합한 평가도구를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고등학생들의 영어소설 읽기에 적합하다고 추천한 영어소설책


이러한 연구를 뒷받침 하기 위해서 부산 시내의 많은 학교에서 영어소설 읽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교과서에는 얼마나 많은 영어소설 읽기의 기회가 마련되어 있는지, 영어소설을 교실에서 활용한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에 반영하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설문조사를 하기도 하고,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영어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학습연구년제를 하면서 연구과제에만 몰두한 건 아니었다. 매일 학교에 출근해야 하는 생활에서 갑자기 해방되자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보이지 않던 여러 탐방 기회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그림에 떡처럼 보였던 서울의 국제도서전에 가서 보고 듣고 싶은 강좌를 숙식을 해가면서 들을 수 있었고, 주요 도시의 유명한 도서관 탐방, 타지방 독서 모임에 대한 정보 수집, 영어 읽기 수업 관련 연구수업 참여 등을 스스로 기획하여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만끽하였다. 이러한 국내 연구활동에 소요되는 비용도 모두 연구비로 지원받게 되어 마음껏 자료를 구입하고 탐방을 할 수 있는 욕구를 자극하였다.


더군다나 학기 중에 꿈도 꾸지 못한 해외여행도 하게 되었는데, 영문학의 본고장인 영국과 기타 유럽 주요 국가를 방문하면서 Shakesphere, Jane Austin, Charles Dickens, Bronte Sisters, Tolkin 등 작가들의 고향에 있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볼 수 있었고, 영어 교사로 처음으로 영국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미국영어에 매몰된 영어교육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고, 좀 더 일찍 영국에 오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지기까지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교사에게 교과에 맞는 알찬 여행은 정말 소중한 기회이고 학습연구년제와 같은 기회가 열정적인 교사들에게 더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보았다. 퇴직 전 마지막으로 얻게 된 학습연구년제는 그 후 남은 기간 동안 더욱 새로운 열정으로 학생들을 대할 수 있었기에 생애 주기면에서 보면 10년에 한 번쯤은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더욱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학교와 군대는 바빠야 한다는 말을 한다. 시간이 많으면 딴 생각을 한다는 관료주의적 통제문화에서는 창의력과 열정이 생길 리가 없을 것이다. 여유가 있어야 아이들도 보고, 세상도 달리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의욕이 생길 것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숨통이 터이고 여유가 생겨야 더 잘 될 수 있고 또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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