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공모제

by 마라곤

2018년 6월 교장공모제에 지원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실 그런 제도가 있다는 거는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일찌감치 교감이나 교장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교직사회에서는 40대 초반 정도에 앞으로 승진할지 평교사로 퇴직 때까지 있을지를 결정해야 하는 분위기였는데 후자의 경우 '교포파(교장포기파)'로 불린다. --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소속한 노동조합의 지부장으로부터 지원 의사에 대한 권유를 받았을 때 그런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고, 내가 어찌어찌해서 추천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더욱 놀랐다. 교장공모제가 내부형이 있는데, 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지원과 보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해당 학교의 교무회의에서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시행하기로 의결을 했다고 한다. 물론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이지 지원한다고 그냥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날로부터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교장 선생님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열심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기억뿐이었는데 갑자기 학교를 경영한다는 생각에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지원하는 학교에 대해 근무 경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느닷없이 교장이라고 와서 그 지역의 선생님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그동안 그렇게 바라던 교육정책을 직접 시험해 볼 기회가 생긴다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생각하다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지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1차 서류를 제출하고 2차 면접 때까지 지원 학교에 혼자 버스를 타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등하교하는 모습을 그리며 학교를 배회하기도 하고, 학교의 교육계획서를 입수해서 교육과정이나 학교환경과 학교의 주요 행사 등을 살펴보며 담당 교사와 만나기도 하고,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사전 인터뷰 연습도 하면서 약간은 들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에 마음 한편으론 운영위원 5명, 학부모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에게 나를 어떻게 인상 지울지 걱정도 되었다. 그들이 과연 나의 그동안의 교육경험과 이력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아니 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다대 1의 면접 내용은 모두 피상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모범답안과 교육청의 중점 교육정책 과제에 대해 청산유수 같은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내가 빽빽하게 기록한 교육현장의 경험이나 고민에 대해 관심 있게 묻지 않았으며, 내가 교장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학교운영계획은 묻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의례적이고 기계적인 질문으로 내가 얼마나 내용을 자연스럽게 숙지해서 말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도 '이런 질문과 답변의 면접으로 어떻게 교장을 선발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혼잣말이 저절로 나오면서 그래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는 1차 학교면접에서 1위 선발자보다 부족한 성적으로 2위로 추천되었고, 2차 교육청 면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결국 학교면접에서 1위를 한 지원자가 교장으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차 면접이 끝나고도 들리는 이야기로는 지원학교 관내의 다른 학교의 교감이 지원했다고 했고, 이미 관리직에 있는 그 교감은 장학사나 교감선발 과정에서 그런 면접에 익숙한 달변가이기도 하고 지원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하고도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선발 과정인 듯하다. 학부모나 학교 입장에서 교감의 경력이 있고 대답도 잘하는 지원자가 더 미덥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탈락의 소식을 일찌감치 들었던 나에게는 한여름밤의 꿈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나서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도 들었고, 달변이 아닌 나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상한 교장 선발 구조에 대한 회의가 심하게 밀려왔다.


결국 교장으로 추천된 그 교감은 아마 나보다 더 학교를 잘 운영했으리라 생각한다. 평교사 경험보다 관리직 경험이 더 있기도 했고 주변 학군에 대한 이해도 나보다 더 나았으리라고 여기고 싶다.


하지만 교장 선발 과정은 문제가 많은 듯하다. 20분의 주어진 질문에 대한 유려한 답변이 가장 중요한 면접 포인트라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학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어도 하루이틀은 같이 생활해 봐야 알 것이고, 가치관을 판단하려면 한 달은 걸릴 것 같은데 한 학교의 교장을 선발하는데 그 정도의 절차만으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고 결국 그렇게 선발된 교장이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그런 것들이 누적되어서 학교가 바뀌지 않고 교육이 점점 냉혹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나에게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난 교장공모제 지원은 그나마 기존의 교장선발제도-- 장학사 선발을 통한 , 교감, 교장으로 진행되거나, 오랫동안 연수와 경력, 연구 등으로 점수를 누적하여 교감, 교장으로 진행되는 --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여 교직단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사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 기존의 교장선발제도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공백이 생긴 교장직에 학교 구성원들의 교장공모제 의결로 약 2-3% 정도의 경우에만 시행되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교장이 된 경우는 지역 신문에 날 정도이고 그 비율도 교감이 교장이 되는 경우가 많고 정말 평교사가 교장이 되는 경우는 1년에 1-2명 정도일 것이다.(글을 쓰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교감이나 교장이 되려고 그렇게 노력할까? 내가 40년이 되도록 수많은 교장을 만나보았지만 정말 존경하고픈 교장은 10명 중 1명 정도이고, 대부분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장선발과정은 바뀌어야 한다. 점수를 쌓아서 도달해야 한다면 20년 이상을 점수를 따기 위해서만 노력할 것이고, 더 쉬운 방법을 찾자면 행정 업무와 학교 지원에 매달리는 고단한 장학사 생활을 10년은 희생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교장은 그 학교 구성원들이 교황식으로 추천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대부분의 교사들은 누가 학교를 더 잘 이끌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자율적이고 장기적인 면접 절차가 일상화된다면 아이들을 위한 노력이 다른 일 때문에 방해받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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