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독서모임

by 마라곤

2008년 7월 나는 영어교사 해외연수로 미국에 한번 더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까 1997년 처음으로 미국 해외연수를 간 이후 2번째인 셈이다. 10년 전에는 미국 동부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모건타운(Morgantown)에서 연수를 받았고, 이번에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 샌디에이고(Sandiego)이다. 그때는 영어교사의 해외연수가 거의 미국 일변도였으니 다른 곳은 선택지가 없었다.


비록 각각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88 올림픽 이후 영어소통능력이 중요시되고, 교사들의 해외연수를 교육부에서 장려하는 분위기이어서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했다.(하지만 대부분의 교육정책이 그렇듯이 정권에 따라 이런저런 정책이 금세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하였는데, 해외연수도 2008년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돌이켜보면 97년 연수 후에 IMF 사태가 있었고, 2008년 이후에도 대규모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을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모양이다.


2008년 해외연수를 먼저 이야기한 이유는 영어독서모임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해외연수를 갔다 온 부산의 24명의 영어교사는 한 달 동안 객지에서 서로 부대낀 정이 있었는지 한동안 자주 만나면서 근황도 나누고 그랬는데 우연히 부산영어도서관에서 영어교사독서모임을 만든다는 공문을 보게 되었다. 모임 취지에 공감하고 이를 통해서 계속 영어를 가르치면서 배우고자 하는 몇 명의 선생님들이 의기투합하여 결국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내가 본의 아니게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니까 2009년 9월에 본격적으로 모임 결성을 마치고 회원 약 5명 정도로 매달 1,3주 토요일 3시로 정하고, 도서를 선정하여 모임을 가졌는데, 부산영어도서관에서 우리를 위해 공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해 주었으며, 곧이어 영어 원어민 교사도 우리와 함께 토론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1-2명이 자리를 지킨 적도 있었고, 한때는 모임이 존폐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2009년도에 선정한 책은 'Giver', 'Number the Stars', 'Tuesdays with Morrie'로 기억한다. 대부분 중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서 중고생들에게 어렵지 않고 재밌는 책을 선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모임 2시간 중 첫 시간은 원어민과 함께 책의 내용에 대한 질문지를 가지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두 번째 시간은 그 책을 다시 우리 회원들만 우리말로 느낀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도록 하였다. 모두 선생들이라 입을 떼면 할 말이 넘쳐 났으며, 읽은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쉴 새 없이 쏟아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사실 그때만 해도 토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어서 각자가 1시까지 수업하고 귀가 후 다시 모임에 오거나 학교에서 바로 오기도 하고 그랬다. 그때는 그게 힘들었는데 나중에 토요일이 쉬는 날이 되니 집에서 나오기가 더 귀찮아지기도 했다.



회원수가 갈수록 늘어서 매번 모일 때마다 10명인 좌석이 부족하여 의자를 빌려오기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원래 정회원보다 참석자는 1/2이면 좋은 편에 속한다.) 추가로 권유에 의해 초등 영어전담 선생님도 가입하였고, 심지어는 교장선생님도 소문(?)을 듣고 참여하니 모임의 추진력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2012년도에는 BERS(Busan English Reading Society)라는 이름으로 부산시교육청 교사연구모임으로 신청하여 재정적인 지원도 받게 되어, 온라인카페 등록으로 자료를 모으고, 도서구입과 도서 관련 자료 수집과 독서지도 수업 참관 및 발표 등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가끔 신문을 보면 오로지 한 길을 수십 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사람도 그렇게 힘든 일일 텐데 10명 이상의 모임을 10년 이상 굳건하게 지켜왔으나, 회원들도 근무학교가 바뀌고 고등학교 입시체제에 흡수되어 한가로이 영어책을 읽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고등 선생님들이 빠진 자리에 초등 영어전담 선생님들이 자리를 메꾸었고, 어느새 나 혼자 유일한 고등학교 그것도 남자교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3-4년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으나 퇴직 때까지 학교업무에 매달려서 자연 등한시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출석이 뜸해지고 영어책 읽기도 버겁게 느껴진 것이 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지금의 영어독서모임은 몇년전에 새로 가입한 영어선생님이 회장을 맡아 모임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회원들 모두가 여선생님들이라 케미가 잘 맞으며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가끔 내 조그만 방을 빙둘러 서있는 10여년간 읽었던 영어책들을 보며, 그 시절이 참 행복했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제 하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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