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학교에서 근무하면서도 두 번의 미국 연수를 가지게 된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대단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교사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교사의 외국 연수를 그리 호의적으로 보지 않은 교육당국도 그랬고, 그때그때 변하는 교육정책으로 외국 연수의 기회가 전시성 행정으로 치부되기도 했었기 때문에 개인의 가정사나 나이 등을 고려하면 그 기회를 얻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지금은 젊은 교사들이 임용 전에 개인적으로 외국 유학 등을 이미 경험한 사례가 많으므로 그럴 필요도 없고 절실하지도 않을 것 같다.)
더더욱 행운인 것은 97년 미국 동부 연수를 마치고 바로 우리나라는 IMF를 맞게 되었고, 2008년 미국 서부 연수 후에는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맞게 된 사실이다. (마치 외국 연수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흔히들 공직자들, 특히 오랫동안 관행화된 (시군구)의회의 외유성 국외 연수로 엄청난 세금이 낭비된다는 기사가 자주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 교사들의 국외 연수는 굉장히 엄격하게 진행되었고, 선발 과정도 평균 3대1 정도의 경쟁을 거쳤으며, 다른 교과는 잘 모르지만 영어교사에게는 수업 개선과 영미 문화 이해에 정말 도움이 되는 연수라고 생각한다.(연수를 하면서 대상 국가에 대해 -미국이나 영국- 맹목적인 선망을 가지게 되는데, 이 부분은 정책자들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영어 연수가 지정된 대학에서 영어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로 채워져 있는데, 그건 한국에서도 가능한 부분이어서 굳이 멀리까지 가서 하루종일 교실에서 수업만 하기 보다는 현지에서 과제 중심으로 현지인을 만나고 자료를 얻고 문제해결을 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물론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여튼 첫 미국 연수는 미국 동부 웨스트 버지니아주 대학(WVU) 기숙사에서의 한 달 연수였다. 전국에서 모인 40명의 영어 교사가 도착한 곳은 Morgantown이라는 대학 도시인데,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노래에 걸맞는 인구 45,000명(대학인구 25,000명)의 강원도 산골 같은 마을이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미국인지 어딘지 구분이 안되는 낮에는 사람도 없고 차만 간혹 지나가는 적막한 곳이었다.
97년 7월 연수 중 하루의 일기를 소개한다.
< 오후 수업 중 조별로 수업이 없는 날이 있었다. 수업에 갑갑함을 느낀 나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시내 버스를 타고 Morgantown 시내를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동료 교사 2명과 버스 노선표를 들고 학생 회관에서 정차하는 시내 버스를 75cents(당시환율로 약 680원)를 내고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뜨거운 여름 한낮이라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우리 세 사람 외에 거의 없었고 버스는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면서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미국인의 사는 모습을 한 눈에 들어오게 했다. 사람은 거의 없고 간혹 승용차만 지나 다니며 버스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도시의 이곳 저곳을 지나갔다. 조금 있다 우리는 너무 멀지 않다고 생각되는 ... Park라는 곳에 내렸다. 공원 구경이나 하고 적당한 차편을 구해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Park는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이 아니라 그냥 동네 이름에 붙은 지명에 지나지 않았다. 무작정 타기는 했는데 사실 마음에 둔 목적지는 없었고 또 버스 노선표를 봐도 지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거의 없어서 그낭 돌아오기로 했는데 다음 버스 시간은 너무 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우리는 그 다음 수업에 가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기에 영화에서 본 히치하이킹(Hitchhiking)을 하려고 지나가는 빈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손가락을 가는 방향으로 흔들어댔다. 그러나 왠지 지나가는 차는 하나같이 우리를 멀끔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서는 차는 없었다. 우리는 애써 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책도 손에 몇 권 들고 여선생님을 앞세우고 호소 어린 눈으로 계속 손짓을 해 보였지만 허사였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길을 걸어 캠퍼스 쪽으로 가야만 했다. 친절하고 인정 많다던 시골 마을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우리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어느 미국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이 HitchHiking은 통하지 않을 뿐더러 때론 위험하기까지 하다면서 당신 같으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국인-그것도 그들이 보기에 우리 같은 유색인을 태워 주겠냐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반문하였다. >
그렇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순진하고 바보같았다. 대학 강의실에서 아무리 좋은 교수법을 배워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사들을 비행기 태워서 현지에 보며고 프로그램 맡기면 끝이라는 생각이 빚은 세금 낭비고 실적 쌓기뿐이 아닐까? 생애 첫 해외 여행이라 해프닝도 많았지만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그 당시 학교 교지에 올린 글의 일부를 추가로 소개한다.
< 대학 캠퍼스간의 이동 수단으로 눈에 띄는 것은 PRT라는 자기부상 열차였다. 5곳의 정류장이 있고 따로 중앙 통제 시설이 있다. PRT는 16인승 좌석으로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철로 위를 다니는데, 모든 것은 자동으로 운행되며 시속 60km정도까지 낼 수 있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생긴지는 30년 정도 됐다고 들었는데(그러면 1960년대에 설치되었다는 이야기...) 그 당시에도 미국 대학 내에 이런 교통수단은 유일한 곳이라는데 여러가지로 신기하다고 느꼈다.>
PRT Station & PRT(Personal Rapid Transit)
< 미국은 기본적인 상비약 정도는 supermarket에서도 판매하며 drugstore에는 영양제부터 소화제, 두통약 등을 비롯하여 이름과 용법을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약이 진열되어 있고, 이런 약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안쪽의 Pharmacy(조제)라고 쓰인 곳에는 처방전을 내고 약을 조제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은 의학분업이 되기 전이다.) 나는 2-3일 동안 시차로 인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해 Superette(작은 슈퍼마켓)에서 Somlnex라는 수면제를 구입하고 저녁에 2알을 먹고 11시경 잠이 들었다. 사실 아침 8시 30분 수업이 시작되니 아침을 거른다고 하더라도 늦어도 8시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 어쨌든 비몽사몽간에 잠이 든 후 얼마나 지났을까 언뜻 눈을 뜨니 밖은 환해 있었고 시계는 8시 30분이었다. 나는 충분히 잤기 때문에 수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일어났지만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30분을 지체한 후 교실에 들어간 것은 9시 반이었다. (그냥 수업 빼먹고 자는게 나았을텐테...하고 후회가 된다.) 수업에 들어가서 나는 수면제를 먹은 사실을 얘기하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오전 내내 잠에 취한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New York은 좀 순수한 도시였나?
<맨해턴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해지면 무섭다는 북쪽 할렘(Harlem) 지역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Broadway에서 하는 '미스 사이공' 뮤지컬도 건너뛰고 남쪽으로 5번가를 따라 어두워져 가는 New York의 거리를 내려갔다. New York은 동서남북으로 길을 찾기 쉽게 만들어져 있어 동서로 1번부터 11번 가(Avenue)까지, 남북으로 1번부터 대강 210번 거리(Street)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어 지도와 나침반만 있으면 갈 수 있었다. Rockefetler Center, St.Patrick'Cathedral 등등 끝이 없는 명소들을 따라 가면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이국의 문화를 온몸으로 만끽하였다. Manhattan은 범죄와 빈민층의 어둡고 지저분한 모습에서부터 화려하고 다양하고 하늘높이 솟은 미국 경제력의 중심지라는 모습까지 실로 복잡다단한 양면을 동시에 갖추었다. '나홀로 집에'에 나오는 Central Park의 광활하고도 아름다운 도심의 공원에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흑인의 모습도 보였다. 어떤 선생님은 건물 벽쪽으로 걸어 가면 흑인들이 건물 안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안으로 잡아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우리에게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Greenwich Village쪽의 Washington Square park(워싱턴 광장 공원)에 다다랐을때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즉흥적으로 연주가 열리고(그 당시는 Busking이라는 말이 없었나?) 한 곳에서는 어떤 흑인이 나와서 뭔가를 꺼내면서 열심히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간혹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주위가 어둡고 거리는 지저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