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학교에는 직급이나 지위의 고하가 뚜렷하지 않다. 20대 청년 교사부터 60대 정년 가까운 교사까지 표면적으로는 모두 평교사고 선생님이다. 물론 중간 간부 격인 부장교사가 있고, 또 학교에 따라서는 수석교사라고 수업 양은 대학교수급 정도로 적지만, 대신 교과 전반의 교수법 안내, 자체 연수 및 신규교사 지도 등을 맡는 자리도 있지만, 그건 편의상 업무를 위한 직책일 뿐이고 직위는 다 교사이다. 원로교사도 나이가 되면 불리는 대우에 지나지 않는다.(약간의 원로교사 수당이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모든 평교사 외에는 교감과 교장이라는 관리직이 있을 뿐이다. 교감은 사실상 업무를 총괄하여 각 부서의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지만, 사실상의 결정권은 모두 교장 몫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는 교감도 관련 업무 담당자와 함께 수시로 교장실을 들락거리게 되는 것이다.
교장의 권한이 거의 무한대이어서인지 교사생활 10년쯤이면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기회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교장이 되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내가 알고 있기에) 교장이 되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교육청에 장학사로 들어가서 적어도 5년 이상 근무하고 다시 학교에 중학교 교감 정도로 내려왔다가 몇 년을 채우고 다시 교육청 장학관이 된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나 처세술에 따라 장학사-교감(중)-장학관- 교감(고)- 과장 - 교장(중, 고)의 순서를 무리 없이 거칠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여러 번의 인사이동을 겪기도 한다. 과정에 따라서는 교감을 하다가 퇴임할 수도 있고, 일찍부터 교육청에 들어가는 경우 교장을 중임까지 하면서 정년을 맞기도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장학사로 가지 않고 20-25년 이상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 일정 점수가 되면 교감, 교장 연수를 얻어서 성적 순서로 발령이 나는 경우이다. 점수를 쌓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연수 점수, 연구 점수, 벽지 점수, 근무년수 등이 포함될 것이고, 1-2점이 아니고 0.1-2 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교사로 퇴임한 사람의 넋두리이겠지만 어떤 경우든지 승진의 중심에 아이들은 없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수업과 학생 지도에는 등한시하면서 오직 위로만 쳐다보며 점수에 목을 매는 경우를 숱하게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작 교감, 교장이 되었을 때이다. 내가 약 37년의 교사생활 중에 만나본(학교에서는 주로 '모신'으로 표현한다.) 교감, 교장 중에 진정으로 존경한다고 느낀 분은 2-3명도 채 되지 않았다.(교장만 15명 정도 중에서) 당연히 나름대로 정의파인 나에게는 너무도 불합리한 점이 많았고, 그분들의 무책임, 무관심, 고집불통, 비합리성 등과 부딪히면서 혼자서 또는 동료들과 속앓이를 하거나, 체념하거나, 무기력해져서 교사가 된 것을 원망스럽게 느낀 적도 적지 않았다. 전체를 책임진다는 일, 그리고 결정해야 된다는 일의 무거움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교장 승진의 구조나 그로 인해서 고착된 상명하복식의 관료적 조직문화가 조그마한 조직 내의 개혁도 용인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한때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자원한 담임 직도 배제당하기 일쑤였고(주요 부장직은 말할 것도 없고), 입바른 교사를 배제하려 비상식적인 인사 이동으로 예기치 않은 전보를 당하기도 했으며, 노조 활동을 한다는 구실과 불법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의심된다고 연가나 반가를 거부당하는 등의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학교장이 그렇게 권한이 세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교장 하기도 벅차다는 얘기에도 수긍이 간다. 학부모 민원과 학생들의 자의식과 무한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찾은 그 자리가 결코 편안하지 않으리라 예상이 된다. 문제는 교장이라는 한 사람의 자격도 그렇거니와 수십 년간 고착된 승진 문화가 이를 더욱 공고하게 세습되었을 것이다.
학교장도 학교 구성원이 선출하면 좋겠다.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방법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승진을 준비한 사람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연차적으로, 점진적으로 그 비율을 조금씩 낮추고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야 한다. 교장공모제로 평교사가 교장이 되는 길도 있고, 교장의 권한을 제어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도 있다. 하지만 공모제는 그 비율이 극히 미미하며 학교 문화로 볼 때 평교사가 되기 어려우며, 학운위는 학교운영 책임의 면죄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까 점진적인 개혁이라는 흉내만 내다가 20년이 흐른 셈이다. 교감이라도 교무 회의에서 교황식 선출식으로 뽑으면 안 될까? 교감 선출이 정착되면 교장 선출도 가능할 것이다. 교감, 교장이 임기를 마치면 평교사가 되는 방식도 함께 하고...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을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