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 사회

by 마라곤

우리는 상대평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알고 있기로는 굳이 말하자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두 가지 평가뿐인데, 절대평가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칭찬 삼아 'A'도 잘했고, 'B'도 잘했다는 식의 격려 차원에서나 하던 것이고 원래 사회는 다 그렇게 상대 평가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모든 게임이나 운동 경기 즉 2사람 이상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승자를 가리게 될 때부터가 상대평가인 셈이다. 두 사람 중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이 이기니까 아무리 두 사람 다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패자는 생기게 마련이다. 상대 평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상 모든 대회나 경주에 순서대로 등수가 매겨지는데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마치 우열의 순서가 있는 것처럼 죄다 등수를 매기는 것에 익숙해 있다. 아무리 잘해도 다른 어떤 대상에게 뒤처지면 그 간격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고 꼴찌가 존재하게 된다. 꼴찌는 아무리 잘해도 꼴찌인 것이다. 그것이 그 순간에 그치고 모든 것이 경쟁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순간의 아쉬움이 순간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지만 문제는 꼴찌는 또는 모든 등위는 그 사람의 존재 가치가 되어 버린다.


상대 평가의 저주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나 직장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교묘하게 작용한다. 모두가 공정한 기회로 배우는 학교에서 소위 수준별로 학습능력을 높인다는 구실로 아이들을 우수반, 열등반으로 나누어서 어릴 때부터 열패감을 안겨주고 있다. - 우열반을 나누는 기준은 당연히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등수이다. 게다가 모든 학교 성적은 등급별로 표시되며, 우리가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9등급 등급제이다. (등급제는 범위를 넓힌 상대평가이다.) 대학 입시의 경우는 거기서 끝나지 않으며, 대학들은 모든 지원자의 지원 성적을 등수로 환산한 점수를 입학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학이 수능 성적을 선호하는 이유는 모든 지원자의 성적을 특정 기준에 따라 순서대로 등수를 매기기 쉬운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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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모든 경쟁은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상대 평가가 일반화되어 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도 그 필요한 인원만큼 선발하니 수능 등급제와 다르지 않으며, 사업 시행을 위한 입찰제도 그렇고, 아파트 청약 모집할 때도 ... 아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각자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정해진 인원에 들어가야 하는 경쟁사회고,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사회이므로 굳이 상대 평가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는 어차피 경쟁이고, 전체 파이를 누가 많이 가지는가에 대한 문제이므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은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느끼는 열패감이 다른 나라보다 휠씬 심하고, 일단 경쟁에서 멀어지면 다시 회복할 기회가 많지 않으며, 사회가 다시 그들을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포용력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또 굳이 등수나 인원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 평가의 편리함으로 이를 당연하게 느끼며, 관행과 관례를 핑게삼아 사람들을 필요없이 나누는 일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 또한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학교가 사람들의 성장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학교부터 상대 평가를 절대 평가로 바꾸어야 한다.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또 학교 성적의 일부 과목부터, 수능의 선택과목부터, 그리고 바라기로는 수능 성적은 과목별로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또 특정과목은 일정 정도의 자격만 주어지면 통과하는 등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수능 시험을 없애고 학교 생활기록과 학교 성적만으로 대학을 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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