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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18. 2021

우유니 ‘게이커플’… 그들은 ‘상파울로’로 갔을까

우유니 투어 중 만났던 브라질 게이커플... “돈 벌어서 상파울로 갈거야”

한국 동성애의 현주소… 韓 연예계 통틀어 20년째 ‘홍석천’ 유일

5월 퀴어축제 두고 또다시 극우 개신교 ‘반대’ 목소리 높일 듯

브루노, 한국 오려면 차별금지법 통과 된 다음에나 오는 게 좋을 듯


여행의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어의 장벽이 한계지만 그래도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과 세상에 대한 인식 등은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다. 우유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우유니 여행 첫날 방을 함께 썼던 브라질 친구 브루노와 구스타프다. 브라질 사람이었던 그들은 꿈에도 그리는 ‘상파울로’로 떠나기 위해 열심히 호스피스 일을 한다고 했다. 그들이 상파울로로 가고 싶어했던 이유는 그들같은 게이 커플들이 많아 주변의 차별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유니 투어에서 만난 게이커플 부르노(왼쪽)와 구스타프. 그들은 돈을 벌어 상파울로로 가고싶다고 했다.

▶게이 커플과 같은 방= 우유니 사막 여행의 첫째날은 소금으로 지어진 숙소에서 잠을 자게 된다. 숙소의 바닥은 흙이 아닌 소금바닥이고, 벽은 벽돌 대신 소금돌로 세워졌다. 침대 역시 소금이다. 호기심에 바닥의 흙을 먹어봤는데 짜다. 소금이다. 고등학생 때 세계지리 시간에 ‘집을 만드는 제재는 무엇인가’라는 장이 있었다. 나무가 많은 곳에선 통나무집이, 흙이 많은 중동 지역에선 흙벽돌이, 얼음이 많은 지역에선 얼음을 잘라 집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 곳 우유니에선 사방이 모두 소금이다보니 소금으로 집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암기 위주로 배웠던 중고등학교 수업은 그 암기 덕분에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암기 위주’의 수업이 나쁘다는 주장들이 많은데 사실 최고의 학습은 외우는 것이다. 지식 없이 지혜는 쌓일 수가 없다. 

내가 탔던 우유니 투어 차량에는 드라이버(마르코)를 포함해 모두 7명이 탔다. 나는 운전석 바로 옆 조수석에 탔는데, 나는 혼자 여행을 했고 나이가 제일 많아서 아마 제일 좋은 자리를 여행사에서 배정해줬던 것으로 미뤄 짐작했다. 우유니에서 만난 대부분의 각국 여행객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중후반으로 수렴이 됐는데, 나는 꽉찬 30대 후반이었다.

첫째날 밤 3명씩 방을 사용하게 됐는데, 나는 브루노와 구스타프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말도 많고 활발했던 브루노는 내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없다’고 했다. ‘너는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곁에 있는 구스타프를 가리키며 ‘그가 내 애인’라고 했다. 30대 중반의 두 남성이 다정하게 여행을 하는 모습에 ‘게이 커플인가’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별달리 감추는 기색이 없었다.

동성결혼 합법 국가. 카톨릭 국가들 중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들이 많다.
동성결혼 금지 국가. 이슬람은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각자 살아온 얘기를 했다. 브루노는 2016년 당시 35살이고, 구스타프는 34살이었다. 브루노는 브라질 병원에서 호스피스 일을 하고 있고, 곧 그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상파울로로 가고 싶다고 했으며, 그러기 위해선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했다. 브루노는 스페인에서도 같은 일을 했었는데 스페인에 경제 위기가 닥쳤고, 스페인 일자리가 없어진 스페인 사람들이 평소엔 하지 않던 호스피스 일을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그 때문에 브라질로 다시 넘어와서 같은 일을 한다고 했다.

브루노는 동양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일자리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다. ‘홍콩은 어떠냐’, ‘싱가포르는 어떠냐’, ‘한국은 일자리가 많으냐’ 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홍콩은 땅덩이가 너무 좁고 중국에 반환이 돼 버려서 미래가 없고, 싱가포르는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라며, 한국은 좋기는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오시는 분들에 대한 처우가 여전히 나쁘다고 설명했다. 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이 별로’라고 얘기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게이는 사람 취급 받기 어려운 부류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석천’만 20년= 한국 사회에서 게이의 지위는 여전히 매우 낮다. 게이를 포함해 레즈비언·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LGBT)의 상황도 비슷하다.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홍석천이다.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기자회견이 있었던 것은 2000년이다. 홍석천은 본인이 게이라는 것을 밝힌 대가로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수개월 동안 원치 않는 ‘근신처분’을 받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여타 성적 소수자들은 한국 사회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 결과 홍석천 이외에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직접 밝힌 연예인은 20년이나 더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전무하다.

홍석천이 2000년에 연예계는 물론 한국사회에 던졌던 돌멩이의 파문은 컸다.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아닌 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으나, 인기 연예인이었던 홍석천이 게이라는 사실을 본인의 입을 통해 밝히자 방송사들은 서둘러 그를 더이상 방송에 출연치 못하게 막았다. 방송사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꼬리자르기다. 

인셉션에 출연했던 앨런 페이지는 동성애자라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문제는 홍석천 꼬리자르기가 과감하게 실천되자 그의 커밍아웃 20년 째 여전히 게이 연예인은 홍석천 한명 외에 전무하다는 데 있다. 성소수자는 과거엔 질병으로 인식되기도 했었으나, 오늘날엔 상당 수의 국가에서 그들의 혼인을 인정하고 있다. 뉴질랜드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으며 이후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남아공, 노르웨이 등 국가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고 미국도 2015년에 동성결혼 합법화 대열에 동참했다. 전세계 200개 국가 가운데 동성결혼 합법 국가는 31개국에 이른다.

▶성소수자는 자연=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일을 우리는 ‘자연(自然)’이라 부른다. ‘스스로 그런 것’은 자연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 의미다. 동성애의 역사는 상상이상으로 길다. 기록 문헌이 남아있는 과거사를 돌이켜보면 동성애가 없었던 시기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은 오히려 산업화 이후다.

예컨대 기원전 2400년경 고대 이집트의 5대 왕조 시대에 지어진 한 무덤에서는 두 남성의 성적 행위가 표현되어 있는 그림이 발견됐고,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전승 이야기인 ‘네페르카레 왕과 사세넷 장군’도 파라오와 장군 사이의 동성애 관계가 중심 이야기를 이룬다. 아시리아에서는 동성애가 보편적이었다. 또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인과 소년 간의 동성애, 즉 ‘그리스식 동성애’(Greek love)가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동성애를 다룬다. 

‘정신적 사랑’을 지칭하는 ‘플라토닉 러브’ 역시 오늘날에는 동성애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그리스의 당시 분위기 등을 고려해 대철학자 플라톤과 소년 사이의 사랑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각에선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성(性)이 아닌 쾌락만을 위한 성이야말로 진정한 성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왕으로 불리는 미셸 푸코가 동성애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그 자신 역시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계보학’으로도 유명한데 오늘날의 동성애가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가는 방식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가 저술한 가장 유명한 저서 ‘성의 역사’는 사실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그치지 않고 인류 역사와 함께 했었던 지향이란 점을 입증하는 문헌이다. 나는 ‘성의 역사’라고 쓰고 ‘동성애의 역사’라고 읽는다.

▶韓, 차별금지법= 한국 동성애의 현주소는 해마다 열리는 ‘퀴어축제’ 때 고스란히 드러난다. 극우 개신교 집단이 ‘안 볼 권리’를 주장하면서 퀴어축제가 열리는 것에 대해 반대집회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난스럽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독교 집단들은 성소수자들이 퀴어축제를 열면 나라가 망한다고 홍보한다. 인류 역사상 단 한순간도 동성애가 없었던 적이 없을진데 심지어, 개신교의 본류인 가톨릭 국가들마저 오늘날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고 있는 마당에도 말이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이 향상 되는지 아닌지를 상징할 사건은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처음으로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이 상정돼 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2017년 한국 정부에 성별과 종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안을 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소위 극우 개신교가 극렬 반발하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문제는 한줌에 불과한 극우 개신교 집단들이 국회에 가하는 테러가 상상이상이기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국회 특정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방해하고,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문자 테러도 가한다.

우유니 사막 투어에서 만났던 브루노와 구스타프가 만약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서 오게 된다면 적어도 차별금지법 정도는 통과된 다음에 오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날이다. 한국에선 여전히 성소수자들이 살기엔 녹록치 않은 국가니 말이다.

▶유명인 가운데 동성애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루이 13세 ▷목종(고려의 왕)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차이코프스키 ▷프리드리히 대왕 ▷플라톤 ▷미켈란젤로 ▷홍석천 ▷닐 패트릭 해리스(미국 배우) ▷미츠야 유지 ▷브라이언 싱어 ▷브라이언 오서(김연아 前 코치) ▷앤디 워홀 ▷아르튀르 랭보(시인) ▷앤드류 스콧: 영국의 배우. 《셜록》에서 짐 모리어티 역으로 출연. ▷앨런 튜링(영국의 수학자이자 과학자) ▷엘튼 존(영국 가수) ▷올리버 색스 ▷조지 마이클: 영국의 가수 ▷케빈 스페이시(미국 배우) ▷팀 쿡(애플 CEO)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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