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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19. 2021

다시 남미라면 반드시 ‘아타카마’

볼리비아-칠레 국경서 보낸 혹한 3시간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천국의 시간’

모두 1층집에 시골풍경 물씬... 여행자 도시

구(舊) 볼리비아 땅 아타카마

볼리비아 입장에선 통탄의 안토파가스타 지역


어느 여행이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날씨다. 낮이 18시간이나 계속됐던 몽골이나, 너무 습해 숨이 막혔던 상해·도쿄는 물론이고, 너무나 추웠던 우유니의 이틀째 밤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외출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여행인 탓에 여행객들은 원컨 원치 않건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내게 특히 아타카마(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란 동네가 따뜻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해발 4000미터 혹한의 우유니 고원에서 벗어나 칠레 국경을 넘어 당도한 아타카마는 이래도 되냐 싶을 정도로 따뜻했다. 모든 건물이 1층에 흙벽돌로 만들어진 아타카마는 말 그대로 정겨운 여행자들의 도시였다. 그래서 두번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남미건만 그래도 꼭 다시 가야한다면 아타카마에는 반드시 다시 들르고 싶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이민국 건물. 실내엔 대기 공간이 없었다. 오들오들 밖에서 3시간을 떨었다.

▶혹한 속 세 시간... 볼-칠 국경= 봄은 따뜻하고 가을은 시원하다. 이는 주관적 진실이다. 사실 봄과 가을의 기온을 비교하면 대략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봄이 따뜻한 것은 직전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이고, 가을이 시원한 이유는 것은 직전 계절이 뜨거운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추운 계절 다음엔 따뜻한 계절이 오고, 더운 계절 다음은 시원한 계절이 온다. 객관적 진실은 봄-가을의 기온이 비슷하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관적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봄이 따뜻하고, 가을은 시원하다고 믿는다. 천동설이 상식이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해가 뜬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상의 모순이다.

다시 남미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아타카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우유니에서 시작한 2박3일 우유니 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다. 문제는 추위였다. 사흘 째 되던날 나를 볼리비아-칠레 국경 검문소에 내려준 나의 차량은 일찌감치 떠나버렸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국경 지역에 홀로 내버려지듯 방치된 나는 ‘차가 올 거야’라는 말만 남긴채 떠나버린 가이드의 말만을 믿은 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세시간을 버텼다. 혹여라도 나를 찾을 버스가 나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멀리 가지도 못한 채 허물어져 가는 볼리비아측 국경 검문소 밖에서 나는 혹한을 견뎠다. 당시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코끝은 빨갛고 며칠째 씻지 못해 머리는 엉망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동냥을 해도 이상함이 없을만큼 남루했다.

혹한의 볼리비아 이민국 앞 풍경. 안데스 산맥은 춥고 험했다.

나를 태우러 온 버스는 대략 200명 가량의 관광객들이 모두 칠레행 버스를 타고 떠난 뒤에야 나타났다. 나보다 국경 검문소에 늦게 도착했지만 나보다 일찍 칠레로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거의 마지막 사람 중 하나였다. ‘차가 올 거야’라는 가이드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뺐다. 세시간이나 그 추운 곳에서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마침내 내 이름을 부르는 가이드가 나타났고, 나는 짐을 버스에 실었다. 버스는 따뜻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버스가 볼-칠 국경에서 아타카마까지 나를 태워다줬던 그 버스다.

버스 밖 풍경은 생경했다. 아주 멀리 서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국경에서 벗어난 버스는 아타카마까지 거의 20킬로미터 정도를 쭉 뻗어있는 직선도로를 활공하듯 내려왔는데, 도로엔 차량 한대 없이 말끔했다. 직전까지 비포장 도로로만 사흘을 달렸던 볼리비아 지역과는 확연히 달랐다. 도로 포장은 훌륭했다. 칠레가 남미 3대 부국이란 사실을 다시 떠올랐다. 칠레에 들어서자 드디어 통신도 가능해졌다. 

11통 가량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는데,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였다. ‘아들 잘 살아있어요!’라는 대답 하자 아버지는 그제야 안 도하 셔던 기억이 난다. 아타카마에 들어가기 직전 간단한 여권 검사가 있었다. 이후 나는 지금도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아타카마에 들어갔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버스. 볼리비아를 떠나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로 가고 있다.

▶이 곳이 천국인가= 어디를 가야할지 정해진 바는 없었다. 방금까지 입었던 한겨울 옷이 덥게 느껴졌다. 아타카마의 해발 고도는 약2400미터 가량인데, 볼-칠 국경 지역의 고도가 4000미터 가량임을 고려하면 한참이나 따뜻해졌음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바로는 대기는 100미터가 낮아질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대략 볼-칠 국경의 기온과 비교하면 약 16도나 높아지지 않았을까 한다.

두꺼운 잠바를 벗어 짐 가방에 넣고나니 주변이 보인다. 분수가 있는 원형 광장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은 흙장난을 하고, 일부 시민들은 전통 악기로 연주를 하며 호객했다. 거리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돈을 받았다. 절반 가량은 현지 주민으로 보였고 절반 가량은 여행객들로 보였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일부 사람들은 스노우보드를 차에 싣고 어디론가로 떠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샌드보드를 탈 수 있는 액티비티를 위해 교외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아름다웠다. 혹한의 도시에서 빠져나와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틀간의 혹한기 훈련을 보낸 내게 아타카마는 모든 것이 완벽한 동네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하도 많이 봐서인지 동네 꼬마들도 여행객 중 한명이 내게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무관심에 다시한번 감사했다. 비둘기는 한가롭게 광장에서 모이를 주워먹다 사람이 오면 피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도보로 1시간이면 동네의 모든 곳을 한번씩 다 둘러볼 수 있을만큼 작은 마을이다. 모든 집들은 1층짜리 집이었고, 집을 만든 소재는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었다. 숙소는 두집 건너 한집 꼴이었다. 날씨는 온화하고 때마침 하늘은 햇빛이 화창했다. 이틀간 버텼던 혹한의 시기가 까마득히 먼 고대의 일처럼 느껴졌다. 아타카마는 그래서 내게 ‘따뜻함’, ‘평화로움’, ‘멍때림’과 함께 평화의 도시로 기억돼 있다.

아타카마 인근 달의 계곡. 실제로 보면 '와 대단하다. 내가 이것을 보려고 태어났구나'는 생각은 별로 안들고 그냥 그렇다.

▶남들 다 가는 ‘달의 계곡’과 통탄의 안토파가스타= 한겨울 혹한에서 따뜻한 봄까지 불과 2시간만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멍때림을 30여분간 한 뒤 정신을 차렸다. 당일 묵을 숙소를 정했다. 나스카 지상문양과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을 본 뒤여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여행사에 들어가봤더니 ‘기가막힌 관광지다. 여기 안가면 후회한다. 한국인들 3명이 이미 예약했다’는 호객 행위에 이끌려 달의 계곡 여행 코스를 예약했다. 저녁께엔 별달리 할 일도 없으니.

남들 다 가간다는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도 그래서 갔다. 아타카마에서 약 20분가량 차를 타고 이동했다. 마션 촬영지로도 유명한 그곳이었다. 달의 계곡이란 명칭은 달의 표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그곳의 지형은 매우 험했다. 풍화 작용이 강하게 일어나기 위해선 비가 내리고 비 덕분에 살게된 식생과 하천이 다시 풍화를 가속시키게 되는데, 그곳 지형은 아주 험했다. 달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 역시 비는 물론 바람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달의 계곡은 비가 없어서 오랜 시간 동은 그렇게 험한 채인 것이다.

사실 아타카마 지역은 볼리비아 입장에선 통한의 지역이다. 아타카마는 칠레의 최북단 안토파가스타 주의 소도시인데, 태평양 전쟁에 진 탓에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칠레에 뺐겨버린 바로 그 지역이다. 이 곳을 뺏긴 볼리비아는 부득불 내륙국가가 돼버렸고, 그 때문에 남미 최빈국 으로 전락했다.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곳곳이 풍요로운 광산지대인데 과거엔 질산염을 만드는 재료인 초산 광산이 흥했고, 현재는 가격이 폭등중인 구리 광산이 많은 곳이다. 이곳 구리 광산이 정말 매력적인 것은 노천 광산이란 점이다. 세계 최대의 구리 매장 지역은 칼라마 북부 추키카마타 광산인데 이곳 구리는 흙을 퍼 담으면 그것이 바로 구리광석이 된다.

설핏 둘러만 봐도 가난이 눈으로 느껴지는 볼리비아를 벗어나 깔끔하게 잘 정비된 국가 칠레를 들어서니 그 격차는 확연히 눈에 띄었다. 특히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사는 옛 볼리비아 국민들은 해당 지역을 볼리비아가 다시 차지하는 것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남미 최빈국 볼리비아의 영토로 편입되는 것이 본인들에게 별달리 이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칠레와 치렀던 태평양 전쟁 이외에도 차코전쟁 등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독립 당시 영토의 3분의 1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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