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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20. 2021

남미=범죄?… 그래도 갈 사람들은 간다

중·남미는 전세계 최고의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륙

여기저기서 들리는 남미에서 털린 이야기들 부지기수

그래도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여행갈 사람들은 다시 갈 전망

여행지서 당한 범죄는 ‘멘붕’, ‘정신이탈’, ‘자학’으로 이어짐

최악의 범죄 대응 태도는 친구를 향해 ‘너 때문’이라는 비난

색이 진할 수록 범죄가 많은 국가다. 남미 대륙 전체가 벌겋다. 베네수엘라는 최악이다. 코로나19 이후엔 브라질과 페루의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 강도사례 1

“휴대폰을 보면서 길거리를 걷지 마세요. 강도가 총들고 휴대폰 내놓으라고 할 수 있어요”

페루 리마의 한인 민박집에서 일하던 한국 청년은 2016년 7월 리마 도착 첫날 내게 조언했다. 나는 “최근에 그렇게 당한 사람이 있었나봐요?”라고 물었고 그는 “제가 길거리에서 휴대폰 보다 아이폰을 강도 당한 당사자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어느날 저녁 8시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자전거를 탄 20대 페루 청년 한 사람이 자신의 길을 막고 서길래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손에 들려있었던 총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고 했다. 강도였다. 그 강도는 휴대폰을 턱으로 가리키며 ‘내놓으라’는 신호를 했고 민박집 청년은 끼고있던 이어폰을 벗어 공손하게 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고 했다. 강도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현장을 떠났고, 민박집 청년은 한동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워낙 매일같이 다니는 도로고 이젠 익숙해질만큼 훤히 아는 도로여서 방심했던 게 원인이었죠. 누가 총을 내게 들이밀면 그 때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인생이 끝났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돼요. 혹시라도 강도의 심기를 거스릴까봐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벗어서 휴대폰에 감아서 소중히 건넸거든요. 제발 받아달라는 마음으로...”라고 말했다.

나는 “그 총이 진짜총인지 가짜총인지 모르지 않나요?”라 물었고, 그는 “선생님이 한번 총 앞에 서 보세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보시다 인생 쫑날 수 있어요. 무조건 달라는 거 다 주게 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총·가짜총’ 질문은 바보같은 것이다. 페루는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다. 설혹 그 총이 가짜라 하더라도 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진짜·가짜를 내 몸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다. 휴대폰 값어치보단 내 목숨값이 더 크다. 나의 소멸은 우주의 소멸과 같다.

내가 묵었던 한인 민박집은 소총으로 무장한 안전요원이 지키는 섹터 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 섹터는 2미터 높이의 철책으로 일반도로와 구분돼 있었다. 민박집을 가기 위해선 밤에는 해당 집과의 전화 통화가 이뤄져야만 들어갈 수 있다. 민박집 청년이 강도를 당한 지점은 안전지대 섹터밖 불과 100미터 지점에서였다. 나는 ‘신고 했느냐’고 물어봤고, 그는 “여긴 신고해도 못잡아요. 강도를 잡을 가능성이 있어야 신고를 할텐데 뭐 그렇게 그냥 지나갔죠”라고 했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칠레에 편입돼 있다. 그런데 칠레 해안에서 이스터섬까지의 거리는 2500킬로미터다. 서울-부산 거리의 5배가 넘는 거리다.

▷ 강도사례2

“이제 막 택시에 탔는데 누가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어요. 무슨 일인지 쳐다봤는데 총으로 창문을 두드린 거였죠. 창문을 내렸더니 총을 들이밀며 돈을 달라고 해요. 지갑에 있던 돈을 죄다 꺼내서 줬어요. 그래도 안가고 있길래 왜그러나 봤더니 제가 찬 시계도 달라는 거였어요. 시계도 얼른 풀어서 줬죠”

사업 때문에 2010년대 중반께 콜롬비아를 방문했던 50대 한국인 사업가는 자신이 묵었던 호텔 바로 앞 택시에서 강도를 당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그는 “보고타가 콜롬비아의 수도에요. 제가 묵었던 숙소는 보고타에서도 가장 좋은 최상급 5성급 호텔이었어요. 택시 드라이버도 가끔 강도로 돌변한다는 얘기도 들어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탔는데 호텔 바로 앞에서 당한 것이었어요. 사업도 좋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목숨이랑 바꿀 수는 없죠. 그래서 두번다시 남미 사업은 안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택시 기사가 방어를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고, 그 사업가는 “택시 기사야 택시비만 받으면 되는 것인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겠죠. 택시 기사는 예약됐던 목적지에 저를 내려주곤 가버렸어요. 한번 그렇게 강도를 당하고 나니 콜롬비아를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비행기 일정을 당겨 한국으로 당일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어요. 남미는 두번다시 안가요”라고 말했다.

▷ 도둑사례

내가 쿠스코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사고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묵는 숙소 한군데에서 한국인 여행객들이 숙소에 맡겨놓았던 대형배낭 10여개가 도난 당한 것이다. 남미 여행을 위해 나도 들어가있었 카카오톡방은 그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도난당한 가방의 주인들은 쿠스코 경찰에 가서 피해물품 등에 대해 신고를 했지만, 카톡방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쪽으로 흘렀다. 이제 문제는 숙소 주인과 피해 여행객들 사이의 배상이었다.

한국인 피해 여행객들은 ‘숙소에 맡겨놓았던 배낭이 없어졌으니 숙소의 책임’이라고 주장했고, 숙소 주인은 ‘숙박을 끝낸 여행객들이 임시로 배낭을 맡겼고, 이를 선의로 보관해줬는데 그에 대해 배상을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맞섰다. 대부분의 숙박객들이 한국인이었던 숙소 주인 입장에서도 ‘보안이 허술한 숙소’라고 한국인들 사이에 소문 나는 것이 우려스러웠고,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려던 여행객들은 계획했던 여행을 모두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판이었으니 분위기는 사뭇 엄중했다. 해당 사안이 어떻게 종료됐는지는 명확치 않으나 민박집 주인이 소정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됐던 것 같다.

▷위험사례

내가 페루에서 겪었던 범죄 관련 가장 위험한 코스는 나스카에서 쿠스코까지 밤버스를 타고 17시간을 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나스카 지상문양은 반드시 봐야했고, 나스카에서 쿠스코까지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 구간은 페루에서 가장 무장강도들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이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왜 그렇게 무장강도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스카의 해발고도는 500미터인데, 최종 목적지인 쿠스코는 3400미터다. 대략 3000미터를 수직으로 오르는 코스가 바로 나스카-쿠스코 구간인데 그러다보니 길은 구불구불하고 버스는 속도를 낼 수가 없어 서행한다. 한밤 총을 든 남성 5~6명이면 버스 한가득 실린 50여명의 승객들의 금품을 털 수 있고, 경찰력이 대기를 하기도 어려운 오지이다보니 평균 1년에 한번꼴로 버스납치 무장강도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했다.

다행히 내가 탄 버스는 강도를 당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필 그곳을 지날 수밖에 없었던 일정을 후회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혹여라도 쿠스코에 도착할 시각까지 나로부터 연락이 없을 경우 한국 외교부에 신고를 부탁한다’면서 내 버스 티켓을 보냈던 기억도 있다. 지금에서야 희미한 ‘두려움’ 정도로 당시의 기억이 남아있으나 머나먼 남미에서 혹여 있을지 모를 무장강도의 버스납치 사건을 대비하던 나는 밤버스를 타고 잠을 자며 가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마저 느꼈다. 다음날 쿠스코에 내렸을 때 내가 버스에서 느꼈던 답답함은 강도 두려움 때문이 아닌 고산증 초기 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도둑·강도와 함께하는 여행= 여행을 하면서 3번,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2번 가량 소소한 범죄의 피해자가 됐던 나는, 범죄자들이 나를 목표로 찍는 순간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에 가까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믿는다. 가장 바보같은 일은 사고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고, 최악은 사고의 책임이 함께했던 동행자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하지말고, ‘일어날 일은 항상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 범죄에 직면한 자신을 대하는 괜찮은 태도다.

사실 남미는 한국 외교부가 모든 국가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곳이다. 현재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것이 원인이지만 내가 남미 여행을 했던 2016년에도 페루와 볼리비아는 여행주의보가 발령됐던 국가였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한국인들을 여행지 곳곳에서 만났다. 대다수 여행객들은 ‘범죄 위험 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그곳에 왔었다.

다행히 나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별다른 범죄를 겪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소문났던 라파즈와 칼라마는 요리조리 피해다녔고 힘들다는 구간은 비행기로 이동했으며, 주변인들이 전해주는 도둑이나 강도당했던 이야기들도 귀기울여 들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남미 여행에서 범죄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거의 대부분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는 여행을 충분히 긴 시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미의 범죄율은 상상 이상이다. 통상 범죄율(crime rate)은 인구 10만명당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 수를 지수로 체계화한다. 한국의 경우 범죄율은 0.6 가량으로 전세계 최저 수준이다. 수년째 이웃 일본은 한국보다 낮은 0.4 안팎의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 국가들 가운데 베네수엘라는 유가 급락으로 국가 경제가 붕괴된 이후 수년째 범죄율 최악의 국가 1위다. 베네수엘라의 범죄율이 최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범죄 가운데 살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높다는 점이다. 전세계 200개 국가 가운데 범죄율 최악 10개 국가 가운데 6개 나라가 중남미 국가다. 지도로 살펴보면 남미 전체의 색깔이 매우 짙다.

여행과 범죄의 상관 관계 계수도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멀리서봐도 눈에 잘 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현지어에 익숙치 않으며 햇빛을 피하기 위한 커다란 모자와 목에 걸린 고가의 카메라, 현지인들과 다른 피부색만으로도 손쉬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여행객들이 몰리는 터미널과 유명 관광지에선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단체 여행객은 단체기 때문에 더 방심하게 되고, 홀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역시 손쉬운 범죄 타깃이 된다.

▶‘인크레더블 인디아’= 여행을 다니면서 도둑을 맞았던 사건은 인도에서 였다. 인도 관광청이 ‘인도로 관광을 오시라’고 하기 위해 가져다 붙인 ‘인크레더블 인디아’를 내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인도’라고 해석하는 것도 인도 기차간에서 가방을 도둑맞았던 영향이 크다. 정말 그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고, 막상 도둑을 맞게 된 다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게되며, 멘붕과 자괴감 그리고 무력감이 밀려온다. 사라진 그 가방에 들어있었던 모든 것들의 가치가 엄청나게 값어치 있는 것으로 기억되고 여행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마저 밀려드는 것이 바로 여행에서의 도난 사건을 포함한 범죄다.

그 사건은 인도 우다이뿌르에서 델리까지 가는 3등 기차간에서 있었다. 인도의 기차는 연착으로 유명했는데 신기하리만치 내가 탈 기차는 정확히 정시에 도착했다. 일단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탑승 게이트가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지만 예정됐던 그 레일로 기차가 들어왔다. 문제는 새까맣게 밀려드는 현지인들 탓에 큰 배낭을 메고 들고 타기가 어려워 머리 위로 큰 배낭을 들고 간신히 열차에 올랐던 것 부터였다.

내가 앉아야 하는 자리에는 왠 인도 현지인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는데 나는 그에게 ‘여기 자리는 저의 자리인 것 같다. 비켜주시면 좋겠다’고 말을 하기 위해 가방을 잠시 내려놨는데 그 사이, 정말 그 사이, 정말 5초도 안되는 그 순간에 내가 내려놨던 그 작은 가방 소중한 내 가방이 사라졌다. 워낙 빡빡하게 밀려서 기차를 탔기 때문에 열차 차량 내는 만원 버스만큼이나 사람들이 밀집해 우왕좌왕 했었는데, 만일 그 때 일행이 한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잃어버린 가방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았다간 작은 가방을 찾으러 갔다가 큰가방을 또 도둑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다이뿌르에서 델리까지 거의 24시간을 기차를 타야 하는 시간 동안 나는 줄곧 내 자리를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었던 그 아주머니를 째려봤다. 그 아주머니의 사진도 아직 나는 가지고 있다. 인도의 그 도둑과 그 아주머니가 한패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도둑이 가져간 그 작은 가방에는 안타깝게도 그 도둑에게 필요할만한 물품들은 별로 없었다. 현금과 여권은 항상 복대에 넣고 다녔고, 그때그때 필요한 자금은 자크가 채워져 있는 상의 안주머니에 들고다녔으며, 카메라는 목에 거는 지갑에 들어있었다. 도둑놈이 훔쳐간 그 작은 가방에는 삼각대와 한글로 쓰여진 여행용 책자(100배), 그리고 내가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1권짜리 일기장만 있었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사건이지만 지금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몸의 모든 감각들이 되살아 난다. 두달간의 인도 여행을 하면서 스프링노트의 반권 가량을 빼곡히 메모했을만큼 열심히 썼던 일기장을 도둑맞은 뒤 나는 더이상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


▷한국 외교부 특별여행주의보

https://www.0404.go.kr/dev/special_issue_current.mofa

▷페루에서 강도를 당한 외국 여행객의 일화 (재밌음)

그는 범죄는 언제든 여행객들에게 일어난다고 썼다. 다만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여행했는지 아닌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본인이 여행의 전문가이든, 주변 관리를 철저히 했든안했든 관계 없다고 썼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https://www.livingthedreamrtw.com/robbed-in-peru

▷범죄율 최악 10개국 (범죄율=범죄/인구10만)

Venezuela (84.36)

Papua New Guinea (80.04)

South Africa (77.29)

Afghanistan (76.97)

Honduras (76.65)

Trinidad and Tobago (72.43)

Brazil (68.31)

Guyana (68.15)

El Salvador (67.84)

Syria (6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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