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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22. 2021

‘지옥의 푸르공’ 19시간… 심장이 터지도록 몽골 경마

간장과 반점 그리고 윈도XP 배경화면… 신비한 몽골국

짐짝처럼 구겨져탔던 ‘지옥의 푸르공’ 19시간 가장 인상적

“염소랑 같이 안 탄 것이 어디냐” 위로도

몽고간장은 마산의 몽고정이 그 유래... 실제로 몽골과 관련성 깊어

5살 꼬마애가 40킬로미터 달렸던 말경주는 최고... 하필 나담 축제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2012년 7월, 여름 휴가를 얻어 몽골로 떠났다. 칭기즈칸과 푸른 초원은 보고싶었다. 몽고반점과 몽고간장은 내가 몽골에 익숙한 이유기도 했다.

나담 축제에서 풍선 터뜨리기 중인 몽골 사람들.

과거 몽골을 부르던 한국 내 명칭은 몽고였다. 여기엔 간장을 주 매출원으로 하는 식품회사가 꽤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실제로 몽골국과의 관련성이 깊다. 고려 시대 몽골은 한반도를 정벌한 뒤 마산에 ‘몽고정(蒙古井)’을 파서 군인들 식수로 사용했는데, 그 우물맛이 뛰어나 후에 한국의 한 식품회사가 몽고정의 우물로 ‘몽고간장’을 만들었다. 실제로 마산 소재 유적 ‘몽고정’ 바로 옆에는 몽고식품 회사가 위치해있다. 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 청와대에 납품되는 간장을 ‘몽고간장’으로 바꿔 유명해졌다.

중국에서도 한동안 몽골을 몽고라고 불렀다. 이는 만리장성을 쌓아야 할만큼 강성했던 북방 이민족에 대한 원한 때문인데 중국인들은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해 몽골을 몽고라고 불렀다. 상대국을 비하키 위해 만든 용어는 바뀌는 게 맞다. 한국도 더이상은 몽골을 몽고로 부르지 않는다. 다만 간장 이름과 반점에는 여전히 몽고란 단어가 사용된다. 고유명사로 굳어진 탓이다.

▶하필 나담? 역시 나담!= 의도했던 것은 아니나 내가 몽골에 갔던 날짜와 나담 축제 일정이 겹쳤다. 나담 축제는 몽골의 가장 큰 축제인데 씨름, 활쏘기, 말타기 등 세가지가 주요 종목이다. 나담 축제는 몽골 혁명 기념일인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치러지는데 우연치 않게 내가 몽골에 도착한 다음날이 나담 축제 첫날이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는 대형 나담 축제가 열리고, 이외 지역에서도 각 동네마다 작은 나담 축제들이 열린다. 문제는 나담 축제가 열리는 탓에 내가 타려던 흡스글 가는 버스가 만석이 돼 ‘지옥의 푸르공’을 19시간이나 타야했다는 점이었다. ‘가는 날은 장날’이기 마련이다.

한국에선 푸르공(Purgon·모델명 UAZ-450)으로 더 유명한 차량 푸르공은 러시아 울랴노브스키 자동차 회사에서 1960년대부터 한해에 5만여대씩 찍어내는 차량인데 내구성이 대단하고 오프로드에서의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알려진다. 특히 전자 장비를 거의 탑재하지 않은 과거의 방식으로 만들어져 별다른 장비 없이 손으로 수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군용인 푸르공의 특장점으로도 꼽힌다.

티켓 판매원은 울란바타르에서 흡스글까지 가는 데에는 20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가는 길에 강을 만나거나 길이 좋지 않을 경우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오전 9시 흡스글로 가는 사설 푸르공 버스를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장시간 운전을 해야하기에 운전사가 2명이 타야했는데 그러면 12인승인 푸르공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은 불과 10명밖에 안된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니 운행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총 4열인 푸르공의 내부는 한 열마다 3명씩 앉을 수 있게 돼 있었는데 버스 기사가 한 열에 5명씩을 앉히는 것이다. 심지어 두 여성은 자신의 아이들까지 태웠다. 12인승 버스에 모두 23명이 탄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이 타냐. 나는 자리가 없어서 비킬 수가 없다’는 나의 항의는 마치 매번 그래왔다는 듯이 운전사의 ‘1열당 5인 착석’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승객들의 움직임 속에 묻혔다. 운전사는 ‘그래도 다같이 가야 되지 않겠냐’고 내게 얘기했고, 나는 화가난 표정으로 그렇게 지옥이 될 줄 몰랐던 그 푸르공 여행을 시작했다.

초반 2시간 가량은 그래도 포장 도로를 달렸다. 멀리 보이는 윈도우XP 바탕 화면에선 금방이라도 텔레토비들이 나올 듯 했다. 차량엔 에어컨이 없었는데 내가 앉은 좌석 밑으로 엔진의 뜨거운 열바람이 그대로 내 다리를 덥혔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몽골의 7월 열기에, 좁디좁은 푸르공에 끼어탄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다리로 불어대는 엔진의 뜨거움에다가 내 바로 앞에 앉았던 몽골 청년의 무릎이 그대로 닿아 아팠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부대끼게 될 때엔 그 스트레스가 대단하다. 말한마디 안통하는 몽골 사람들과 그 공간에 그렇게 짐짝처럼 꼬깃꼬깃해져 틀어박혀져 있으면 그 분노와 화는 대단한 것이 되기 일쑤다. 내가 아무리 엉덩이를 좌석 등받이 쪽으로 밀어붙여도 나와 마주본 채 앉아있는 몽골 청년의 무릎과 내 무릎이 정확히 맞대어졌다. 무릎팍에 가해지는 아픔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몽골에서 태어난 그 청년 무릎뼈의 굳기는 거의 강철 수준으로 단단했다. 운동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내 연약한 무릎뼈에 비하면 그랬다.

가장 왼쪽 두 중년 남녀는 푸르공에서 처음 만난 관계다. 사진 중앙 남성은 강철 무릎뼈의 소유자다. 12인승 푸르공에 23명이 탔다. 19시간 그곳은 지옥이었다.

무릎위에 올려져있는 4세 가량의 어린아이는 불편한 듯 자꾸만 몸을 뒤척였고 그때마다 이곳 저곳을 건드리고 치근댔다. 19시간의 버스를 타는 것만해도 고역인데 12인승 버스에 23명이나 끼어서 탄 상태에서, 덥고 짜증나고 게다가 잠까지 자야하는 상황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타고 가시기가 좀 힘드실 거에요”라고 얘기했던 한인 숙소의 주인분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내가 겪었던 그 상황을 ‘좀 힘들다’로 표현키엔 너무 고상하다. 그래서 난 그 때의 기억을 ‘지옥의 푸르공’이라 부른다. 너무 힘들었기에 흡스글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흙바닥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탔던 것이 흡스글->울란바타르 이동 때였는데, 다시 푸르공을 타지 않아도 되었기에 기뻤다. 그 비행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초코파이 두개를 기내식으로 받았던 것 정도다.

▶망망초원서 시동이 꺼지다= 푸르공은 귀여운 외형과는 달리 내구성이 높기로도 유명하다. 애초에 군용으로 제작됐고 중화학공업 강국인 소련의 기술이 차량에 체현 된 것이 푸르공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이 소련이고 세계 최대의 비행기 안토노프를 제작한 곳이 소련이다. 말하자면 중공업 기술만으로 치면 독일 찜쪄먹는 나라가 소련이다. 그렇게 대단한 나라 소련이 만든 차량이니 잘 만들지 않았을까했지만 잔고장이 많았다.

푸르공에 탄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잠을 자고 있던 새벽 2시께였다. 주변엔 그 어떤 불빛도 없는 까마득한 초원을 40~5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몽골말로 흘러 나오던 테이프에서의 노랫소리가 갑자기 꺼졌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무탄력으로 초원길을 달리고 있는 푸르공이 내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시동이 꺼진 것이다. 헤드라이트 역시 꺼졌다.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차량은 서서히 탄력을 잃어가면서 속도가 줄어들었다. 운전사가 뭐라고 얘기를 하는 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차량이 마침내 섰다. 차에 탔던 사람들도 모두 내렸다. 조명을 비춰가면서 차량의 엔진을 정비하던 운전사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넓디 넓은 초원에서 하릴 없이 기다렸다. 다행인 것은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또다른 차량이 우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다른 차량과 내가 탔던 차량이 끈으로 연결돼 끌어지자 마침내 내가 탔던 차량에 시동이 걸렸다. 다시 차량에 짐짝처럼 끼어끼어 탔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번의 사고는 타이어 펑크였다. 이튿날 오전 달리던 차량이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지형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운전사가 차량을 세웠다. 다행히 뒷바퀴에 난 펑크여서 차가 크게 기울진 않은 듯 했다. 다시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펑크가 난 바퀴를 재키로 들어올려 타이어를 교체했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을 실은 것이 타이어가 구멍난 주요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운전사는 ‘다시 타라’고 했다.

푸르공 가장 앞 좌석에는 입에서 술냄새가 풀풀 날 만큼 다량의 술을 마신 40대 남성이 출발 때부터 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코를 골면서 골아떨어졌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술마신 취객이 또다른 운전사였다. 19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를 가야하는 코스여서 운전사 2명이 타 번갈아가면서 차를 운전해야 하는 것이 규정인데, 술 실신에 이른 그가 운전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다행히 그 술실신의 남성은 내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대를 한번도 잡은 적이 없다.

▶심장이 터지도록 몽골말 경주= 나는 흡스글에서 나담 축제를 봤다. 몽골 씨름은 룰을 몰라서 별달리 재미가 없었다. 기대했던 것은 활쏘기였다. 영화에서 봤듯 말 등자에 다리만을 고정한 채 활로 적을 쏘아 죽이는 장면을 많이 봤던터라 막연히 몽골인들은 활쏘기를 잘 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활 쏘기는 기대 이하였다. 우리로 치면 국궁처럼 멀리 있는 것을 쏘아 과녁에 넣는 것이 목표였는데, 10점부터 1점까지 과녁 테이블의 정중앙을 쏘아 맞추는 한국인들의 양궁의 짜릿함에 익숙했던 터라 그들의 활쏘기도 별달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다.

최고 절정은 역시 말타기였다! (나는 글에 느낌표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몽골에서 본 말달리기를 기술 할 때는 느낌표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종 결승지점 인근 언덕에 올라서 말들이 달리는 것을 봤다. 대략 10킬로미터는 되는 먼 지점에서 말을 탄 사람들은 거의 점으로 보인다. 그 점들이 점점 커진다. 결승 지점이 가까울 수록 기수들은 말의 엉덩이를 고삐와 연결된 줄로 더 가열차게 내려친다. 흥분한 말들은 더 빠르게 달린다. 결승점에 가장 먼저 들어온 기수들은 손을 높이 쳐들고 본인이 1등임을 기뻐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들의 말달리기 경주다. 그들은 말에 안장도 얹지 않고 말을 탔다. 대단했다.

몽골의 말달리기 경주는 경주 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 짧게는 20킬로미터에서 길게는 40킬로미터에 이른다. 과천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경마의 길이는 길어봤자 2킬로미터에 불과하다. 40킬로미터를 거리로 따져봤다. 광화문역에서 분당의 정자역까지의 거리가 대체로 직선 거리로 27킬로미터다. 40킬로미터면 광화문역에서 거의 경기도 오산에 이르는 거리다. 그 거리를 안장도 얹지 않은 상태에서 순전히 말만을 달려 결승지점에 골인한다. ‘그렇게 달려도 말이 괜찮나요?’라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지난해 울란바타르 나담 축제에선 말 2마리가 경기 직후 심장이 터져서 죽었다. 해마다 경기에서 몇마리씩 말들이 죽는다”고 했다.

경주를 끝낸 말들을 가까이서 봤다. 말 가죽 위로 땀이 솟아 올랐다. 그 두꺼운 말가죽을 뚫고 수분이 올라왔으니, 그 가죽 밑의 상황은 어떨까. 경주 직후 기수들도 지친 기색이다. 말을 빠르게 달리기 위해선 기수들 역시 말의 등에 올라타있어선 안된다. 소위 ‘기마자세’를 유지하며 말이 달리는 움직임에 최대한 협조해야 말이 빠르게 뛸 수 있다. 몽골의 기수들이 잡은 고삐의 줄은 유난히 긴데 그 줄로 말의 엉덩이를 내리치면 말은 더 빨리 뛴다. 지구력이 대단한 몽골말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이 유럽대륙을 정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울란바타르에서 흡스글까지 19시간. 푸르공은 타지 마세요.

▷푸르공은 이런차

https://en.wikipedia.org/wiki/UAZ-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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