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밥 Apr 23. 2021

몽골 초원을 자전거로?… 새까만 일본인 스즈키

몽골 흡스글 주도 므릉에서 만난 유이치 스즈키

일본판 ‘자기 주도 여행’… 모든 것은 내가 직접

어디를 갔다왔다 보다 어떻게 다녔느냐가 중요

몽골에서 셌을 밤 별 수만큼 스즈키 인생 밝았으면


십수년간 여행 중 만났던 사람 가운데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사람은 유이치 스즈키다. 27살의 청년이자 일본에서 목수로 일을했다던 그는 ‘이대로 죽는 게 아까워서’ 몽골행을 택했다고 했다. 굳이 힘든 길을, 굳이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별달리 어렵다는 말도 안하던 과묵한 20대 일본인인 그는 참 대단해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절대 할 것 같지 않은 모험을 하는 사람 일반에 바치는 경외 비슷한 감정이 그를 떠올릴 때마다 인다.

▶‘과묵 日청년’의 고난 여행= 나 홀로 자전거 여행중인 유이치 스즈키를 만났던 것은 므릉에서였다. 므릉은 울란바타르 북서부 흡스글주의 주도다. 인구 5만명 가량의 동네다. 나는 ‘지옥의 푸르공’을 다시 타지 않기 위해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길엔 비행기를 탔다. 므릉의 한 게스트하우스(바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그는 말 수가 적었던 청년이었다. 얼굴이 워낙 까맸기에 나는 그가 일본인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저녁 식사 수요 확인을 위해 저녁을 먹을 사람 수를 체크했는데, 스즈키는 ‘나는 밥을 먹지 않는다. 대신 물을 좀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말했다. 저녁 식사 가격은 3000원 안팎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스즈키가 돈이 없어서 안먹는 것일까?’고 추측했다. 잠시후 그럴 듯 하게 차려진 식사가 나왔다. 스즈키는 자신만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그가 하는 식사 준비를 곁에서 지켜봤다.

인근 시장에서 장을 봐왔다는 스즈키는 “감자는 150원. 콩나물은 100원. 국수면은 200원. 소금은 원래가지고 다니던 것”이라 소개하면서 저녁 요리를 했다. 시꺼먼 손을 손바닥만한 작은 도마에 올려놓고 양파, 당근, 마늘을 썰었다. 씻지 않은 그의 손에선 때국물이 흘렀다. 도마는 흙바닥 위에 올려졌고, 곁에는 게스트하우스측이 제공한 물을 냄비에 끓이고 있었다. 물이 끓자 그는 소면을 넣어 삶았다. 후라이팬에 익힌 양파-당근-마늘을 익은 소면 위에 얹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간장을 뿌린 뒤 먹었다. 한국으로 치면 비빔국수 쯤이었다. ‘3000원이면 되는 식사를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먹어야 할까’ 했다.

나는 그의 요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그러면서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일본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는데 3개월동안 진행됐던 공사가 끝나고 난 뒤 몽골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몽골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 흡스글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여행을 시작하지는 20일이 지났다고 했다.

‘밥을 사먹으면 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했던 원칙이 있는데 밥은 재료를 사서 직접 해먹을 것, 잠은 반드시 야외에서 텐트를 펴고 잘 것, 숙소에서 제공되는 전기제품을 사용치 않을 것 등이다”고 했다. ‘생존 훈련 같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스즈키는 “그런 것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동안 내가 인생을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짓는 공사가 끝난 뒤 허무함도 있었고 인생이 이대로 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 하던 것을 해보고 싶었다. 죽기 전에 뭐라고 해보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식사를 마친 그는 곧 짐을 쌌다. 숙소에서는 자지 않는다는 원칙 이행을 위해 다늦은 저녁임에도 그는 그곳 숙소를 떠나 근처 야외로 나가 잠을 잘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짐을 하나하나 살폈다. 휴대폰과 GPS, 후레쉬 충전을 위해 태양광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이동형 충전기를 갖췄고, 딱딱한 바닥 위에 깔 수 있는 스티로폼 매트도 있었다. 라면박스 처럼 생긴 박스에는 먹을 음식과 식수를 가지고 다녔다. 짐들을 자전거 뒷자리에 쌓아 탄력끈으로 옭아맸다. 여름이지만 새벽이 추운 몽골의 밤을 지내기 위한 침낭도 가지고 다녔다.

‘초원에서의 혼자 밤을 보내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여우 같은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내 근처로 왔던 적이 있었는데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몽골에선 사람을 해칠 짐승은 없다”며 “도리어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몽골의 밤은 상상이상으로 어둡다. 몽골의 면적은 1억5600만ha인데 이는 한반도(2200만ha) 면적의 7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몽골의 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가 몽골이다. 부산시 인구가 330만명 가량인데 부산에 사는 사람들이 한반도의 7배 크기의 땅에 흩어져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도가도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곳이 몽골이다. 그만큼 밤은 어둡고 밤하늘은 더 밝게 빛난다.

스즈키가 몽골 극오지에서 셌던 밤하늘의 별의 수만큼, 스즈키의 낮이 더욱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끼던 한국 소주 페트병을 건넸다. “건강하게 여행하시라”

▶스즈키판 ‘자기 주도 여행’= 스즈키의 여행 방식은 새로운 것이었다. 가급적 여행에서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의 여행 말이다. 다수의 여행은 나의 발다리를 대신할 교통편을 이용해 이동하고, 음식을 만들어먹는 수고를 덜기 위해 맛집을 찾아다니며, 깔끔하고 정갈한 숙소에서 잠을 자기 위해 스마트폰 검색에 열을 낸다. 우리는(나 포함) 도시에서의 일상이 거의 또는 대체로 유지되는 여행을 선호한다.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켜지고, 버튼을 누르면 TV가 켜지며, 수화기를 들면 음식을 부를 수 있고 차편 시각을 알면 굳이 내가 걷거나 뛰지 않아도 그곳에 데려다 줄 나의 발다리가 오는 것은 도시에서의 일상과 같다. 여행에서 하나 달라지는 것은 장소 뿐이다.

스즈키의 여행이 대단해 보였던 이유는 그같은 편안-안락을 모두 거부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에는 특정 포장도로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길이 없다. ‘초원길’이라고 부르는 그 길은 멀리서 보면 푸르른 잔디밭을 차량이 별다른 장애물 없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량에 타있으면 엄청난 굴곡과 덜컹거림이 느껴진다. 길이 아닌 곳을 가서 차량이 출렁댔던 적도 많았고 비가오면 사라지는 길과 비가와서 새롭게 생긴 길이 교차한다. 때로는 차량의 절반 가까이가 물에 잠긴 채 건너야 하는 강을 건너야 하고, 협곡을 지날 때엔 다른 차량들이 파놓은 바퀴자국에 내가 탄 차량이 빠질 때도 있다. 그런 길을 오직 자전거만을 타고 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여행의 방식은 내게 대단한 것이었다. 아끼던 한국 소주 페트 한병을 그에게 덥석 건넸던 것 역시 그의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는 절대로 그같은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낼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기도 했다.

울란바타르에서 흡스글 가는 길. 푸르공은 타지 마세요. 탑승시 지옥문 개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