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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15. 2021

우유니, 또한번의 ‘혹한기 훈련’

너무너무 추웠던 우유니... 허허벌판 숙소엔 난방시설조차 없어

유난히 더웠던 2016년 韓 여름… 볼리비아서 시원하게 보냈던 이야기

태평양 전쟁으로 쪼그라든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엔 해군 길러

구리 가격 천정부지 오를 전망... 안토파가스타 지역 잃은 볼리비아 ‘배아파’



페루 쿠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 수크레로 이동했다.
수크레 공항 인근에서 찍은 수크레 사진. 6각형의 정방형 도시구획이 인상적이다.
볼리비아에서 탔던 택시. 운전석 좌우가 바뀌어있다.
우유니 투어 가이드는 만능이다. 운전, 차량 정비, 식사대접, 짐옮기기, 관광 가이드 등
우유니
우유니 마을
우유니 이틀째 묵었던 숙소. 며칠 전 내렸던 눈은 녹지 않았다. 그날은 내게 혹한기 훈련으로 기억돼 있다.

“으~~ 추워. 왜 이 동네엔 난로조차 없나”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지상 ‘최대의 거울’이자 아름답기로 유명한 우유니 사막은 그러나 내겐 또한번의 혹한기 훈련 정도로 기억돼 있다. 한국은 유난히 더웠던 2016년 7월, 지구 반대편이자 해발 3000미터 고원 우유니에서 보낸 나의 이틀밤은 고역이었다. 물론 자진해서 갔기에 즐거운 기억이다. 대부분의 힘든 여행지들이 그렇듯 누가 시켰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다. 남미 여행 전 78kg이었던 내 몸무게는 여행 후 70kg으로 줄었다. 불과 2주만이다. 폭삭 쪼그라든 내 몸은 직장 다니며 남미 여행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주는 또하나의 증거다.

이런 멋진 사진은 다음 생애에 찍기로 했다.

▶영하 20도.. 난방시설 전무= 우유니 투어는 2박3일이 걸린다. 볼리비아의 도시 우유니에서 6인승 오프로드 전용 짚차를 타고 우유니 사막을 거쳐 칠레의 도시 아타카마까지 가는 것이 투어의 기본 골격이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7월이 혹한기다. 게다가 우유니 사막은 안데스 산맥 위 해발 3000미터 지점에 형성된 대규모 소금 사막이다. 한낮의 기온은 5도 안팎에 머물렀고 한밤의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춥다’는 조언들이 어렴풋이 있었으나, 유달리 더웠던 2016년의 한국에선 사실 쉽게 상상키 어려웠던 추위를 우유니 사막에서 만났었다.

기억에 남는 ‘혹한’의 기억은 우유니 사막 투어 이틀째 밤이었다. 하루종일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 해가 질 무렵 흙벽돌로 지어진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숙소 인근 언덕엔 며칠 전 내렸던 눈이 녹지도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5~6살 쯤 되는 아이들은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눈밭을 슬리퍼만 신고 돌아다녔다. ‘이정도 추위는 춥지도 않은 것인가?’ 기온은 이미 0도 가까이로 떨어졌고,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짐을 차량에서 내려 숙소로 옮겼다.

숙소는 대략 20평 남짓의 방이었는데 바닥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고, 그곳에 10개 가량의 침대들이 놓여져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침대였는데 나는 ‘여기 너무 좁은 것 아니냐. 10명이나 이곳에 자야 하는데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아마 밤이 되면 여러명이 함께 자는 것에 대해 고맙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벽쪽에 붙어있는 침대를 하나 골라 짐을 부려 놓고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당일 그 곳 숙소에 묵었던 관광객들은 대략 30명 안팎이나 됐는데 차량별·여행사별로 구분이 됐다. 대신 식사는 모두 같은 것을 먹었다.

바깥 구경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이미 해가 지고 주변은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다. 하늘의 별은 매우 추워보였다. 별들이 반짝이는 것 역시 추워서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30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온수 수도꼭지는 2개 뿐이었다. 개인당 허용된 샤워 시간은 3분이었다. 샤워를 마친 사람들은 커다란 등산화를 구겨 신고 팬티만 입은채로 오들오들 떨면서 짐이 있는 방까지 걸어들어왔다. 샤워 줄은 길었다. ‘뭘 저렇게까지 힘들게 샤워를 하나’ 싶은 생각에 나는 샤워를 하지 않았다.

취침 시각은 밤 10시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이드는 ‘많이 추울테니 가지고 있는 옷을 가급적 다 입고 주무시라’고 조언했다. 20평이나 되는 방에 불빛은 가운데 백열등 전구 하나뿐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관광객들이 어수선하게, 부산하게 움직이다 밤 10시30분께 모두 누웠다. 대부분 침낭 속으로 몸을 단단히 뉘었다. 나 역시 커다란 침낭으로 파고드렁ㅆ다.

문제는 새벽이었다. 그래도 취침전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데워졌던 숙소 방안 공기는 빠르게 식었다. 안데스 산맥 정상의 ‘우유니 혹한’이었다. 새벽2시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이빨이 딱딱였다. 숨을 쉬기 위해 입만 내놓았던 침낭 입 주위는 내뿜은 입김이 그대로 물로 변해 축축하게 젖었고, 저 침낭 가장 깊숙한 곳인 발가락 부위는 양말을 두개나 신었음에도 얼음장 처럼 차가웠다. 주변은 고요했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전기가 부족했던 것인지 백열전구마저 꺼버린 그곳은 사람들의 숨쉬는 소리만 ‘쌔액쌔액’ 들렸다.

‘혹한기 훈련’이란 단어가 떠올랐던 때도 그때였다. 그래도 혹한기 훈련때엔 훈련 준비를 위해 핫팩도 준비하고 방한모자에 두툼한 양말까지 챙겼었는데, 이번 여행 중 그렇게까지 추운 구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가이드가 ‘좁은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극한직업’ 우유니 가이드= 혹한의 추위에 자다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왔다. 신발을 신으려고 발을 넣었는데 땀에 젖었던 신발이 얼어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은 발 역시 신발로 밀려들어가길 거부했다. 손으로 신발을 녹여 천천히 신발을 신고 식당으로 갔더니 간밤의 추위로 떨며 잤던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간밤에 괜찮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이드들이 자는 곳을 가리키면서 ‘우리는 창문도 없는 곳에서 잤다’고 말하며 ‘노 프라블럼’을 연신 말했다. 가이드들이 잤다고 하는 곳을 보니 침대도 없이 바닥에서 잠을 잤고,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아직도 자고 있던 한 가이드는 한기 때문에 내뱉는 즉시 얼어버림을 반복하는 입김을 내뿜으며 아직도 자고 있었다. ‘돈 벌기 참 힘들구나’

짚차 드라이버를 겸하고 있는 가이드들은 바빴다. 관광객들이 사고가 나지 않는지 체크를 해야했고, 매일 아침엔 싣고온 기름통을 꺼내 차량의 연료탱크에 기름을 채워야 했으며, 차량 지붕에 올라가 관광객들의 짐을 차량위에 단단히 고정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다. 관광객들이 혹여라도 불만사항이 생길까봐 항상 친절하게 주변 관광지를 설명해줬고 그렇게 2박3일을 보낸 다음엔 다시 우유니로 돌아가 같은 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가이드들은 차량 정비도 해야 한다. 내가 탔던 차량은 두번의 정비를 필요로 했는데, 한번은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가 났을 때였고 또한번은 냉각수 부족 때문에 엔진이 멈추는 사고도 있었다. 우유니 투어의 첫째날은 과도하게 평평한 사막을 달리는 것이 여행의 대부분이지만, 이틀째 날과 사흘째 날은 거의 대부분이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한다. 비포장 도로 일부 구간은 어른 머리만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도로를 가는 일정인데, 그러다 보면 타이어 펑크는 사실상 일상에 가까웠다. 바위길과 파여진 도로를 달리다보면 차량 하체에 바위가 튀는 일이 다반사다.

내가 탔던 차량의 가이드는 28살의 안드레아스였는데 그의 월급은 50만원 가량이었다. 그가 타이어를 교체한 뒤 ‘힘들지 않냐’고 묻자 “자주 있는 일이다. 이삼일에 한번씩은 타이어를 이렇게 교체한다”고 말했다. ‘교체 타이어가 없는데 또 타이어를 갈아야 할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는데, 그는 “함께 다니는 투어 차량들끼리 교환하기도 한다”면서 ‘노 프라블럼‘이라고 했다.

▶남미 최빈국 볼리비아= 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로 처음 들어간 곳은 수크레였다. 이 구간을 비행기로 이동키로 했던 것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버스로 이동할 경우 코스코에서 수크레까지는 대략 2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야했는데, 대부분의 버스는 라파즈를 경유하거나 라파즈 행 버스였다. 남미에서 만났던 한국인들로부터 들었던 라파즈에 대한 얘기의 8할은 강도 만난 이야기, 도둑 당한 이야기였다. 볼리비아의 사실상의 수도(행정수도는 수크레)인 라파즈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별칭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동네라는 오명도 함께 가지고 있다.

수크레 공항에서 수크레 시로 이동하기 위해 탔던 택시는 잊기 어려운 차량이었다. 대략 30분 가량을 택시를 타고 갔는데 그 즉시 폐차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낡은 차량이었다. 그 택시는 차량 우측 전면에 운전석이 설치된 차량을 좌측으로 옮긴 것이었는데, 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는지 달릴 수록 무너질 것 같은 차량이었다. 공항에서 시로 들어가는 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탄 택시는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자 이미 제 성능을 한참이나 벗어난 듯 폭발할 것처럼 굉음을 냈다.

택시 운전사는 대략 60대로 보였는데 내가하는 영어를 알아듣는지 못알아듣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문제 없다. 그 호텔을 내가 안다’고 했지만 차량 상태나 그의 어눌한 말투 모두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볼리비아가 남미 최빈국이란 사실은 후에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 알게됐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그날 탔던 그 택시였다.

볼리비아가 남미 최빈국이 된 직접적인 이유는 태평양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1879년부터 4년 동안 볼리비아는 페루와 동맹을 맺고 칠레와 태평양 전쟁을 치렀다. 핵심 원인은 안토파가스타 영토 때문이었다. 원래 볼리비아 영토였던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볼리비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지역적 요충지였는데 이 곳은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이 있다.

문제는 자원이 부족한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 지역 개발 초기 단계에서 부유한 국가인 칠레에 요청해 이 지역을 개발했는데, 이 때문에 지역 경제권 대부분을 칠레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이후 볼리비아가 1876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고 볼리비아 정부가 안토파가스타 지역 기업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고, 이에 반발한 칠레인들이 세금납부를 거부하자 볼리비아 정부는 관련 자산 일체를 국유화 해버렸다.

‘싸움 잘하는 나라’이자 남미의 3대 부국 칠레는 명성에 걸맞게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볼리비아는 형제국인 페루와 함께 칠레를 상대로 싸웠으나 결국 패했다. 이후 볼리비아는 차코 전쟁(파라과이) 등 수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패해 독립 당시보다 40% 가량이나 국토 면적이 줄어들었다. 볼리비아의 인구 역시 1100만명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통탄의 안토파가스타=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자원들이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는 지역이다. 토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주는 물질 구아노와 화학 공업에 필수 불가결한 초산이 이곳에선 거의 노천으로 널려있다. 오늘날에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구리의 중요성이 더 커지면서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구리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오늘날 볼리비아 정부로선 땅을 치며 후회할 사건이 바로 과거 태평양 전쟁이었던 셈이다.

2021년 4월 골드만삭스는 현재 1톤당 9000달러 안팎인 구리 가격이 오는 2025년에는 1톤당 1만50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 예상했다. 구리가격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이유는 에너지 저장을 위해 필요한 배터리 사용이 늘어날 것이고,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전세계 주요국들이 빠르게 이행할 경우 전도율과 반응성이 낮은 구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다. 구리 수요가 증가하고 구리 가격이 오르면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안토파가스타는 주도(州都)이기도 한데 이 곳의 1인당 평균 소득은 3만달러(2018년)를 넘는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안토파가스타 지역 구리 광산은 세계 구리 생산의 34%, 칠레 수출의 60%를 차지한다. 한국이 반도체를 팔아 먹고 산다면, 칠레는 구리를 팔아서 먹고 사는 국가다. 대략 100여년전 볼리비아를 상대로 치렀던 전쟁으로 얻었던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이 오늘날 칠레가 남미에서 잘사는 나라로 꼽히는 이유중 하나가 된 셈이다. 같은 이유로 볼리비아 입장에선 속이 무지하게 쓰릴 수밖에 없는 지역이 바로 안토파가스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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