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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Jun 16. 2021

식용은 안되고 안락사는 된다?



프렌즈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가 2021년 6월 10일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다룬 다큐 ‘누렁이’를 유튜브에 무료료 공개했다. 시청 결과 무료여야만 할 듯한 완성도다.

파란눈 케빈 브라이트의 ‘오만’… ‘결정할 때’는 우리가 정한다

다큐 中 비중큰 인물 박소연, 기백마리 구조견 안락사 시켜

식용은 안되고 안락사는 괜찮은가… 어차피 사양길 개고기 산업

케빈 브라이트, 2년밖에 안된 '케어 안락사' 사태에 눈감아


지난 2013년 터키의 지중해 도시 안탈리아에서 만난 네팔 출신 여행사 직원 하산은 내게 ‘뭐좀 물어봐도 되느냐. 예민한 질문인데 괜찮냐’고 했다. 나는 ‘괜찮다. 한국에 대해 무엇이든 물어보시라’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너도 먹냐?”고 물었고, 나는 “나도 먹기는 하는데 몇년쯤 된 것 같다. 나는 즐겨 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답했다.


무슬림이었던 하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른일에 집중하려는 듯 했다. 나는 차마 궁금해 했을법한 개고기가 얼마나 맛이 있는지, 육질이 훌륭해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사실 개고기는 먹어도 안먹어도 되는 음식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어디 한둘인가.


10년 가까이 된 하산의 질문이 2021년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된 이유는 프렌즈 제작자로 유명한 케빈 브라이트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누렁이(Nureongi)’를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들어가 ‘누렁이’를 검색어로 치면 무료로 시청이 가능하다. 제작기간이 4년이나 걸린 이 다큐는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확인된 것만 200건이 넘는 ‘누렁이’들을 안락사시켜 폐기처분한 동물단체 케어의 박소연 전 대표를 ‘동물보호 영웅’으로 등장시킨 점이다.


‘안락사 박소연’을 다큐에 출연시킨 탓에 케빈 브라이트는 ‘먹는 것은 안되고 안락사는 괜찮냐’는 질문부터 답변을 해야할 옹색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양길 개고기 산업… 놔둬도 고사= 개고기 떡밥은 사실 효용이 종료된 이슈다. 한때 한해 1000만마리가 넘게 도축되던 개고기 소비량은 최근들어선 150만~200만마리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개고기 산업 쇠퇴 주 원인은 ▷다른 먹을거리 풍부 ▷견주 증가 ▷혐오 음식 인식 등이다. 개고기를 주로 소비하는 연령층이 50대 이상 고연령층이란 점에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가 바로 ‘개고기 소비’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동물보호단체의 문제제기나 ‘누렁이’ 같은 비판적 해외시각이 아니고선 찾아보기 힘들게 된, 사멸 이슈 중 하나가 개고기 문제다.


개고기 주 소비층의 연령이 높은 것은 과거 문화가 반영된 탓이 크다. 그들은 개고기가 영양적 측면에서 효용성이 높다고 믿고 있고, 마을 축제용으로 개를 잡아 고기를 돌리던 문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젊은층에선 개고기를 먹지 않는 비율이 높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 사이의 문화는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이미 빠른 속도로 소비량이 줄어든 개고기 소비량은 개를 기르는 인원이 한국 인구 3명중 한명인 1500만명에 이르면서 당초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줄고 있다. 가만히 놔둬도 소멸할 것이 개고기 산업이란 얘기다.



▶밀도도 균형도 재미도↓= 다큐멘터리 자체도 크게 흥미진진하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한국말이 다소 서툰 흑발의 여성이 한국에서 온 개를 공항에서 반갑게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개고기 식용실태 인터뷰, 개고기 사업자들 인터뷰, 케어 박소연 대표 인터뷰 등인데 비교적 잔잔하다. 익히 봐왔던 장면들을 다시한번 짜맞춘 정도의 다큐멘터리다. 생각엔 한국인들에게 상영을 하기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최소한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너무 익숙한 포맷에다 어디선가 봤던듯한 정해진 영상 문법을 고스란히 차용했기 때문이다.


케빈 브라이트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문화에서 개고기 산업이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이 영화를 통해 한국 개고기 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확언컨대 이 다큐멘터리 덕분에 사멸 단계에 이르른 개고기 논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개연성은 낮아 보인다. 개 사육업자들을 인터뷰 해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충격’을 받은 것은 케빈 브라이트 본인에 국한된다고 확신한다.


▶안락사 ‘박소연’ 뜬금포=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전 대표 박소연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뜨악’했다. 다큐멘터리를 언제 제작했는지 날짜를 확인한 것도 박소연 전 대표가 등장한 장면을 본 뒤다. 확인해보니 ‘누렁이’ 제작이 시작된 것은 2017년으로 누렁이 소개엔 ‘케빈 브라이트 감독이 미국과 한국을 약 4년간 직접 오가며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고 돼 있다. 박소연이 200마리가 넘는 개와 고양이들을 안락사 시켰던 것으로 알려진 것이 2019년이었으니 박소연 전 대표를 촬영한 상영본은 2019년 이 전에 찍은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케빈 브라이트는 박소연 출연 장면을 삭제하고 누렁이를 상영했어야 맞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박소연은 ‘구조’를 명분으로 동물들을 구한 다음 그 숫자가 너무 넘치자 ‘보내주자’면서 확인된 것만 200마리가 넘는 개와 고양이를 안락사 시킨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케빈 브라이트가 한국인들의 기억력을 낮춰 평가한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영상을 수정해 유튜브에 푸는 것이 옳은 것 아니었을까. 심지어 케빈 브라이트는 2021년 6월 7일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까지 했다. 기왕 찍은 다큐고, 박소연 사태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면 최소한 박소연 영상분을 수정 또는 삭제 한 다음 상영하는 것이 맞지 않았나.


다큐 '누렁이' 중 일부. 다큐 자막은 박소연이 개들을 구조한 뒤 안락사 시켰다는 사실은 설명치 않았다. 다큐 상 박소연은 개들을 너무 사랑하는 '구조의 여왕'으로 그려진다.

▶박소연 “안락사는 동물구호”= 2019년 박소연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내부자를 통해서였다. 2019년 1월 11일 박소연의 직장 하급자는 박소연이 본인에게 “이제 어차피 투견 애들은 입양 가기도 힘들고 하니까 잘못되면 다시 투견업자한테 흘러갈 수 있으니, 그건 사전에 방지해야 되니까 ‘보내주자’ 이러더라고요, 몇 마리만 빼놓고”라고 말했다.


박소연은 또 “웬만한 애들은 좀 보내고(안락사), 개 농장에서 데려온 애들도 사실은 제 생각에는 데려온 이유가 거기서 죽느니 안락사시키자고 데려오는 거라 아프고 이러면 다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며 안락사를 지시했다. 박소연은 “‘내가 하는 안락사는 인도적인 안락사’라고 주장했다”는 직원들의 주장도 있었다.


박소연은 결국 기소됐다. 그러나 박소연은 자신이 행한 ‘안락사’에 대해 동물을 구호하는 행위라 확신한다. 재판에 넘겨진 박소연은 2020년 5월 재판장에서 “안락사로 인해서 큰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안락사의 원인을 제공한 개 도살은 훨씬 더 위법 하다는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안락사 시킨 동물에 대한 미안함은 찾기 어려운 것이 그가 재판장에서 하는 본인 변론 행위다. 박소연은 자신에 대한 기소가 후원금을 노리고 있는 다른 동물단체들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다시 ‘누렁이’다. 다큐 누렁이에 나온 박소연은 어떻게 해서든 식용 개 사육장에서 개를 매입해 구조를 위해 애쓰는 선한인물로 그려진다. 그렇게 구조한 개는 미국으로 입양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구조견들은 그 뒷처리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케빈 브라이트는 왜 자신이 만든 누렁이를 그대로 방영했을까. 박소연의 재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박소연 부분을 잘라내기 위해선 영상 대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고민했을까. 아니면 ‘2년도 더 전 일이니 한국인들은 모두 잊어버렸을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박소연이 구조했던 개들을 죽였던 것으로 확인되자 2019년 1월 동물단체 직원들이 나서서 대표 사직을 권고했다.


▶동물단체의 이중성= 개식용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사용하는 영상문법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식용견들의 현상황이다. 대체로 더럽고, 거개가 불결하며, 냄새와 악취가 찌든 그곳 철창 속에 빼곡하게 살아가는 개들이 영상의 주 테마다. 그러나 그같은 개 사육 환경 개선을 위해 가축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을 개사육업자들이 하면 동물단체들은 다시 반대하고 나선다. 개고기가 합법화하면 식용견이 늘어날 것이란 주장이다. ‘사육환경 개선’이 동물 단체들의 진짜 목적이라면 가축법 개정을 통해 개를 가축으로 등재하면 될일인데, 이에는 또 극렬 반대한다. 모순이다.


그러면 개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닭들에 대해선 동물단체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치킨이 너무 맛이있기 때문은 아닐테다. 사실은 개를 구조할 경우엔 후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닭을 구조할 경우엔 후원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박소연이 법정에서 자신이 기소된 것에 대해 ‘후원금을 노리는 다른 동물단체들의 공격’이라는 주장도 사실은 일면 타당한 일이기도 하다.


구조 상자를 들고 사육장에 들어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소연. 그가 저 현장에서 구조했던 개들중 일부는 안락사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락사가 동물구호’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 박


▶관심좀 꺼줄래?= 내가 기억하는 바 내에서 한국의 개고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서울올림픽 때부터다. 당시 ‘보신탕’이란 이름 대신 간판을 ‘사철탕’으로 바꾼 것 역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덜 주기 위해서였다. 브리지트 바르도가 2001년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 비난했던 사실도 있고, 2018년에는 CNN 여성 앵커인 랜디 케이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그늘에 가려진 잔인한 개고기 거래”란 글을 써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가 무엇을 먹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개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먹거리 리스트 중 개고기가 먹거리 리스트에 올라있다고 비난받을 일도, 또는 반대의 경우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주어져서도 안된다고 믿는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의 개고기 소비량이 줄고 있다는 점이고 시일이 지나면 개고기 소비논란은 한국사회에선 사라질 문제란 것이다. 채식근본주의를 채택하든, 육식을 즐기든 그것은 개인의 영역으로 놔둘 문제다. 이래라 저래라는 대체로 오만의 표상이고, 이는 케빈 브라이트가 다큐씩이나 제작할 일도 아니다.


그나저나 케빈 브라이트씨. 당신이 다큐에서 중용한 ‘박소연의 안락사’ 이슈는 어떻게 정리를 하신건가요. 개식용은 안되고 안락사는 괜찮은건가요?


▷다큐 누렁이

https://www.youtube.com/watch?v=KBfSiE3m_4Q&ab_channel=GameCoachGameCoach


▷박소연 대표의 케어, 200여마리 안락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1111896059845


▷구조의 여왕인가, 개 도살자인가

https://www.neosherlock.com/archives/4870


▷[단독] "'케어' 박소연 대표, 마취도 안하고 직접 안락사 주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115001510


▷'동물 안락사' 박소연, 첫 재판 나와 직접 변론..."안락사는 동물구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144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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