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의(善意)’는 양치기들에겐 손쉬운 먹이감이 된다
‘진선미(眞善美)’는 사람이 추구하는 세가지다. 지향이다. 미스코리아 순위 역시 이에서 따왔다. 진선미 가운데 21세기 세계와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내고 있는 지향을 나는 ‘선(善)’이라고 본다.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오늘날 세계와 그 세계 속의 한국을 추동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그런 착한 의지에서 비롯된 ‘선한 행동’의 결과가 선한 의지에 맞게 발현 되느냐다. 안타깝게도 꼭 그런 것만은 같지 않다. 선한 의지는 장사꾼들에겐 활용되기 쉬운 먹잇감이 되기 일쑤고, 때론 현재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기도하며, 가끔은 위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유는 ‘선함, 지선, 착함’에 대해 논의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행동이 선행했기 때문이다. 선함은 어떻게 악함과 병존하는가.
▶북극곰 구하기?… 동물보호단체의 이중성= 한국세계자연기금(WWF)은 북극곰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홈페이지에서 “북극곰은 북극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극곰의 위기는 곧 북극 생태계 전체의 위기이며 지구 전체의 위기다. 기후위기를 대처하는 일은 북극곰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라며 “기후 변화는 북극곰과 지역 생태계에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최근 5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 되고 있다. 앞으로도 폭염, 가뭄, 홍수와 같은 기상 이변은 더 심각해 질 것”이라고 썼다.
그들은 북극곰을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위기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는다. 이유는 북극곰은 WWF가 나서서 지켜야 할만큼 ‘위기’에 처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폴라 베어 사이언스에 따르면 북극곰의 개체 수는 지난 1960년 5000마리까지 줄었으나, 이후 2019년에는 3만9000마리로 늘어났다. 50년 사이 거의 8배가 증가한 것이다. 속도로만 보면 인류가 늘어난 속도보다도 빠르다. 예컨대 1930년대 인류의 수는 20억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80억명이다. 인류의 수는 90년만에 4배가, 북극곰의 수는 50년만에 8배가 됐다.
WWF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곰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북극곰의 서식지 가운데 실제로 북극곰의 수가 줄어든 곳도 있는데, 이 곳에서 북극곰이 죽은 원인을 확인한 결과 사냥으로 총에 맞아 죽은 북극곰의 수가 가장 많았다. 북극곰의 개체수가 너무 빨리 늘면서 인가로 밀려 내려오는 북극곰의 수가 늘어났고, 이 때문에 사람이 사는 마을로 들어온 북극곰들이 안전을 위해 사살 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말하자면 북극곰은 ▶개체수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상승세고 ▶사망원인은 개체수 증가에 따른 민가 침입 ▶레저로 사냥을 즐기는 사례가 다수라는 점에서 위기에 처해있는 종이라 보기 어렵다. 이에 반해 환경단체들은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 역시 북극곰의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제 남는 것은 순수히 ‘장사꾼’ 논리다. ‘북극곰을 살리자’고 쓰고 ‘환경단체도 먹고살자’고 읽는 것이 옳은 독해법이다.
동물·환경보호단체들의 패턴은 거의 모든 캠페인에서 동일하게 활용된다. 위기를 강조하고, 위기가 도래한 원인은 너희들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위기의 원인을 만든 너희들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같은 주장은 거짓이기 일쑤다.
북극곰의 개체수가 늘면서 인간과의 접촉면이 늘어났다. 죽은 북극곰이 안타깝다면 캐나다 정부를 향해 '북극곰 사냥금지'를 요청할 일이다. 애먼 환경단체나 동물 보호단체에 후원을 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모금 잘되는 동물들= 시민단체들의 활동 대상이 되는 동물들이 어떤 동물들로 구성돼 있는지를 보면 시민단체들의 위악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컨대 WWF를 대표하는 동물은 팬더다. 그들은 자이언트 팬더를 마스코트로 지금도 사용한다. 왜 하필 수없이 많은 멸종위기 동물들 가운데 팬더가 그들의 마스코트가 됐을까. 이는 순전히 모금이 잘되는 동물을 찾다 찾다 발명해낸 상품이다. 팬더는 지금도 위기종일까? 답은 아니다. 팬더는 1980년대 10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지난 2015년께에는 1800마리로 그 개체수가 증가했다. 더이상 위기종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북극곰은 지난 50년간 8배의 개체수 증가가 이뤄졌지만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북극곰이 위기라며 ‘위기 팔이’를 하고 있다. 왜 북극곰인가. 어렸을 때 집에 흰색 곰 인형 한마리 없었던 집은 없을 것이고, 인간이 매우 친숙하고 귀엽게 여기는 동물들 중 한 종류가 북극곰이다. 후원이 잘되는 동물은 시민단체들의 주된 보호 대상이 된다.
돌고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동물보호단체들이 앞장서서 지방자치단체와 동물원 앞에서 돌고래를 방류하라는 시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동물보호단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월등히 많은 수의 돌고래들이 죽는 이유는 기업형 선단들에 의해서란 것이다. 치어부터 거북이, 돌고래, 상어까지 죄다 싹쓸이하는 기업형 어선들에 의해 죽어나가는 돌고래의 수는 연간 수십만마리에 이른다. 진짜로 돌고래들을 위해 그들이 행동한다면 대형 참치선단을 이끄는 동원산업이나 사조산업이 돌고래들을 떼로 잡아 올렸다가 죽은다음 시체를 처리하는 선상 위해 있어야 맞다.
그러나 그들은 고작 돌고래 몇마리를 방류하라며 시위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양 어선에는 카메라와 기자가 없고 이는 시민단체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가 불리하다. 그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지자체나 동물원 앞에서나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동물 보호가 목적이 아닌 후원이 목적이 돼버린 것이 오늘날 한국 동물보호단체들의 현주소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익숙한 개와 고양이에 대한 ‘동물구조’를 하는 시민단체들 역시 비슷하다. 그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동물들을 구조하는 영상을 찍어 시민들로부터 ‘착한 행동을 했다’며 박수를 받는다. 위기에 빠진 동물들을 구조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의 행위는 얼마나 자비로운가. 문제는 모금에 활용된 그 영상 이후 해당 동물들의 처리 문제다. 너무 많은 동물들을 구조해 더이상 사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구조했던 동물들을 안락사 시킨 동물단체 대표도 있었다. 그 단체 대표는 그러나 당당했다. ‘안락사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후원 모금을 위해선 개체수가 8배나 폭증한 뒤에도 여전히 북극곰은 위기종으로 묶여 있어야 하고, 개와 고양이를 보호키 위해선 ‘여러분들의 관심(후원)’이 필수적이다. 돌고래나 팬더, 호랑이나 사자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은 죄다 보호 받아야 하는데 이유는 그같은 인지도 높은 동물들을 활용해야만 후원이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똑같은 멸종 위기종인 하이에나는 동물단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동물보호단체들의 선택적 보호 동물 낙점은 그들의 목적이 동물 보호인지 후원인지를 가늠케 하는 지표다.
시민단체들이 기생하는 각종 후원의 숙주는 사실 ‘선(善)’이다. 나보다 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이고, 얼마 안되는 후원으로 그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선한 시민의 옳은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그같은 선한 의지는 장사꾼들에겐 거대한 시장이 되고, 결국엔 동물 보호가 아닌 ‘동물 보호 단체 보호’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목적(동물보호)과 수단(시민후원)의 역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