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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28. 2023

이런 게 정말 강연 주제가 될까요?


강사에 처음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은 예비강사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산은, ‘이런 게 정말로 강연 주제가 되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다.


어쩐지 강연이라고 하면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나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유명인사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꺼내놓고자 하는 것이 어쩐지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예비 강사들이 꺼내놓으려는 경험과 영감의 원천들이 하찮은 것일까?     


몇 년 전, 내가 강연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강하게 권유했던 분이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사장을 역임했고 그 중에서도 ‘노인 장기요양보험’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하며 팀을 이끌었던 분이셨다. 장기 요양 보험의 틀을 만들고 관련 시설을 감독하고 평가 하며 업무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데다 대학으로, 기관으로 이미 노인 복지 및 장기요양 보험과 관련한 강연을 한 경험도 있었으니 은퇴 후 강연자로서 제 2의 삶을 살기에 충분한 내공이 있는 분이라 여겼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어땠을까?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강연을 합니까? 공단 담당자에게 찾아가서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는 것들이에요. 그러니 노인 복지나 장기요양 같은 것들을 굳이 강연까지 찾아올 정도로 궁금해 할 사람들이 있겠어요?”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더 이상 권유는 하지 못했지만 참 입맛이 썼던 기억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부모님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수많은 중장년층들에게 빛이 되기 충분한 강의를 해 줄 수 있는 분이셨는데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 온 삶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며, 내가 해 온 업무가 얼마나 전문적이었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초록동색이라 했다. 

삶을 살아내다 보면 주위는 비슷한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님을 생각해 보라.


선생님들 주변에는 온통 선생님들이 가득하다. 그러니 식사 시간에 교육과 관련한 뉴스라도 한 자락 나왔다 하면 테이블에 앉은 그 누구라도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과 현실, 해결책 같은 것들에 대해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의견 한 마디 보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어떨까?

교육에 관심은 있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애들도 봐야 하고 며느리 노릇, 딸 노릇까지 하려다 보면 ‘요새 입시가 달라졌대? 또?’ 소리부터 나오고 만다.


직장에서는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 내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업무와 관계없는 교육 정책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아본다면야 어느 정도 해갈은 되겠으나, 앞서 말했듯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내 일’만 해도 너무 바쁘다보니 업무 혹은 전공 관련 분야가 아니다보면 계속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고 만다.     

상황이 이러니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관련 강의나 학습서 등이 그렇게나 잘 팔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도 체력도 한계가 있는 학부모님들에게 잘 정리된 한 시간의 강의나 한 권의 책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것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강의를 꿈꾸는 분들에게 이야기 하곤 한다.

“돈 벌어 보신 적 있어요?” 혹은 “1년 이상 꾸준히 해 온 일이 있어요?”라고.   

  

만약 그렇다면 이제 특정 직업군에서 돈을 벌며 힘들었던 것들, 혹은 꾸준히 어떤 일을 해 오면서 부딪혔던 어려움을 떠올려 보라.

당신이 어려워하고 곤란을 느꼈던 바로 그 지점이 청중이 강사에게 원하는 강의이며, ‘좋은 강의’, ‘팔리는 강의’의 근간이 된다.     


만약 당신이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취미로 수영을 해 왔다면?     


지난 10년 간 당신은 어쩌면...   

  

- 수영복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꼈을 것

- 좋은 수영장의 기준에 대해 고민했을 것

- 어떤 시간에 어느 정도 강도로 운동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을지 생각했을 것

- 어쩌면 바다 수영에도 도전해 본 적이 있을 것

- 함께 운동하는 센터 동료들과 관계를 고민했을 것

- 이런 사람들에게 꼭 수영을 추천해보고 싶었을 것

- 어느 순간 실력이 늘지 않아 자괴감을 느꼈을 것

- 수영을 하며 꾸준한 운동이 주는 힘을 깨달았을 것     


이런 경험들을 하며 나름의 대답과 해결책을 찾아내었을 테다.


그렇게 쌓아온 10년이라는 세월인 것이다.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 도도한 물결 속에는 고민과 깨달음과 번뇌와 희열이 섞여 아우성 치고 있다.

강사는 그 세월을 정리하여 전달하는 사람인 셈이다.     


자. 이래도 별 것 아닌 것 같은가?


당신의 경험은 수많은 수영 초보자, 혹은 운동을 해 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응원을 보내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경험은 단순히 <수영>이라는 운동을 넘어 <동기부여> 강의의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으니 적용 가능한 범위는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라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될 만한 것이 없다고?     


고수가 초보를 가르치는 세상이 아니다.

이제 막 초보를 벗어난 중수가 초보를 가르치는 세상이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지만 이제 겨우 발 두 개가 생겨났을 뿐인 올챙이와 개구리 사이의 무언가가 된 반개반올(?)은 올챙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 업무메일 잘 보내는 법

-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을 통화 예절

- 명함 관리법

- 회의 셋팅 하는 법 

등등.     


신입사원이 궁금해 하고 지금 당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임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것들이 아니라 “팩스 보내는 법 아시는 분? 급해요. ㅠㅠ” 같은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고민이다.     


그러니 당신의 강의가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대신, 내 강의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고심해 보라.     


초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의는 멋들어진 수식어가 가득한 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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