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어젯밤에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소고기를 냉장실로 옮겨두었던 참이다.
그러니까,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계획은 찹스테이크를 할 참이었던 거다.
밥반찬으로도 좋고, 도시락 반찬으로는 더 좋으니까!
하지만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그리 많던가?
심지어 내 입맛마저도 내 뜻대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불쑥 메뉴 하나가 떠올랐다.
'아! 김밥 싸야겠다!'
이건 분명 어젯밤에 봤던 맘카페 글 때문일 거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동안이나 멈춰있던 학교 행사들이 굴러가기 시작했단다.
그 시작은 바로 소풍과 수학여행!
요즘 한창 수학여행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로 투표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글을 몇 개 보고 있자니 학교마다 장소도 제각각이었다.
수학여행의 스테디셀러인 제주도부터 강원도, 부산, 경주까지 골고루 후보군에 있었다.
음, 제주도 좋지.
강원도도 좋은데?
그래도 따뜻할 땐 역시 부산인가?
경주도 학창시절에 한 번 가봐야 하는데.
혼자서 키득대다가, 추억에 참겼다가, 시절이 하수상해 수학여행 한 번 못가보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만 코로나키즈들이 떠올라 안쓰럽기도 했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더랜다.
그러니 김밥을 먹고야 말겠다는 이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
소풍도 수학여행도 못가는 아줌마지만 김밥은 쌀 수 있지, 암만.
<오늘의 메뉴> 김밥, 소시지볶음, 풋마늘무침, 딸기
"웬 김밥?"
"그렇게 됐어. 좋지?"
"김밥은 늘 좋지."
손은 또 커서 다섯 줄만 싸도 될 걸 아쉬운 마음에 열 줄을 쌌다.
결국 아침으로도 먹고, 도시락으로도 싸고, 그러고도 남아서 간식으로 야식으로 다음날 아침까지 먹고서야 끝이 났다.
어쩌면 나 어릴 적 소풍 갈 때, 우리 엄마가 이렇게 김밥을 질리게 먹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는데, 금방 다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생각해보니 난 소풍 갈 때 분식집에서 김밥 사서 갔었다.
이것, 참. 괜히 눈시울 붉힐 뻔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