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쌀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경험이 무엇인 줄 아는가?
똑 떨어진 밑반찬?
부실한 메인반찬?
그것도 아니면 보기에 좋지 않은 담음새?
NO!
단언컨데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반찬 다 담아놓고 밥솥 뚜껑을 열었더니 밥이 한 숟가락 겨우 남아 있는 상황일거다.
어떻게 아냐고?
오늘 내가 그랬으니까.
아침부터 삼겹살 굽고 계란 말고 룰루랄라 신이 났는데, 세상에. 밥이 없다니.
하필이면 밥 대신 빵을 넣는 걸기도 애매한 메뉴들이라 더 난감하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을 해 보면 사실 당황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됐으니까 가는 길에 햇반 하나 사서 가~"
그냥 남편에게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다.
요즘 햇반, 편의점에서도 다 파는데.
2개 사면 심지어 한 개 더 주던데.
그런데 사람이 그렇다.
별 일 아닌 일도 당황하면 아무런 해결책이 보이질 않는다.
멍하게 빈 밥솥을 보고 서서는 한 손에 주걱들고 우두커니 장승처럼 서 있을 뿐이다.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어부의 심정이다.
"왜 그러고 섰어?"
"...자기야, 밥통에 밥이 없어."
"그래? 그럼 냉동볶음밥 데워 가야겠다. 내가 할게."
아, 그래! 냉동볶음밥이 있었지, 참!
그제야 박 터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오늘의 메뉴> 냉동 케이준 볶음밥, 고추장삼겹살, 계란말이, 파김치, 배추김치, 메추리알장조림, 딸기
그렇게 완성한 오늘의 도시락 메뉴.
답이 하나라고 생각했을 땐 보이질 않던 다른 선택지가 그제야 보인다.
해결이 되고 나니 당황과 황당이 섞인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또,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십 분 전의 나는, 그러니까, 별 일 아닌 일에 너무 심각했던 거다.
이런 일이 어디 밥이 없는 밥솥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