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 둘째 날,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면 눈이 떠진다. 몇 년간 미라클모닝이라 이름 붙이진 않았지만, 아이를 9시쯤 재우며 일찍 같이 잠드니 저절로 새벽 기상이 되었던 습관이 생겨 이제는 늦게 자도 그 시간이면 잠이 깬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아티스트 웨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남편과 딸이 잠들어 있는 동안 여행 가서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모닝페이지를 썼다. 새벽에 혼자 마시는 커피는 단골 커피숍의 드립백 커피인데 밸런스가 아주 훌륭하다.
둘째 날 아침식사는 체크인할 때 받은 쿠폰으로 자연드림식탁에서 먹었는데,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단순한 메뉴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는 괜찮았고, 아이도 그럭저럭 잘 먹었다. 물론 아이는 밥 조금 먹고, 우유에 시리얼과 잼 바른 식빵도 먹긴 했다. 원두커피 머신이 있어서 마무리 커피 한잔까지 하고 우리는 오늘을 스포츠데이로 명명했다.
방으로 가서 준비해 온 수영복을 포함한 운동용품을 챙겨 우리는 스포츠 힐링센터로 갔다. 여기는 수영장, 사우나, 찜질방, 헬스장, 당구장, 볼링장, 스크린골프까지 있는 건물이었고, 일단 몸풀기로 다 같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좀 했다. 이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는데, 아이는 당연히 다 같이 수영장에 가서 놀고 싶어 했다. 남편은 수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남편 수영복이 선수용이 아니고 펄럭거리는 파자마형이라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을 와서야 알았다. 남편은 얼씨구나 하고 스크린 골프장으로 향했고, 나와 아이만 수영을 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수영을 하고, 찜질방에서 가지고 간 책도 좀 읽고 사우나에서 목욕까지 하고 나니 남편에게 18홀까지 다 쳤다고 연락이 왔다.
스크린골프와 같은 층에 있는 볼링장에서 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볼링을 경험했다. 물론 집에서 닌텐도 Wii sports로는 이미 여러 번 해봤고, 엄마 아빠보다 월등한 실력을 자랑했지만 실제와 게임이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두 번째 게임에서는 스트라이크도 한 번 하고, 스페어 처리도 몇 번 하는 걸 보니 빠르게 적응해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볼링장 옆 오락실에서 아빠는 레이싱을 했고, 셋이서 전자 다트와 에어하키, 농구까지 정말 한 번에 할 수 있는 운동경기는 다 했다. 스포츠데이답게!!
이곳은 저녁에 다시 가 보니 금요일에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체크인 한 이후라 그런지 북적북적했는데, 우리 가족이 할 때만 해도 우리 말고 한 가족밖에 없는 상태여서 약간 썰렁했다. 뭔가 흥이 잘 나지 않아, 기다려서 하더라도 사람들이 좀 있는 게 더 재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쫄면, 김밥, 떡볶이, 군만두
아침을 든든히 먹었음에도 몸을 많이 움직인 덕분에 셋 모두 배가 엄청 고파진 상태로 찜질방 식당으로 갔다. 문이 양쪽에 있어서 찜질방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용이 가능했는데 오랜만에 밖에서 먹는 분식이라 그랬는지, 배가 고파 그랬는지 참 맛있게 먹었다. 평소 아이가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먹고, 도전도 안 하려고 해서 식당 선정이나 메뉴 선정에 애로가 많았기에, 아이가 떡볶이에 도전을 해서 몇 개 집어먹는 경사까지 있어서 더 좋았던 점심식사였다.
책을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세뇌를 당한 아이와, 진짜로 책을 좋아하는 내가 괴산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독립서점인 숲속작은책방이다. 괴산 여행을 하기 며칠 전 지인 가족과 식사를 했는데 지인 부부가 작년에 갔었는데 정말 좋았다며 강추해서 내가 지도에 저장해 놓은 곳으로, 작은 마을 안에 있는 2층 집을 개조해서 만든 책방은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오기도 하는 나름 유명한 서점이었다. 이곳은 북스테이도 겸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 체크인 시간이라 그날 북스테이 하러 온 분들이 설명을 듣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부럼움의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는 다음에 꼭 1박을 하러 오자며 나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예쁜 입간판과 나무대문보다 더 정겹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방 내부는 주인이 책을 큐레이션 한 의미를 생각하며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공간이었고, 몇 시간이고 거기서 시간을 보내며 살 책을 고르고 싶었다. 이곳에서 발견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간, ‘책 읽는 사람 문재인의 독서노트’를 살까 하다가 직접 평산책방에 갈 예정이라 그곳에서 며칠 뒤에 샀다. 이 책은 작은 서점, 독립서점에서만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자주 가는 동네 교보문고에서는 볼 수 없었나 보다.
거실 전체와 복도는 주로 어른들의 책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보고 계신 분들이 몇 분 있어서 사진을 찍기가 좀 그랬다. 방 하나는 전체가 아이들 책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아이는 여러 책들을 들춰보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스툴이 있어서 나랑 남편은 잠시 앉아 쉬면서 그림책 읽는 시간을 보내니 그것 또한 평소 해보기 어려운 즐거운 경험이었다. (남편이 함께 서점에 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으므로)
책을 몇 권 사주기로 하고 시간을 주었는데 아이는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적 있는 꼭 갖고 싶은 책들을 골랐다. 다음에 직접 쓴 책을 들고 오기로 하고, 서점 주인께 노트와 책 담는 가방까지 선물 받은 아이는 입이 귀에 걸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열심히 책을 봤다. 이 책들이 다음날 장거리 이동에서도 차 안에서 유튜브를 틀지 않게 하는 효자템이 되었으니, 책방에 들리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다.
자연드림파크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하프백 가져온 걸 못 쓴걸 내심 아쉬워해서 (오전에 혼자 칠 때 귀차니즘으로 차에서 골프백을 안 가져오고 빌려 친 모양이다) 우리는 다시 스크린골프를 치기로 했다. 그 시간 동안 함께 있을지 영화를 볼지 선택권을 주니, 아이는 용감하게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 다 키웠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품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위시’가 상영 중이어서 팝콘 들고 혼자 보기로 하고, 끝나면 스크린 골프룸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내가 데려다줄 때까지 아무도 없어서 너무 쓸쓸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오기 직전에 노부부 한쌍이 들어오셨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렇게 셋이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위시의 상영시간이 좀 짧기도 하고, 내가 골린이라 배워가며 치는 중이어서 영화가 우리의 라운딩보다 일찍 끝났고 아이는 무사히 우리가 치고 있는 곳으로 잘 찾아왔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끝내고, 저녁 식사는 파크 안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비어락’에서 맥주 한 잔 곁들여하기로 했는데 마침 금요일 저녁이라 라이브 무대까지 있어 입호강에 귀호강까지 할 수 있었다. 내가 복이 많은지, 우리 가족이 그런 건지,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방으로 돌아가 우리는 또 다음 날의 여행을 기대하며 꿀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