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으로 산다는 것
읽을 순 있어도 뜻을 몰라!
부다페스트 3일, 그리고 덴마크에서 18일째이다.
문맹으로 살아가는 것의 불편함,
눈치껏 살아가기의 어려움에 대해 여실히 느끼고 있는 시간이다.
덴마크 1년 살이가 결정된 후 덴마크어를 배워보려고 잠시 노력했었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듀오링고라는 앱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가장 가성비 높고 효율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의지가 필요했다.
매일 앱을 열어 매일 듀오링고를 실행한다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3월에 잠시 열정을 불태우며 매일 앱을 열어 배우다, 덴마크어는 독일어랑도 많이 비슷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어랑도 별로 안 비슷한 단어들이 넘쳐나며 발음을 따라 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한국을 떠나기 얼마 전 TV광고에서 선전한 요구르트에서 Hej라는 반가운 단어를 보고, '저거 덴마크어로 Hi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게 덴마크어는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 몇 안 되는 단어들마저 잊혔고, 나는 그 상태로 덴마크에 도착했다.
수많은 간판과 상점 벽면에 적힌 글자들. 모양은 알파벳에 가깝고, 알파벳에는 없는 모음도 있으며, aa처럼 모음을 연달아 두 번 쓰기도 한다. 영어처럼 읽을 수 없기에 발음기호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상태인데, 정착하기 위해 할 일이 많은 지금은 잠시 읽는 것도 포기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일단 읽기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그리도 단어들도 좀 외우고, 다시 듀오링고를 열어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했지만...
나에게는 구글 렌즈라는 신문물이 있어, 1년 사는 동안 덴마크어가 조금도 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스마트폰 카메라만 들이대면 한글로 친절히 번역을 해주니, 천천히 덴마크어를 음미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 핸드폰이 방전되어 꺼져버렸을 때, 나는 완전한 문맹을 경험했다.
하필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으며, 간판이나 도로명을 읽지고,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서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타고난(?) 방향감각과 용감무쌍함으로 나는 5분이면 갈 거리를 돌고 돌아 2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올보르 시내가 넓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순간.
1년 뒤 나는 과연 덴마크어 문맹에서 조금은 탈출한 상태일까?
궁금하다.